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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연 Aug 20. 2024

학사논문 「씨나리오문학론」과 대학 졸업

영화사가 노만 47

대학 졸업식에서 노만. 1958년 2월 서울대 문리대 교정에서. ⓒ 노만


"한편 잡지 일을 하는 와중에도 학교 생활을 병행해야 했다. 수업 시간표를 주 2일 혹은 3일로 몰아서 짜고 학교에 가지 않는 날들은 잡지에 몰두했다. 

4학년이 되자 졸업을 위해 논문을 써야했다. 처음에는 한국 근대 신소설을 주제로 졸업논문을 준비했다. 논문을 쓰기 위해 이인직의 『혈의 누』, 『은세계』, 이해조의 『자유종』 등, 신소설 작품 초판본과 딱지본 단행본을 가리지 않고 사모았다. 문학사에서도 특히 과도기 혹은 전환기에 해당하는 시기에 크게 관심을 두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애초의 구상과 계획을 엎고 논문 주제를 '영화'로 바꾸었다. 영화를 주제로 논문을 쓴 것은 대학 학사논문으로도, 서울대 전체를 통틀어서도 아마 내가 최초였을 것이다.

나의 문리대 졸업논문 「씨나리오문학론」은 '시나리오가 과연 문학의 한 장르로서 성립할 수 있는가'를 논한 글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영화가 갖는 근본적인 성격과 특성을 짚고 넘어가야 했다. 뤼미에르 형제에서부터 영화의 탄생과, 태동, 발달 과정을 언급했다. 그러나 논문에서 한국영화를 폭넓게 다루기 힘들었다. 보존된 영화 프린트도, 시나리오도, 자료가 너무나 없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자료 수집과 인터뷰를 시작했다. 1957년 《스크린》 시절부터 수입 상사와 현장 영화인들을 통해 수집한 영화 시나리오들과 서울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된 일제강점기 시기 발간된 영화잡지들이 주요 참고문헌이었다. '창간호'가 '종간호'가 된 잡지들도 다수였다. 

그래도 부족했다. 가깝게 지냈던 전창근 감독을 비롯해, 윤봉춘, 이규환, 안종화, 복혜숙, 석금성, 이병일, 김학성 당시 활동하던 원로 영화인들 거의 대부분만났다. 카메라도 녹음기도, 별다른 녹취나 메모도 없이 인터뷰를 그저 복기할 밖에 없었다. 한국영화사를 정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것도 졸업논문의 영향이 컸다. 4학년 여름방학 기간 동안 절에 들어가서 원고를 붙잡았다. 진척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200자 원고지 250매 분량의 원고를 탈고하기까지 근 1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졸업 논문의 심사위원 중 한 분이 「꺼삐딴리」로 유명한 전광용(全光鏞, 1919~1988) 선생이었다. 전광용 선생은 문학 뿐만 아니라 연극, 영화, 무용 등 인접 예술에도 다방면의 관심을 갖고 있던 분이었다. 논문 성적은 B+였다. 나는 1958년 2월 대학을 졸업하고 그해 4월 논산훈련소에 입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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