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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연 Aug 27. 2024

친구에게 보낸 편지

영화사가 노만 51

2024년 5월 1일 저녁 서울 공덕동 자택 인근에서 노만. [한국영화사] 집필 당시를 회고하고 있다.


"어때요, 자료가 되겠어요?" 지난 8월 12일 월요일 오후 12시, 서울 공덕동 인근에서 노만 선생님을 뵈었다. 바로 지난 주였던 8월 5일 만남 이후 일주일 만이었다. 연재를 위한 인터뷰를 하던 중, 선생님은 뜻밖의 이야기를 하셨다. 일 년 전 타계한 고교, 대학시절의 친구 채조병 선생이 다시 되돌려준 선생님의 편지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일주일 후, 선생님은 작은 서류봉투를 가지고 오셨다.

선생님과의 인터뷰는 베트남 반미 샌드위치와 따뜻한 베트남식 연유커피를 곁들인 '브런치'로 시작된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목이 마르거나 배가 고파오면 하나 더 시킨다. 얼음이 없는 에이드 음료를 주문한다.

지난 주에 말씀하신 '편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봉투 앞면에는 '경남 진해군 신흥동 관사 104호 채조병 소위 앞'이라 쓰인 큼직한 글씨와 우편 소인이 붙어있고, 뒷면에는 '서울 인현동 189 노만길'이라고 쓰여있다. 봉투를 열어보니 200자 원고지 네 장에 만년필 글씨로 빼곡히 적힌 편지가 나왔다. 첫 장과 둘째 장은 원고지 단면에, 셋째 장과 넷째 장은 양면으로, 총 여섯 면에 쓰여진 편지였다. 이 중 셋째 장과 뒷면까지는 세로쓰기로, 넷째 장과 뒷면은 가로쓰기로 편지 내용이 마무리되고 있었다. 원고지 하단에는 '월간 야담과 실화; 월간 이야기'가 적힌 잡지사 필자 의뢰용 전용 원고지였다. 이들 잡지 소속되어 있던 것은 아니었고, 어디선가 얻어놓았다가 쓴 원고지였다.

1959년 1월에 쓰인 이 편지는 노만 선생님이 경남 진해에서 해군 소위로 임관한 친구 채조병에게 보낸 편지이다. 특히 이 편지에는 노만 선생님이 강인순 사장의 제안으로 다시 <영화세계>의 편집장으로 있다가 그만두기까지의 전후 과정이 서술되어있다. 그리고 현실에 대한 치열한 고민, 영화와 글쓰기에 대한 당시의 고민과 계획을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여기에 이를 소개한다.

  조병이

  밀리다 보니 이제야 쓰게 되나보다. 네 놈이 혼자 방구석에서 처박혀 있을 생각을 하니, 서울도 아닌 진해 구석에서 말이다. 따분하다. 술하구 담배 깨나 늘겠구나. 머리는 산만하구 말이다. 사실 그렇지 않지도 모르겠지만서두.
  따분한 건 나다. 며칠은 그냥 집에 박혀서 낡아빠진 잡지 부스럭지, 그것도 아리랑, 명랑, 따위들이다. 이것을 뒤지며 세끼 밥만 얻어 먹고 있으려니까 안됫더라. 참 넌 아직 모르고 있겠군. 영화세계 편집장님 자리도 고스란히 물려줬네. 한참 불평이나 해야겠군. 너도 아다싶이 들어간지 열흘도 안돼 나와 버렸다니 한편 실없는 놈이라구도 하겠지만 그게 아녀. 편집계획을 세워 취재도 하고 활동하고 있는데 어떤 놈(실은 이놈은 내가 사장에게 말해 일어와 철자법과 문장이 통하는 사람을 쓰야겠다는 고집에서 채용한 놈팽이다)의 편집 계획서를 어떤날 아침에 쓱 내놓고는 참고하란다. 하하. 그래서 나는생각했다. 화를 내야할건가. 당장 집어쳐야 할 건가, 말이다. 생각해보니 화가나더라. 그래서 먼저, 도대체가 그런 법이 어데 있느냐고 따졌다. 그래도 명색이 편집장이라고 내가 앉었는데 나한테 이렇다 할 의논도 없이, 그것도 일을 하고 있는 지금에야 말하고 있으니 어떻게 일하겠느냐, 따졌지. 그랬더니 우선 자기가 잘못한 것은 아는 모양이더라. 이렇게 자세히 쓰다는 안되겠다. 딴얘기도 많은데. 하여튼 그래서 그만두고 편집계획 세운 놈이 편집장의 역할을 하고 알고보니 내 계획은 하나도 안썻더라. 이건 후일담에 속하지만 그놈은 활자 감수도 과정도 모르더란다.
  각설이떼하고, 이래서 그만 두고 요즘은 빈둥빈둥 놀고있지. 그런데 김씨(키큰)한테 연락이 와 영화예술이라는데 말을 끄냈던 모양으로 만나잔다고 해서 오늘에야 나갔었다. 네 편지 받은게 그러니까 그저껜가 보다.
  글쎄 씨나리오도 맘은 있고 평론에도 손을 좀 대 보고 싶고. 하여튼 모든게 불만스럽고 현실에겐 구역질이 나구. 그러면서도 나 자신은 또 현실만큼 수준도 못되는 것 같기두 하구.
  
