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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연 Aug 24. 2024

《영화세계》 강인순 사장과 조미령 필화(筆禍)

영화사가 노만 50

노만. 서울대 동숭동 캠퍼스 교정에서. 1957~1958년. ⓒ 노만


"대학을 졸업한 지 두 달 뒤인 1958년 4월 논산훈련소에 입대했다. 마침 나와 함께 같이 졸업한 서울고, 서울대 동기생 스무 명이 함께 입대했다. 훗날 아내가 된, 당시 한창 연애 중이었던 엄경은에게 군에 간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웃음). 약 한 달간의 신병 훈련을 받고 서울 영등포에 있는 육군 제9병참기지창에 배치되었다. 그곳에서 쌀, 간장, 된장 같은 군 보급 식자재들을 관리하는 일을 맡았다. 보급품을 관리하는 일을 하다 보니 부대 밖을 드나드는 일도 잦았다. 그러다가 부대에서 어딘가를 심하게 다치는 바람에 '의가사제대'를 하게 됐다. 군생활은 8개월로 짧게 끝나버렸다.

제대 한 직후인 그해 12월, 《영화세계》 강인순(姜仁淳) 사장의 제의로 다시 잡지 편집장이 되었다. 강인순은 1957년 초 한창석으로부터 《영화세계》를 인수하여 운영하고 있었다. 이후 그는 <미망인>(1955)을 연출한 영화감독 박남옥을 편집장으로 한 영화잡지 《씨네마팬》을 창간하여 발행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잡지를 인수한 강인순은 편집진을 교체하고 구성을 대폭 개편해 《영화세계》를 보다 전문성 있는 영화잡지로 탈바꿈하려 했던 것 같다. 강인순의 사촌 동생이자 훗날 영화 제작자와 감독이 된 강대진(姜大振, 1933~1987)과 강대선(姜大宣, 1934~2023) 형제 역시 이 잡지의 기자와 편집장으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이 무렵, <영화세계>에 '필화' 사건이 벌어졌다. 1958년 남편 이철혁과 사별한 배우 조미령이 호텔에 머물면서 산부인과를 드나든다는 '가십'이 돌았다. 이 내용을 담은 기사가 《영화세계》 1959년 신년호에 실렸다. 이 기사를 본 조미령 측에서 크게 반발했다. 근거가 확인되지 않는, 다분히 악의적인 내용이었다. 이 일로 인해 한동안 잡지가 어수선해졌다.

그러던 중, 강인순 사장이 어느날 나를 불렀다. 강 사장은 이 일을 수습하느라고 고심하던 중이었을 것이다. 강 사장은 내게 문제의 조미령 기사를 쓴 사람이 누구인지를 왜 발설했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차기 발간호의 '특집' 기획을 왜 마련하지 않았느냐며 내게 이것 저것 지적하듯 따져 물었다. 명동 다방에서 어느 기자와 대화하던 중, 문제의 그 기사를 쓴 사람이 강대선이라는 것을 내가 왜 말했느냐를 문제삼은 것이었다. 강 사장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의 사촌동생을 감싸려는 것인지, 이 일로 내게 트집을 잡는 것 같았다. 나는 잡지 일을 하면서 '루머'나 '가십'에는 관심이 없었다. 나중에 이 일의 전말을 알게 되었을 때 못마땅했다. 확인되지 않은 떠도는 이야기를 그대로 내보낸 것에 대해서 분명 그들은 책임을 졌어야 했다. 거의 쫓겨나다시피 《영화세계》를 관두었다. 며칠 뒤, 편집장 인수인계를 위해 만난 사람에게 업무를 알려주었다. 그는 잡지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었다. 답답했다. 적당한 선에서 인수인계를 끝냈다. 그 길로 《영화세계》와의 인연도 끝이 났다. 강인순 사장 역시 이 일로 인해 《영화세계》 경영과 편집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 무렵, 아버지가 경영하던 운수회사 '남북여객'의 사정도 어려워졌다. 당시 운수회사에는 버스를 비롯한 지프차 차주들이 소속되어 운행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회사 측과 지프차주들 간의 분쟁이 크게 일어나서 회사 사정이 곤란해졌다. 군에서도 제대했고 다시 시작한 영화잡지 일도 그만두었으니, 현실과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그저 막막했다. 1959년 1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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