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파담 Sep 27. 2024

13. 기적을 만난 행복의 날

13일차, 산 후안 데 오르테가와 빛의 기적…벨, 나의 순례길 스승

벨로라도를 나서는 길. 티론강을 거너는 '엘칸토' 로마노다리(Puente Romano 'el canto') -노래하는 다리라는 뜻으로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다리다.

새벽부터 비가 내리고 있다.

27km를 걸어야 하는 상황이다. 발 상태도 좋지 않은데, 비까지 내리고 있으니 걱정이 태산이다.

비를 맞으며 한 시간 가량 걸으니 양말까지 젖어들었다.

물집 잡힌 발은 퉁퉁 부어 상처가 곪을까봐 걱정이다. 

문득 나의 산티아고 순례길 제3법칙이 만들어졌다.

‘누구나 세찬 비바람을 견디며 걷는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별이 이끄는 길이라고 한다.

이 길은 바람이 막아서는 길이라고 다른 표현도 어울릴 듯 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항상 새벽녘부터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을 이겨내며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 비까지 내리고 있다.

걷는데는 최악이다. 

게다가 아침에 일어나니 감기 기운도 더 심해졌다.

돌이켜보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할 때까지 감기가 한번도 떨어진 적이 없다.

처음엔 ‘코로나’에 걸린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많은 순례자들과 한 방에서 지내다 보니, 내가 알지 못한 순간에 걸릴 수도 있다. 

새벽부터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가 생각났다.

나는 음악을 들을 때 가사도 함께 확인하는 버릇이 있다.

음과 멜로디의 흐름은 너무 좋은데, 가사를 보는 순간 ‘변태 같은 내용’(나의 생각임)도 많다.

일례로 ‘데스파시토’란 노래가 그렇다.

그럴땐, 아무리 흥겨워도 그냥 싫어진다.

‘나는 성격만 까칠한 정도가 아니구나!’


바람의 노래.

이렇게 비바람이 몰아치는 힘든 시간에는 되레 그런 노래가 힘이 된다.

걷는 동안은 음악을 듣지 않기로 했기에, 혼자서 흥얼거리며 바람의 노래를 불렀다. 

나는 그 노래의 가사를 시라고 생각한다. 팝페라 임형주가 부른 버전을 가장 선호한다.

임형주가 부른 가요는 내 취향은 아니지만, ‘바람의 노래’만은 그의 목소리와 잘 어울린다.

가늘고 여린, 깨끗함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가스펠송을 듣는 느낌이다. 

살면서 듣게 될까 언젠가는 바람의 노래를.

세월 가면 그때는 알게 될까 꽃이 지는 이유를.

나를 떠난 사람들과 만나게 될 또 다른 사람들.

스쳐 가는 인연과 그리움은 어느 곳으로 가는가.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 수가 없네.

내가 아는 건 살아가는 방법뿐이야.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 갈 수 없다는 것을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것들을 사랑하겠네.

비야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Villafranca Montes de Oca) 마을에 있는 산티아고 성당. 순례길은 이 성당을 끼고 오른쪽 언덕으로 올라가야 한다.

오늘이 아마 지금까지 걸은 날 가운데 가장 힘든날이었다.

아침 출발부터 장 회장님을 먼저 보냈다.

심하게 불어오는 바람과 무심하게 쏟아지는 비가 내 몸은 물론이거니와 마음까지 약해지게 했다.

토산토스 마을에 도착했을 때에는 더 이상 걷지를 못하겠다.

발은 통통 붓고, 물집은 쓰라려왔다. 

‘점프’. 

버스를 타고 다음 목적지까지 이동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점프는 순례길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임을 수차례 들어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몸 상태가 말이 아니기에 점프를 해도 되는 되는 순간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앞서간 장 회장님께 카카오 메시지를 보냈다.

“회장님? 잘 걸어가고 계세요? 지금 어디쯤 가고 계신가요?”

회장님이 메시지를 보지 않으신다.

출발 전 다음 목적지는 산 후안 데 오르테가까지로 이미 정해놨다.

장 회장님은 그곳을 목적지로 알고 향하고 계실 것이다.

회장님이 빨리 메시지를 봐야 힘들더라도 아헤스까지 가자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데, 무작정 내 뜻대로 할 수 없어 회장님의 응답을 기다렸으나, 묵묵부답이다.

아예 카카오톡을 확인하지 않으셨다.

오늘 목적지 산 후안 오르테가는 20명의 주민이 사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버스정류장도 없고, 내가 점프를 하려하는 아헤스까지는 2시간 정도 더 걸어가야 한다.

돌이켜 생각하면, 그 당시 회장님께서 카카오메시지를 확인하지 못하게 한 분이 하느님이 아니었을까 믿어본다.

그분이 나와 함께 고통의 순간을 걷고 계셨던 것이다.

나는 신앙인이기에 그분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본다.

‘점프를 하면 순례길을 포기한 것이야. 너는 나와 함께 걸으면서 너가 받는 지금의 고통이 은총으로 가는 길임을 의심하니?’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에 도착한 순간에는 이날의 감정이 가정 먼저 생각났다. 

