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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파담 Sep 29. 2024

14. 예술인가 착취인가 그것이 문제

14, 15일차, 카스티야 왕국의 수도 부르고스에 오다

알퐁스 도데의 별.

양치기와 주인딸 스테파네트 아가씨의 풋풋한 사랑이야기였던가?

갑자기 이 소설이 생각나는 것도 신기하다.

하늘에 별이 떠 있기 때문일까?

이 소설에서 은하수도 등장했던 것 같다.

은하수는 수많은 영혼이 수놓은 별들의 길이라고!

산티아고 순례길은 야고보라는 큰 별이 인도하는 길이자, 많은 순례자들이 수놓은 별들의 길이리라.

앞에 보이는 마을이 아헤스다. 우리는 이 마을에 도착해 간단하게 빵과 커피, 쥬스로 아침식사를 가졌다.

아침 6시 40분.

오늘은 부르고스까지 27km를 걸어야 하는 날이다.

어제 밤에는 점프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오늘까지 상태가 좋지 않다면 부르고스로 점프할 계획이라고 장 회장님께 이미 말씀드렸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니 발 상태가 어제와 너무 다르다. 물집에 굳은 살이 배긴 듯 아물어 있다.

신발끈을 매고 뛰어봐도 아픔이 없다.

물집으로 언제 고생했냐 비웃듯 몸도 가볍다.

‘오늘 걸어 갈 수 있겠는데!’

떡갈나무 십자가 앞

산 후안 데 오르테가를 출발한 시간은 오전 7시.

오늘의 길은 초반과 후반으로 나누고 싶다.

후반을 부르고스라는 도시로 들어선 순간으로 정한다면, 그때부터 무척이나 지루하다고 지치는 구간이다.

성모 마리아 대성당(Cathedral de Santa Maria de Burgos)이 있는 구시가지까지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초반은 여러 마을을 거치다 보니 지루한 감이 없다.

게다가 아헤스(아침식사를 함)를 지나 아타푸에르카(Atapuerca)에 도착하면 떡갈나무 십자가를 만나게 된다.


잠시 잊었던 순례길의 의미를 되새기는 숙연한 마음이 들게 하는 장소다.

돌무더기 위에 세워진 십자가를 보니 예수님이 십자가형을 당한 골고타 언덕과 같은 인상을 받았다.

돌무더기는 해골의 모습으로 연상됐다.

떡갈나무는 그 썩지 않는 재질 때문에 그리스도교에서는 영원한 생명, 구원을 상징하는 나무다.

예수 그리스도가 매달렸던 십자가 나무도 떡갈나무로 만들어졌다고 한다.(믿거나 말거나)

여기 서 있는 떡갈나무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만나는 장소로 여겨졌다.

신앙을 증언하고 떠나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들었다. 

‘오늘부터 죄 묵상을 시작해야겠구나!’ 

스물아홉 청년시절, 30일동안의 이냐시오 대침묵 피정을 해 본 적이 있다.

30일로 구성된 이냐시오 피정은 15일은 자신의 죄를 묵상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이후 15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부활을 체험하는 과정으로 나눠진다. 그 당시 나는 죄에 대한 성찰이 부족한 탓에 지도교사였던 예수회 신부님으로부터 꾸중을 들었었다.

‘이번엔 제대로 해 봐야지’ 결심하며, 떡갈나무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약속을 했다. 

떡갈나무 십자가 밑에는 순례자들이 두고 간 수많은 물건이 쌓여 있다.

얼굴 사진부터 글이 쓰인 형형색색 끈들, 그림들, 십자가 밑에 놓인 돌멩이까지.

그 물건들에서 왠지 모를 슬픔과 애절함이 전해오는 기분이다.

마치 그 무엇인가를 잊지 말고 기억해달라는 애절한 울림처럼.

그곳에는 한글로 쓰인 돌멩이도 있었다.

‘엄마 사랑해요.’ 어떤 이는 엄마에 대한 사랑을 증언하지 않고서 지나칠 수 없는 장소였다보다. 

장 회장님은 떡갈나무 십자가에 소망을 담았다.

‘새만금신공항백지화’라고 쓰인 배지를 나무 밑둥에 걸어 놓으셨다.

회장님은 욕심 그득한 새만금이라는 탐욕의 땅에 대한 변화를 기원하시나 보다. 정말 훌륭하신 분이다.

우리는 뒤에 도착한 외국 분에게 기념사진을 부탁드렸다.

