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차_레온에 발을 들이다
오늘은 레온으로 들어가는 날이다.
레온은 프랑스길에서 팜플로나와 부르고스에 이어 세 번째로 만나는 대도시다.
메세타 고원을 지나오는 동안 작은 마을에서는 사람 구경하기 힘들었다.
레온으로 가는 길에서는 비야모로스 데 만시야(Villamoros de Mansilla)마을에서 산도발 수도원으로 우회하는 길이 하나 더 있다.
산도발 수도원을 방문하게 되면 목적지인 레온까지의 거리가 10km 더 늘어난다.
장 회장님과 눈이 마주쳤다.
회장님의 눈빛을 통해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10km 돌아서 가고 싶지 않아.’
산도발수도원은 12세기(1167년)에 세워진 시토수도원으로, 지금은 공동묘지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 방문하기 위해서는 예약이 필수다.
http://monasteriodesandova.com으로 들어가서 하면 된다.
이 사이트에 방문해 보니 현장에서 예약하는 것도 가능할 듯 싶었다.
‘산도발수도원아! 미안해. 다음 기회에 올께! 오늘은 너를 만나고 가기 너무 힘들어.’
갈림길을 넘어 다시 합류하는 지점인 비야렌테(Villarente)까지 들어서니 기분이 훨씬 좋아진다.
10km거리를 줄여서 점프한 기분이다.
‘그것 조금 안걸었다고 이렇게 기분 좋아지다니!’
비야렌테 상점가 앞을 지날 때 그리스-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을 발견했다.
가니메데 동상이다. 그가 상징은 벌거벗은 몸과 술병과 물병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그리스신화에서 가니메데는 동성애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가니메데는 모든 인간들 중 가장 아름다운 미남으로, 이에 반한 올림푸스의 왕 제우스가 가니메데를 탐한다.
제우스가 독수리로 변신해 그를 납치한 뒤 올림푸스로 데려와 자신에 곁에 두고, 술 시중을 들게 했다.
바람둥이 제우스는 수많은 여신과 관계를 가지고,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도 많지만, 그들에게 올림푸스의 공식적인 지위는 부여해 주지 않다.
그러나 가니메데만큼은 1월 별자리인 물병자리를 담당하도록 만들어 줄 만큼 애정이 특별했다고 한다.
비야렌테를 지나면 곧 레온에 들어왔다.
레온은 큰 도시다.
포릴로 고개(Alto del Porilo)에 올라서게 되면 레온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드디어 레온에 왔구나’
레온에 대한 정보는 상당량을 숙지하고 있던 터라, 사실 어디부터,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고민이 들었다.
아직 도착하지도 못했으면서 벌써 김칫국을 마시고 있다.
드디어 레온에 입성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받아들여 호산나를 외쳤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어디에선가 빵파르가 울릴 것 같은 기분이다.
이곳에서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아웃도어점을 찾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지금 나에게 절실한 물건은 장갑이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순례길을 나서면 손이 너무 시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오른손 검지손가락은 튼지 오래돼 까칠까칠해진 상태다.
놀랐던 점은 장갑 가격이었다. 6유로(8,000원).
1만원도 하지 않는 가격인데 재질이 너무 좋다.
만일 한국의 아웃도어전문점이었으면 최소 3만원 이상은 가격표에 붙어 있을 것이다.
‘레온아 너는 물가도 저렴하구나! 너의 인상이 너무 좋다.’
레온은 스페인 북부를 대표적하 도시로, 옛날 레온 왕국의 수도였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300km떨어진 곳이다.
레온이라는 이름은 기원전 1세기 칸타브리아 전쟁에 투입된 제6 빅트리스 군단의 주둔지라는 데서 기인했다고 한다. 레온의 라틴어명은 레지오(regio)다. 이 말 뜻은 군대다.
여기서 꼭 봐야 할 목록을 뽑았다.
우선 레온대성당(Santa Maria de Leon Cathedral)이다.
이 성당은 스테인드글라스로 아름다운 3대 성당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시도르 성당도 꼭 가야한다.
이 성당은 레온대성당보다 앞선 11세기에 지어졌으며, 세비야의 주교학자 이시도르 성인의 유해가 안치돼 있다. 더불어 옆에 붙어있는 이시도르 박물관에는 예수 시대에 사용했던 성배가 보관돼 있으며, 레온 왕가의 판테온(무덤)이 있다. 성배와 관련, 예수가 최후의 만찬때 사용했던 것과 같은 시기의 물품이라는 내용은 지금도 하계의 논란거리로 알고 있다.
레온은 매년 6월, 성 요한과 성 베드로 축제가 열리는 도시다.
그 축제의 중심에 있는 성당이 성 요한과 베드로 레누에바 성당(Iglesia San Juan y San Pedro de Renueva)이다. 이 성당도 가봐야 한다.
이 성당이 관심을 받는 주된 이유는 성당 입구의 정문 건축물 때문이다.
레온에서 22km 떨어진 산타 올라하 데 에슬론자(Santa Olaja de Eslonza)마을에 베네딕도 수도회가 있었다고 한다. 이 수도회가 폐허가 되면서 방치되었다고.
성 요한과 베드로 레누에바 성당은 폐허가 된 베네딕도 수도회 출입문을 해체해서 이 성당의 출입문으로 재조립했다고 한다.