  어제 '씨나리오 작법'이란걸 샀다. 오영진 씨가 감수했다고 저자의 이름과 같은 호수로 박아내고 서문도 썻더라. 예의의 서문과 같이 격찬, 좀 보니 어데서 많이 보던 제목들이다. 차례가 말이다. 그래서 '씨나리오구조론'란 걸 들고 펼쳐보니 이건 참 놀라운 일이더라. 어떻게 그렇게도 '야끼마시'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무엇이 '꾸준한 노력의 결정'인지 모르겠더라. 오 씨는 아마 '씨나리오 구조론'도 못읽은 모양이더라.
  하여튼 차례도 꼭 같고 책 안의 인용도 일본 것의 걸 그대로 번역해놓고... 화가 난다. 이게 삽십년만에 영화 그것도 '씨나리오'에 관한 책이 유사 이래 처음 발간되는 선물이란다. 차라리 편저라고 썼으면 몰라도 '저'라고 뚜렷이, 낯이 간지러운 얘기다. 화가 난다. 모두 이런 식의 것이니, 말은 해 뭘 하냔 말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판이 거듭 함에 따라 미비한 점을 보충해 나가겠다' 철면피도 이상은 없겠더라.
  이따위 얘긴 그만두자. 속상한다. 회의를 느끼개 해.
  그래 요즘은 뭘 좀 쓰냐. 황 선생은 그 전에 길에서 만나 뵙는데 한 번 맘나자고 하시더라만... 그리 탐탁지않은 표정이더라.
  군에 있을 때 너도 하나 들고 나오는게 어떠냐. 시간도 있고 더욱 집에서 떨어져 살고 있을 때는 쓸 수 있는 동기가 많이 발견될 게 아냐. 나두 무얼 쓸가, 하고는 있지만 뜻되루 안되구. 자꾸 이제는 눈 앞 살아나갈 생각만 둔다. 네가 국수를 먹게되면 난 생활 대책을 세워 나가야 할 의무가 짊어지게 마련이다.
  감독이 되려면 메로드라마 작가가 되야만 하구 더 심하면 '딴따라'를 야끼마시 해 할 팔자니 그건 너무하잔니. 몇 십년 전 유행가를 부르라니 원 참.
  나도 소설을 써야지. 지금은 이런 생각 중이다. 정한숙의 말이 "하늘은 넓고 거리는 턱 트였는데 어쩐지 벽에 같히어 살고 있는 것" 같다고 한 신문을 봤다. 옳은 말인 것 같애. 그치도 제법이야.
  요즘 난 비극이란걸 자꾸 생각해본다. 야스파스의 비극론을 이제 사볼 참인데. 네 졸업 논문이 생각나서 쓴다. 요즘 국산영화를 보면 왜 자주 울지. 죽구,자살하구, 찡그리고, 그게 도대체 무엇이 슬픈건가. 그건 아냐. 감정일 뿐이야. 값싼 그것 말이다. 정말 비극은 울구 짜구 하는 그것들인 것이, 그 년놈들이구 그 뒤에서 구경하구, 또 좋다구 그걸 보려고 밀려드는 그런 류의 전용의 것이라구 생각해. 그래서 내가 다시 파 보고 싶은 충동이 자꾸 일어난다.
  그래서 난 죽음을 헤아릴 수 없는 박두한 인간 몇을 등장해서 하나 소설이나 씨나리오를 써볼 참이다. 암만 제목을 생각해봐야 그럴듯 한 게 없어. 그건 이제 한참 써 먹은 '반항'도 뭐도 아냐.
  그래서 가제를 붙였는데 '인간의 한계'라구. 지금 살고 있는 것은 인간이 아니구, 죽으면 그건 쓰레기도 못돼. 쓰레기면 그래도 악착같이 버리려구 쓰레기차만 오기를 고대하는데 그것도 아니구. 쓰레기 속에는 좀 이용할 것두 있구 말이다. 비료로 써 먹을 것도 있을텐데 그것두 아니거든. 그래서 한계라구 했는데 마지막이 아직 잘 모르겠어. 어떻해야 한계를 벗어나느냐. 그것이거든.
  겸해서 말이다. 비극의 한계란 영화론을 하나 생각중이야. 네가 보던 책이나 책이름을 좀 아르켜 줘. 공부해야겠어.
  글쎄 '작심삼일'이라구, 어떨른지. 하여튼.
  너무 갈겼더니 가슴이 답답한데, 그럼 이만 쓰기로 할가.
  서울 오거던 한 번 꼭 들려라. 술을 놓던 않놓던 얘기나 좀 하자.
  네 푸랜도 좀 알겸.

  1월 14일 밤 12시 5분 서울서 만길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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