이곳을 지나 내려가는 길에 호박돌로 만들어 놓은 동심원이 있다.

여기에서 부르고스가 보인다.

부르고스 공항에 착륙하고 있는 비행기. 바로 머리위로 내려가기에 순간포착 카메라에 담아봤다.

‘목적지가 보이는 순간 그곳은 닿지 않는다’는 순례길 법칙이 갑자기 적용되기 시작했다.

12시 30분. 드디어 부르고스에 들어섰다.

여기서부터 지겨운 길이 시작된다.

부르고스 구시가지로 들어간 시간이 오후 2시쯤니, 1시간 30분을 도로변 인도를 따라 걸었던 셈이다.

이 지겨운 구간을 걸으면서 두어 차례 쉬어갔던 것 같다.

부르고스 구시가지에 들어서면 여기서부터는 또 다른 풍경이다.

들어선 순간 보이게 되는 부르고스 성모 마리아의 대성당의 웅장함에 압도당한다.

‘와! 이렇게 아름다운 성당이 있다니!’

누가 중세를 암흑기라고 했는가! 누가 고딕미술(건축)을 예술의 암흑기라고 말했는가!

이렇게 아름다운데!

코로나 호텔 입구에서 바라본 부르고스 성모 마리아 대성당의 모습. 우리숙소가 성당까지 너무 가까워 좋았다.

‘꼬지또, 에르고 숨’(Cogito, Ergo Sum). 대학 시절 너무도 많이 외웠던 단어다.

데카르트(Rene Descartes)를 좋아했던 학생이었기 때문일까!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니.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의 말이다.

사실 데카르트의 인식론은 삼위일체의 신비를 설명한 아오스딩(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에 근원을 두고 있다.

중고등학생 시절, 세계사 시간에 중세를 경제, 문화, 사회의 암흑기라고 배웠다.

신만이 전부인 시대로. 지금은 어떻게 가르치는지는 모르겠다.

누가 그렇게 정의했을까?

나는 왜 그 정의를 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걸까?

‘그 시대가 정말 암흑기일까요? 경제가 후퇴하면 암흑기인가요? 문화가 달라지면 암흑기인가요? 사회가 변화하면 암흑기인가요?’

정말 암흑기든 아니든 간에 당당하게 함께 의심해 보자는 얘기를 했어야 하는데.

암흑기 예술이라는 고딕미술은 나에게 그 무엇보다도 위대한 작품으로 보인다.

고딕건축의 진수인 성모 마리아 대성당을 보는 순간 그 형언할 수 없는 넘치는 감정을 어찌할 수 없을 정도다. 

하늘을 향해 높이 쏟아 있는 것 자체가 너무 대단하다.

그리고 엄청난 높이에 서 있는 성상들과 조각품들은 경외감을 들게 한다.

‘고딕예술은 천상의 작품 같아요.’

부르고스의 성모마리아 대성당(Catedral de Santa Maria de Burgos)은 내일 시간을 내 자세히 볼 계획이다.

아시아마트로 가면서 둘러본 부르고스. 대성당 주변을 돌면서 시내구경을 시작했다. 트립바이저앱에서는 부르고스의 10대 볼거리를 추천하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에 붙여 놓은 벽돌모습. 매우 잘 보존돼 있다. 대성당 바로 옆에 있다. 현재 시립 기록 보관소로 쓰여지는 건물이다.

어제 산 후안 데 오르테가 호스텔에 머물 때에 부르고스에서 2박을 쉬어 갈 호텔을 예약했다.

우리의 숙소는 4성급으로 코로나 호텔(Corona de Castilla)이다.

성모마리아 대성당까지는 5분 이내의 위치로, 시내 한복판에 있는 호텔이다.

호텔에 체크-인을 하자, 숙박 요금 정산은 체크 아웃때 하라고 한다.

우리 방은 5층 구석쪽이었다.

호텔 조식을 예약하려 했지만 가격이 비싸 외식으로 할 생각이다.

부르고스는 대도시이기에 식사를 하는데에 문제가 생길 것이 없고, 오히려 더 다양한 것들을 맛볼 수 있을 것 같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부르고스를 둘러보기 위해 나왔다.

우리 호텔에서 가장 가까운 성당은 성 고스마와 다미아노 성당(Iglesia de San cosme y San Damian)이다.

‘주일미사는 이 성당에서 드려야겠군.’ 첫 번째 스캐닝을 마쳤다.