하느님은 왜 점프하면 안 되는지 그날 밤 벨을 통해 너무도 자세히 말씀해 주셨다.

산 후안 데 오르테가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 30분.

오늘의 가장 힘든 구간인 소나무길에 들어서니 비는 그치고 햇살이 비친다.

오르테가까지의 소나무길은 무척 길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연속으로 이어진 길이어서 힘이 몇배는 더 드는 구간이었다.

저 앞에 산 후안 데 오르테가 마을이 보인다.

이날 엉뚱한 일이 발생했다.

장 회장님께서 그토록 보길 원했던 카카오메시지를 오후가 되서야 확인한 것이다.

나는 오르테가에 거의 왔을 즈음이다. 회장님은 가는 길에 로사 자매님을 만나 카카오톡을 확인하지 않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걸으신 것 같다.

“나는 오르테가를 지나서 더 가고 있네. 오르테가에는 숙박 장소가 없어. 그래서 로사씨가 아헤스까지 가자 알베르게를 찾으라고 하네. 아헤스까지 얼른 오게나.”

“안돼요. 오르테가에 이미 예약을 해 놓아서 취소도 못해요. 지금 취소하면 환불도 못받아요. 여기는 호스텔이라 비싼 가격이에요. 저녁식사까지 포함됐기에 100유로 날리는 거에요. 나는 여기서 쉴 테니 알아서 하세요.”

“알았어. 그 마을로 돌아갈게.”

장 회장님이 산 후안 데 오르테가에 돌아온 시간은 오후 3시가 넘어서였다.

돌아온 시간을 계산해 보면 아헤스 근교까지 갔던 상태일 것이다. 쉬지 않고 돌아오셨다고 하니 30km는 족히 걸으셨다. 장 회장님은 많이 피곤하셨는지 씻자 마자 침대로 향하셨다.

‘이렇게 조그만 마을이니 알베르게가 없다고 착각하셨구나.’

산 후안 오르테가는 마을 전체를 둘러보는데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아주 조그만 마을이다. 

그러나 이 곳은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와 함께 순례자로서는 소홀히 지날 곳은 아니다.

성 요한 성당(Iglesia de San Juan de Ortega)에 칼사다의 도미니코 성인의 무덤처럼 오르테가의 성 요한 무덤이 있기 때문이다. 오르테가의 성 요한은 칼사다의 도미니코 제자다.

그 역시 순례자를 위한 삶을 살았다.

오르테가의 성 요한의 이름은 벨라스케스(Velazquez)다.

그는 부르고스에 태어났고, 칼사다의 도미니코와 함께 순례자를 위해 다리를 건설하고, 길을 보수하는 데 일생을 보냈다. 그리고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성지순례를 마친 후 ‘성전’을 하느님께 봉헌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1114년 오르테가로 돌아와 성당을 지었다. 이곳에 탄생한 요한 성당은 순례자를 위한 병원까지 함께 운영했다. 이 성당은 순례자들이 늘어나자 수도원에서 숙박까지 받았다고 한다.

성당을 둘러본 후 오르테가의 성 요한 성인이 ‘임산부의 수호성인’이라는 것에 놀랐다.

이 이야기의 전승은 다음과 같다.(믿거나 말거나)

스페인 통일왕국을 완성한 이사벨 여왕이 요한 성인의 무덤을 찾아 ‘자신이 무사히 아기를 낳기를 기도했다’고 한다.

기도를 끝낸 이사벨 여왕은 성인의 유해가 보고 싶어 돌로 된 석관을 열라고 지시했다. 성인의 무덤은 이제까지 한 번도 열린 적이 없기에 주변의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모두 망설였다고 한다.

완강한 여왕의 뜻을 거부할 수 없었기에 석관의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하얀색 벌들이 관 속에서 쏟아져 나왔다. 오스테가의 성 요한의 몸은 부패하지 않은 채 그대로였다고 한다.

놀라움과 두려움에 떨던 여왕은 서둘러 석관 뚜껑을 닫으라 명령했고, 그러자 하얀 벌떼들이 다시 석관 속으로 쏟아져 들어갔다고 한다.

오르테가의 성 요한성당(Iglesia de San juan de Ortega)으로 정면에 보이는 입구가 본당이다. 오르테가의 성 요한 석관은 이 곳에 있다.
12-13세기에 만들어진 로마네스크 아치. 무덤인 것 같은데 누구인지 모르겠다. 나는 이 무덤은 성 니콜라스라고 말하고 싶다.
저 햇빛은 오후가 되면 성당안으로 들어와 제대쪽 주기둥(주두)들을 비춘다. 이 성당이 기적의 성당으로 불리는 이유는 바로 이 빛의 움직임 때문이다.

나에게 행운이 찾아왔다.

내가 마을을 둘러볼 때는 성당이며 부속경당이 모두 닫혀 있었다.

마을을 둘러본 후 성 요한 성당 앞 벤치에 앉아 있는데, 대형버스 한 대가 들어왔다.

성지순례 온 사람들임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맨 먼저 내린 분이 성당 문을 열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뒤따라 성당에 들어간다.

나도 그들을 따라 들어갔다.