실제 성당의 모습을 보면 양 옆의 종탑과 이곳에서 조립된 가운데 건출물이 이질적이다.
또, 산 마르코 수도원(Antiguo Convento de San Marcos)도 가야한다.
이곳은 옛 산티아고 기사단이 사용한 건물로, 12세기에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와 병원이 함께 운영됐던 곳이다. 지금은 건물의 대부분은 호텔(parador)로 개조돼 들어갈 수 없다. 일부공간만 출입이 자유롭다.
나는 이 성당에 있는 ‘우는 성모’를 보고 너무 감동받았다.
여기는 로마시대(기원전) 성벽의 모습이 잘 보존돼 있다.
정말 봐야 할 곳이 너무도 많아 이틀동안 다 볼 수 있을지 ‘기대반 걱정반’이다.
장 회장님과 내가 레온 시내로 들어온 때는 오후 2시.
먼저 이미 예약해 놓은 까미노 호텔로 가야 한다.
레온대성당이 있는 중심거리에서 1.6km 떨어져 있다.
20분이면 충분히 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더 걸렸다. 호텔에 도착하니 2시 40분이다.
오면서 대형슈퍼마켓을 확인 하고, 주변 구경도 하면서 왔기에 다소 늦은점도 있지만, 40분가량 걸릴 줄은 미처 몰랐다.
호텔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는데 문제가 생겼다. 숙박 예약을 나 혼자로 해 놓은 것이다.
다행히 방은 트윈룸을 잡았기에, 프론트 직원이 바로 수정해줬다.
장 회장님의 숙박 등록을 입력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스페인의 일처리 속도는 286컴퓨터급이다.
다행스럽게도 현장에서 모두 해결했지만, 아침 조식 비용 7유로는 추가로 내야 했다.
호텔에서 여장을 푼 후 곧바로 시내 구경을 나섰다.
오늘은 내일 집중적으로 볼 문화유산을 미리 탐색하는 날이며, 내부를 들어가기에 앞서 외부 건축부터 확인할 생각이다.
동선은 레온 성벽을 돌아, 대성당과 이시도르 성당 거쳐 안토니 가우디 건축물인 까사 보티네스를 보고 산마르코수도원으로 향할 계획이다.
레온의 로마시대 성벽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성벽두께는 어마어마했다. 이 성벽을 봤던 그 당시 사람들은 성벽의 두께에 한숨만 나왔을 것만 같다.
오히려 중세시기에 만들어진 성벽들이 많았다.
성벽길을 타고 가면 레온대성당으로 이어지도록 되어 있다.
그 이유는 레온대성당 자체가 도시를 지키는 하나의 성벽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대성당앞에 도착하니 엄청난 인파가 몰려있다.
‘성주간(Semana Santa) 행렬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예수수난성지주일이다.
성지주일을 시작으로 수난과 죽음, 부활로 이어지는 성주간이 시작된다.
춘분 날짜를 알면 부활절이 언제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제1차 니케아공의회(현 투르키에 니케아)가 열렸는데, 부활절을 언제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 이때 로마교회는 춘분 후 만월이 오는 날로 정했었다.
올해 2024년에는 춘분이 3월 20일이다. 그러면 20일 이후 보름달이 뜨는 날을 떠올리고, 그 보름달의 일요일날이 예수부활대축일이 된다.(깨알상식)
오늘부터 스페인은 전 마을에서 부활절 행사가 펼쳐진다.
마을 주민들이 모두 참여하는 세마나 산타는 스페인 전역에서 가장 큰 행사다.
이것을 볼 수 있다니 정말 축복받은 날이다.
세마나 산타 행렬이 가장 크게 펼쳐지는 도시는 스페인 남부 도시인 세비야라고 한다.
그런데 스페인 북부에서는 레온의 세마나 산타가 가장 크게 열린다고 하니, 오늘 레온에 서 있는 이 순간이 은총처럼 느껴졌다.
레온의 세마나 산타.
각 성당의 신자들이 파소(Paso)를 메고 행진한다. 파소는 예수상과 마리아상이 올려져 있는 단상과 같다.
앞선 관악대가 음악을 연주하고, ‘코프라디아스’(고깔모자를 쓴 사람들)가 뒤를 따른다.
그 사이 사이로 ‘코스탈레로’(성상을 지고 가는 사람)가 움직인다.
코프라디아스의 의상 색깔은 서로 다른 성당에서 참여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과거에는 남성만 참여할 수 있었다고.
고깔을 쓰는 의미는 ‘참회’를 뜻한다고 한다.
성상을 지고 움직이는 코스탈레로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코스탈레로들은 예수님의 고난을 함께 짊어진다는 의미를 가진다.
여기까지가 일반적인 세마나 산타다.
인구가 적은 마을에서는 세마나 산타를 다른 방법으로 하기도 한다.
우리가 부활을 맞은 폰페라다 마을의 세마나 산타편에서 더 자세히 소개토록 하겠다.
세마나 산타는 전 세계인들이 기다리는 축제와 같다.
이것을 보기 위해 이 시기에 스페인으로 여행오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특히 파소에 서 있는 예수상과 성모상은 기적과 치유 등 종교적인 부분은 물론 예술작품으로서의 가치도 높다고 한다.
세마나 산타의 현장을 보고 있으니 감정이 복받쳐 오른다.
내일은 레온을 탐방하는 날이다. 볼 것이 너무 많아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