이 성당 앞을 지나는데 벌써 부활절(Semana Santa) 행사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다음 주면 부활 주간이다.

성 고스마와 다미아노 성당 신자들이 부활(세마나산타) 행사 연습을 하고 있다. 음악에 맞춰 몸을 좌우로 흔들며 걷는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옛날 상여를 매고 나가는 듯하다.

오늘은 성모 마리아 개선문(Arco de Santa Maria)만 구경할 생각이다.

장 회장님을 먼저 숙소로 보내고, 나는 성모 마리아 개선문 앞 벤치에 앉아 하나하나씩 검색을 시작했다.

개선문은 12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부르고스로 들어가기 위한 성문이라 한다.

지금 서 있는 모습은 16세기 신성 로마 황제 카를로스 5세에 의해 재건된 모습이라고 한다.

아치 정면에 있는 동상들은 맨 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마리아다.

그 밑은 부르고스를 지키는 수호천사가 있다. 그 아래로 카스티야 독립왕국 백작 페르난도 곤잘레스, 신성로마 황제 카를로스 5세, 레콩키스타의 영웅 부르고스의 수호자 엘시드다. 맨 밑단에는 부르고스를 만들었다고 하는 창시자 디에고 로드리게스 포르셀로스를 사이로 카스티야의 판사인 누노 라수라와 라인 칼보가 앉아 있다.

건물 내부는 아담한 전시장이다. 입구에 기사의 검과 대포도 볼 수 있다. 또 대형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부르고스 예술가 호세 벨라 자네티의 작품이라고 한다.

개선문으로 앞 알란손 강 위에 산타 마리아 다리(Puente de Santa Maria)도 인상적이다.

최초로 지어진 시기는 알 수 없다고 한다.

14세기 들어 강물을 이용할 목적으로 보수가 이뤄졌다는 기록이 시작이다. 예술적 모습을 갖춘 때는 16세말이라고 한다. 이 다리는 잦은 전쟁으로 수없이 무너지고 재건됐다고 한다. 또 홍수로 파괴되는 일이 빈번해 수세기 걸쳐 다리 공사에 막대한 비용이 들었다고 한다.

지금의 다리는 지난 2006년 옛 모습을 되찾는 목적으로 재건된 모습이다. 이때부터 다리의 안전성을 위해 완전 보행자용으로 바꿨다고 한다.

호텔에 돌아가니 내일부터 썸머타임(Summer Time)이 시작된다는 내용이 엘리베이터에 붙어 있다.

해가 늦게 지는 나라인데, 내일부터는 더더욱 고개를 내밀고 있을 것 같다.

내일은 부르고스 성모 마리아 대성당을 구경할 계획이다. 너무 기대된다.

산타 마리아 개선문. 부르고스의 영웅들이라고 한다. 이렇게 조각상으로 만들어 놨으니 부르고스 시민들이 인정하는 사람들이겠지!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오늘은 부르고스 성모 마리아 대성당을 둘러볼 계획이다.

스페인의 3대 고딕성당은 모두 성모 마리아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톨레도 성모 마리아 대성당(Catedral de Santa maria de Toledo), 세비야 성모 마리아 대성당(Catedral de Santa maria de la sede), 그리고 오늘 방문할 부르고스 대성당.

오늘 드디어 스페인 3대 고딕 대성당 투어를 완성하는 날이다. 

몇 해 전 스페인 남부를 여행했던 경험이 떠오른다.

톨레도 대성당 내부의 웅장함, 궁중화가 엘 그레코의 그림들.

세비야 대성당에서는 콜롬버스 무덤과 예수님의 가시면류관에 쓰였던 나뭇가지를 보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은 오전 시간대라 사람이 없다. 일요일이어서 꽤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오히려 한산했다.

10시가 되자 바로 부르고스 대성당 입장권을 받았다. 순례자 여권을 제시하면 1인 5유로다.

성당 내부에는 각 포스트마다 영어 오디오 가이드가 제공되니 참고하면 좋다.

‘아만보(아는만큼 보인다)’이기 때문이다. 

부르고스 대성당은 13세기(1221년)에 마우리시오 주교가 공사를 시작해, 18세기인 1765년에 완성된 성당이다.

600년이라는 건축 기간을 가진 성당인만큼 예술 작품으로 가득 차 있다.