문을 열어주신 분은 수도원 신부님이셨다.

오르테가의 성 요한이며, 성당 내부를 소개하시는 듯 했다..

사람들이 순례를 마치고 나갈 때, 신부님께 다가가 요한 성당의 스템프(세요)를 부탁드렸다. 그리고 이 석관이 오르테가 성 요한의 석관이라고 알려주셨다.

신부님이 말씀해 주지 않았다면, 마네크스 양식의 진수였던 캐노피 석관이 오르테가의 성 요한 무덤으로 착각했을 것이다.

신부님께 스템프(세요)까지 받고 나니, 신부님은 나에게 축복의 기도를 해 주셨다.

가장 힘들었던 날이 가장 은총을 받은 날로 변했다.

앞에 보이는 작은 석관이 오르테가의 성 요한 석관이다. 저 석관을 열면 하얀 벌들이 쏟아져나올 것 같다.

다시 숙소로 들어와 배낭을 정리하고 있는데, 홀딱 젖어 있는 벨이 들어왔다.

벨도 오늘 무척 힘들었던 것 같다.

토산토스에서 출발한 벨은 원래대로라면 오전 중에 오르테가를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이제서야 오르테가에 도착했다는 것은 오늘 길이 험난했는지 짐작되는 대목이다.

이 호스텔은 1층은 카페를, 2층에는 숙소를 운영하는 곳으로, 피자 맛집으로 소문났다.

내가 1층에 내려가니 벨이 피자를 시켰다며 같이 먹자고 한다.

벨과 대화 중에 ‘코덱스 칼릭스티누스’에 대한 이야기를 깊게 나눴다.

이미 나헤라에서 이 책에 한 번 이야기를 들려주었지만, 그때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엔 벨이 자신이 순례를 위해 준비해 온 커다란 종이를 펴 보이며 하나씩 설명해 줬다.

벨은 코덱스 칼릭스티누스에 대해 순례자가 알아야 할 지침서라고 강조한다.

벨이 정리해 온 신문 크기의 순례길 지침서. 순례자 여권만큼 정성스럽게 가지고 다닌다.

그리고 이 책을 꼭 보라고 말하며, 자신에게 코덱스 칼릭스티누스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이것이라며 소개한다.

(CODEX CALIXTINUS) The pilgrim route sis a very good thing, but is is narrow. For the road which leads us to life is narrow; on the other hand, the road which leads to death is broad and spacious. the pilgrim routh is for those who are goods, it is the lack of vices, the thwarting of the dody, the increase of virtues, pardon for sins, sorrow for the penitent, the road of the righteous, love of the saints, faith in the resurrection and the reward of the blessed, a separation from hell, the protection of th heavens. It takes us away from luscious foods, it makes gluttonous fatness vanish, it restranins voluptuousness, constrains the appetutes of the flesh which attack the fortress of the soul, cleanses the spirit, leads us to contemplation, humbles the haughty, raises up the lowly, loves poverty, It hates the reproach of those fuelled by greed. It loves, on the other hand, the person who gives to the poor. It rewards those who live simply and do good works; And, on the other hand, it dose not pluck those who are stingy and wicked forom the claws of sin.-(코덱스 칼릭스티누스) 순례길은 아주 좋은 길이지만 좁다.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길이다. 반면 죽음으로 인도하는 길은 넓고 광활하다. 순례길은 선한 사람을 위한 길이다. 순례길은 악덕의 부족(?), 육체의 위축, 덕의 증가, 죄의 용서, 회개한 자의 슬픔, 의인의 길, 믿는자들에 대한 사랑, 부활에 대한 믿음과 복된 자의 상급, 지옥으로부터의 분리, 천국의 보호다. 그것은 우리를 맛있는 음식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탐욕스러운 비만을 사라지게 하며, 풍만함을 억제하고, 영혼의 요새를 공격하는 육체의 식욕을 억제하고, 영을 깨끗하게 하고, 우리를 묵상하도록 인도하고, 오만한 자를 낮추고, 낮은 자를 높이며, 가난을 사랑한다. 순례길은 탐욕에 사로잡힌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것을 싫어한다. 반면에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푸는 사람을 사랑한다. 순례길은 단순하게 살고 선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지만, 반면에 인색하고 악한 사람들을 죄의 발톱에서 뽑아내지는 않는다.(나름데로의 해석이라, 잘못된 번역이 있어 원문을 덧붙여본다.)

벨은 또 자신이 순례길을 통해 받고자 하는 은총과 길목 길목에서 봐야 할 것들, 그리고 자신의 회심을 위해 지었던 죄의 목록들, 이번 순례길에서 가야할 마을까지 모두를 한 장으로 정리해놨다.

벨은 코덱스 칼릭스티누스를 꼭 읽어보라고 제안했고,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날부터 벨은 나의 순례길 스승이 됐다.

오늘도 오르테가의 밤이 지나간다.

비수기의 순례길은 한 적하다. 마주치는 순례자도 그렇게 만치 않다. 설령 마주치더라도 몇 분 지나면 이렇게 아무도 없는 길을 홀로 걷게 된다.


이전 12화 12. 아름다운 마을에 베드로 사도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