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만이 1956년 잡지 주간으로 참여한 《국제영화》는 1955년 초 언론인 박봉희가 설립한 국제영화뉴스사에서 발행되던 《주간 국제영화뉴-스》가 전신이었다. 1956년 8월 노만을 새롭게 영입한 박봉희는 그와 함께 공동 투자 및 운영 체제로 잡지를 전면 개편, 주간 타블로이드 형태의 발행 방식을 월간으로 바꾸고 지면 구성과 페이지 증면으로 대대적인 쇄신을 도모했다. 박봉희가 대표 및 발행인을, 노만이 주간을 담당했고, 편집장 천백원과 편집부원, 기자 김시춘이 당시 잡지의 주요 운영진이었다. 《국제영화》 1956년 9월호(통권 11호)의 권말 '편집후기'에는 이전 발간호와는 다른 "혁신호"(편집장 천백원)임을 내세우는 한편, 잡지명의 개제와 편집진의 쇄신, 증면과 독자층을 소구하는 내용 구성을 강조한 잡지 주간 노만의 언급이 있다.
잡지 표지를 장식한 모델은 그레이스 켈리(Grace Kelly, 1929~1982)였다. 이 해 그레이스 켈리는 모나코 왕 레니에 3세(Rainier III, 1923~2005)와의 결혼으로 세계적인 화제를 모은 만큼 국내 영화 팬층과 잡지 독자층의 이목을 끌었다. 국내에서는 1955년 개봉한 <모감보 Mogambo>(1953, 존 포드 감독)를 비롯해 1956년 <에메랄드 Green Fire>(앤드루 마론 감독), 1957년 <이창 Real Window>, <나는 결백하다 To Catch a Thief>, <다이얼 M을 돌려라 Dial M for Murder>(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상류사회 High Society>(찰스 워터스 감독) 등의 출연작이 연이어 개봉되어 관객들의 커다란 관심을 불러 모았다. 권말 '편집후기'에는 편집장 천백원의 다음과 같은 언급이 있다: "표지는 '허리욷'에서 '모나코'로 시집간 '그레이스.케리' 양을 택했읍니다. 화려한 9도의 천연색 '푸로세스' 인쇄- 썩 잘되었다는 기쁨 보다 하필이면 외국배우를 선택해야만 되는 우리의 슬픔을 능히 짐작하리라 믿습니다"(80쪽) 이전 발간호는 물론 여타 영화잡지들과의 차별화된 볼거리와 독자층의 소구에 잡지 편집 및 인쇄의 방향성과 초점이 맞추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제영화》 1956년 9월호의 구성은 국내외 스타배우들의 프로필 화보와 당시 국내외 개봉 영화들의 스틸컷이 잡지 곳곳에 강조되어있다. 권두에는 국내 중견배우인 서월영과 최봉의 프로필 사진과 영화계 활동이 소개되었다. "무대생활 이십여년을 쌓아온" 이후 "영화계로 전환 데뷰-하여 노령의 성격배우로 완전히 '포지션'"을 차지한 배우로 소개된 서월영은 당시 <춘향전>(1955, 이규환 감독), <열애>(1955, 홍성기 감독), <단종애사>(1956, 전창근 감독), <천추의 한>(1956, 안종화 감독) 등의 작품에 연이어 출연했다. "이미 십여년이나 무대생활을 해오면서 영화에 무한한 관심과 공부를 해오던" 배우로 소개되고 있는 최봉은 당시 <격퇴>(1956, 이강천 감독), <옥단춘>(1956, 윤봉춘 감독) 등의 작품에 출연한 성격파 배우로 소개되었다(13쪽). 이어 <하리욷의 애인상>이라는 제목의 화보 기사에서는 윌리엄 홀덴, 루돌프 발렌티노, 클라크 게이블, 제임스 케그니, 로버트 테일러, 로렌스 올리비에, 그레고리 펙, 캐리 그랜트, 몽고메리 클리프트, 록 허드슨, 제임스 딘, 말론 브란도 등 할리우드 남성 배우들의 프로필과 출연작 스틸컷이 8페이지에 걸쳐 다채롭게 소개되고 있다(14~20쪽).
신작 개봉영화로는 한국영화 <마의태자>(1956, 전창근 감독), <논개>(1956, 윤봉춘 감독), <백치 아다다>(1956, 이강천 감독), <무영탑>(1957, 신상옥 감독), 외국영화 <사랑의 미로 Obsession>, <켄턱키인 The Kenturckian>,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 Gentleman Marry Brunettes>, <나는 고백한다 I Confess>, <애욕과 전장 Battle Cry>, <미녀와 우유배달 The Kid from Brooklyn>, <데미트리아스와 투사 Demitrius and the Gladiators>의 소개와 스틸컷이 잡지 전면에 걸쳐 수록되었다. 잡지는 이들 신작 영화들을 소개하는 한편, 주요 장면의 스틸컷을 크게 배치함으로써 이들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와 호기심을 충족시켰다.
특집 기사로는 가장 먼저 <1956년도 제3회 아세아영화제 보고좌담회>(22~29쪽)가 수록되었다. 1954년 아세아영화제작연맹이 창설하여 개최된 아세아영화제는 개최 당시 기존의 '동남아세아영화제'에서 1956년 '아세아영화제'로 개칭하였고 이 해 한국이 정식 회원국으로 참여하여 국내 영화인들의 커다란 화제를 모았다. 이를 계기로 1956년 7월 7일 명동 대홍운에서 《국제영화》에서 주최한 좌담회에는 영화제에 참석했던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대표 김관수, 아세아재단의 조동재, 조풍연, 영화감독 한형모가 대담을 나누었고 박봉희 사장과 주간 노만이 잡지측 배석자로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