교왕 레오 10세때 ‘가장 아름다운 대성당’으로 칭호를 받기도 했다.

1,887년 9월 26일 스페인 국가보물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1921년 교황 비오 11세는 부르고스 대성당에 바실리카의 직함을 내렸다. 바실리카는 교황청 직속 성당을 부를 때 쓰는 말이다.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사르멘탈문. 13세기 작품으로 당시엔 성직자들만 들어갔다고 한다.
여기 앞에 보이는 소성당에서 미사가 열린다. 장 회장님은 여기에서 미사를 드렸다고 한다. 이 성당 내부(들어가자 마자 오른쪽)는 치마입은 예수 십자가로 유명하다.

부르고스 대성당을 함께 둘러보자.

‘포르티코 델 사르멘탈(Portico dle Sarmental)’은 들어가는 입구다.

성찬의 문으로 알려진 입구로, 과거에는 성직자만이 출입할 수 있었던 장소.

이 문이 중요한 이유는 성당이 지어지기 시작한 13세기 작품이기 때문이다.

전승에 따르면 문 가운데 새겨진 동상은 성당을 처음 지었던 마우리시오 주교라고 한다. 또 다른 해석은 알메리아의 첫 번째 주교이자 부르고스 지방의 순교자인 성 인달레시오일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그리고 왼쪽 3명과 오른쪽 3명의 이름은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맨 왼쪽부터 이름없음, 아론, 모세, 베드로, 바오로, 이름없음).

반대쪽에 있는 황금의 계단(내부)은 신자들이 드나드는 곳이었다.

이 문은 코로네이라문(외부)으로, 예수의 열두 제자가 서 있는 문이다.

맨 위에 예수 그리스도에게 성모 마리아와 요한이 심판받는 이들을 구원해 줄 것을 청원하는 모습이다.

그 아래에는 최후의 심판이 새겨져 있다.

황금의 계단. 여기로 신자들이 걸어 내려왔다고 한다. 외부는 코로네이라문으로 12제자와 심판의 모습이 있다.

이 성당의 중앙에는 엘시드와 그의 부인 히메나의 무덤도 있다.

그들의 무덤은 대리석 바닥만 확인할 수 있다.

대리석 바닥에는 ‘로드리게스 디아스가 히메나와 함께 이곳에 있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로드리게스 디아스는 바로 엘시드다.

이 무덤을 보기 위해 성당을 방문하지만, 이 성당의 첫 번째 하이라이트는 엘시드의 무덤 위 천정이다. 바로 거기가 완성되면서 성당 건축이 끝났다.

천정을 보는 순간 감탄의 외마디 외침만 나온다.

부르고스 대성당의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다.

엘시드와 히메나 무덤 위 천정모습. 현장에서 보면 더욱 웅장하다.

부르고스 대성당은 정말 엄청난 곳이다.

코로(Coro)도 1, 2층으로 나눠져 있다.

보통 성가대석으로 불리나, 코로는 성직자들의 전용 자리라고 생각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코로에 앉아 성직자들이 함께 성무일도를 한다.

성무일도는 그레고리안 성가처럼 노래로 불렀다.

코로 위에는 대부분 파이프오르간이 장식된다.

코로 중앙에 놓인 그레고리안 성가책

대부분 성당안으로에 들어가면 석관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 석관들은 장식용이 아닌 실제 무덤이다.

성당 내부의 석관을 보는 방법에 대해 잠깐 설명하고자 한다.

무덤이 남자 혼자다. 이 경우 대부분 성직자일 가능성이 높다.

무덤이 두 개다. 거의 왕족이나 권력이 있던 가문의 부부다.

석관 위에 만들어진 사람이 누워있는 상은 그의 생전 모습을 보여준다.

또 머리에 베고 있는 베게 개수로 직위를 가늠할 수 있다.

성직자를 예로 든다면, 베개가 한 개일 경우 주교가, 베개를 두 개 놓고 있다면 대주교, 베개가 세 개의 층이면 추기경이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지팡이가 있다.

부르고스 대성당 중앙제단화, 가운데 천상의모후상이 있다. 십자가는 두개의 가로줄인 라틴십자가다.

부르고스 대성당은 본당 제대화는 16세기 작품이다.

이 성당은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되었기에 중앙에는 천상의 어머니를 새겨놓은 조각상이 있다.

그리고 모두 금칠을 한 것이다.

제대화 제작비용은 현재의 가치로 90만 유로(한화 12억 3,000만원)라고 한다. 

황금의 문 옆에 위치한 왕족가문의 소성당(Capilla del Condestable)천정은 정말 아름답다.

이 소성당에는 왕족이었던 벨라스코와 그의 부인 멘도사가 관이 있다.

제대화 위쪽에는 두 명의 죄수와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예수의 모습이 있는데, 레오나르도 다빈치 제자의 작품이라고 한다.

또 이곳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마리아 막달레나’ 작품이 걸려 있다.

르네상스 3대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이렇게 유명한 거장들의 작품임에도 로그로뇨 성모 마리아 대성당의 미켈란젤로 ‘십자가 14처’와 부르고스 성모 마리아 대성당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막달레나’ 작품 역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기분은 왜일까!

왕족가문의 소성당. 이 소성당이 제일 화려하다. 제단화 위의 십자가와 두명의 죄수 모습이 레오나르도 다빈치 제자의 작품이란다. 관의 머리에는 그들 가문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

가톨릭 신자라면 두 번째 하이라이트는 성물보관실이다.

이곳에서 열두 사도 가운데 베드로, 바오로, 그리고 토마 성인을 만날 수 있다.

보물실에 들어간다면 베드로(오른손에 열쇠)와 바오로(오른손에 칼) 조각상과 손 장식을 꼭 찾아보기 바란다.

생각보다 찾기 쉽지 않다.

두 성인상의 왼손은 각각 황금 구슬과 황금 보배를 들고 있다.

그 안에 사도들의 뼈조각이 들어 있다.

옆에 있는 손 모양은 토마 성인의 뼈조각이 아래에 보인다.

예수님을 증언하며 순교한 사도들에게 ‘나의 삶에 대한 이끄심’을 통공으로 청하며 잠시 기도를 올렸다. 

“회장님? 베드로, 바오로, 토마 사도의 뼈조각이에요.”

“나는 그런 거 안 믿어.”

“그렇죠! 저도 그렇긴 해요.”

나는 사실 성물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의심이 많은 사람이다.

성인들의 뼈 조각이 장식된 시기를 아무리 양보해도 15세기경이다.

AD 100년의 사도들의 뼈가 존재할 수 있을까?

1,000년대에 갑자기 성인들의 뼈는 물론 거룩한 성물들이 유럽으로 넘어오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물건이 십자군 전쟁 당시 갑자기 나타난 ‘롱기누스의 창’이다.

롱기누스의 창은 현재 터키 안타키아(당시 안티오키아)에서 발견된 것으로, 예수의 사망을 확인하기 위해 로마병사 농기누스가 옆구리를 찔렀던 창이다.

예수님이 사용했던 성배도 예루살렘에서 이 시기에 발견돼, 유럽으로 넘어왔다.

예수님의 성배는 앞으로 우리가 가는 레온이라는 도시의 이시도르성당에 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성물들이 진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스페인에서 하몽을 처음 먹어본다. 역시나 내가 생각한 그 맛이다. 난 삼겹살 주세요.

두어시간 동안 성당을 둘러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다.

장 회장님과 밖으로 나와 점심 메뉴를 고르는 동안 벨을 만났다.

벨도 성당을 둘러보고 나온 때다.

벨에게 감사도 전해야 하고, 함께 식사도 하고 싶어 근처 맛집에서 점심식사를 제안했다.

이날 점심은 하몽과 샐러드, 그리고 빠에야.

벨과 장 회장님은 와인을, 나는 맥주를 마셨다. 

벨에게 부르고스 대성당에 대한 감상을 물었더니, ‘어메이징’이라고 한다.

이 말에 장 회장님은 ‘저것은 서민들 피 빨아먹은 흔적’이라고 맞받아친다.

벨은 역사에 대해 사건(event)과 유물(thing)을 구분해 유물에 대해서는 그 자체로 평가해야 하지 않겠냐고 한다.

두 분 사이에 통역하는 일이 갈수록 복잡해진다.

초등학교 영어 수준에 통역하려니 미칠지경이다.

더 이상 어려워 식사로 말을 돌렸다.

식사는 거의 100유로 나왔던 것 같다.

너무 많이 나왔는지 벨이 가볍게 한잔 하자고 한다.

우리는 성모 마리아 성문 입구에 있는 카페로 향했다. 

벨은 올 해 67세다. 장 회장님은 65세로 두 살 아래. 두 사람은 오늘 형 동생을 하기로 했다.

장 회장님은 그렇게 사용해보라고 알려줬던 파파고 음성 번역을 이제야 쓴다.

처음 써 보니 번역 내용이 엉망이다.

‘순례자는 말이 아니라 마음으로 통하니까’

장 회장님은 한국말로, 벨은 영어로 계속 얘기한다. 통역하기도 귀찮다.

‘연락하고 지내자, 한국에 꼭 와라, 필리핀에 오면 연락해라.’

이런 내용이었다.

부르고스성벽. 대성당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있다.

이날 벨과 이야기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아래의 내용이다.

다음편에서 다루게 될 이야기인 1972년작 프란치스코 생애를 다룬 ‘Brother Sun, Sister Moon’과 거기에서 나오는 영화음악(OST)들에 대해서다. 벨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가 가장 존경하는 성인이다.

그리고 나에게 ‘철의 십자가(Cruz de Ferro)’에서 무엇을 놓고 올 것인지 물었다.

나는 아직 준비가 안됐다고.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보겠다고 답했다.

철의 십자가까지 가려면 아직 한참이다. 당시엔 생각할 시간은 많다고 여겼다.

벨은 은퇴하기 전까지 유럽과 일본을 오가는 벌크선을 탔다고 한다. 벌크선 선원으로 입선해 선장자리까지 올랐다고 한다. 그리고 65세에 벌크선 선장으로 은퇴한 후 필리핀 보홀 남부에서 생활하고 있다.

벨의 순례길은 20세 청년시절에 이어 47년이 지나 다시 같은 길을 걷고 있다.

벨이 운항했던 벌크선은 세상의 끝이라고 하는 피스테라 앞을 통과했는데, 이곳은 물살이 급격히 빨라지고 물길의 변화가 심해 극히 위험한 구간이라고 한다.

이 장소를 지날때마나 많은 배들이 사고를 일으킨다고 한다.

이번엔 피스테라까지 가서 그동안의 삶을 정리하는 기회를 갖기를 희망한다고 한다.

벨이 순례길을 걷는 동안, 벨의 부인은 스페인을 관광하고 있는 상태다.

지금은 마드리드에서 쉬면서 놀고 있다고.

벨의 부인은 걷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벨 홀로 순례길을 걷고 있다.

전망대에서 본 부르고스 전경

장 회장님과 벨이 벌써 와인 한병씩 마셨다.

더 있다가는 둘다 취할 분위기다.

내일 순례길을 가기 위해 그만 쉬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벨은 순례길을 걷는 것이 무엇인지 꼭 설명하고 싶다며 수첩을 꺼내 문장 하나를 적어 보여준다. 

Life is not a bed of roses. - 인생은 장미꽃의 침대가 아니다.

It’s a rugged path of thorn and mud pools. - 그것은 가시덤불과 진흙탕의 험난한 길이다. 

벨은 왜 우리에게 이런 말을 했을까?

아무튼, 벨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 후 내일의 순례길을 위해 숙소로 향했다. 

얼큰하게 취하신 장 회장님을 숙소로 보내고, 나는 부르고스 성벽을 보기 위해 북벽으로 향했다.

성벽길을 따라 올라가니 내부로 들어가는 문이 닫혀 있다.

오픈 시간이 지났다.

‘성벽은 봤으니 됐어’

성벽 근처에는 부르고스 시내를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 앉아 마지막 부르고스의 공기를 마시고 있을 때, 파리에서 그리고 생장에서 같이 출발했던 이승희씨와 한국청년을 만났다.

한국 사람들이 부르고스 유명 타파스 맛집에 모여있다며 함께 가자고 한다.

정말 맛집이었다.

타파스 맛집 이름은 La Cantina de Burgos다.

이들과 만나기 위해 부르고스의 야경은 포기했지만, 그래도 맛있는 저녁을 먹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이날 저녁식사는 앞편(코덱스 칼릭스티누스와의 인연편)에서 잠깐 사진으로나마 소개했었던 몰리나셀카에서 생일을 맞은 재미교포 은퇴한 간호사분이 통 크게 냈던 자리다.

‘오늘 밤 횡재했다’

이제 숙소로 가야 한다.

내일 또다시 계속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 순례자들과 밤 늦게 헤어진 후 숙소로 돌아가는데 광장에 사람이 없다. 조명으로 밝힌 성당도 예쁘다. 부르고스 야경을 봤다면 더 좋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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