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파담 Oct 11. 2024

22. 철의십자가에 집착을 묻다

27, 28일차_가장 보고 싶었던 곳…몰리나세카와 폰페라다

폰세바돈의 아침. 새벽 노을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아침 6시 30분. 길을 떠날 준비를 마치고 순례자의 아침을 먹었다.

아침 식사는 먼저 내려온 사람이 챙겨 먹는 시스템이다.

오늘 일찍 출발하는 이유는 갈 길도 멀지만, 철의 십자가에서 조금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알베르게를 출발해 철의십자가가 있는 이라고 언덕(Monte Irago)정상까지는 1시간정도 소요된다.

커다란 돌맹이를 가슴에 안고 오르니 더 힘이 들었다.

어느덧, 내 눈앞에 철의십자가(Cruz de Ferro)가 보였다.

가슴이 뭉클하다.

‘내가 그렇게 보고 싶어 했던 곳에 도착했구나!’

도착한 것을 반기는 듯 아침 노을이 철의십자가 뒤로 피어올랐다.

무척 황홀한 순간이었다.

철의십자가에 도착해 이 나무에 스며든 애환의 깊이를 느껴본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무게가 느껴진다.

철의십자가는 순례길을 준비하면서 익히 알던 장소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가 기억난다.

그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딸을 잃은 어머니가 있었다.

그 딸을 죽인 살인자는 지금 감옥에 있단다.

그 어머니는 앞서 용서의 언덕에서 펑펑 울며 ‘그 살인자가 도저히 용서되지 않는다.’는 고백을 한 적 있다.

그녀가 이곳 철의십자가에 도착한 것이다.

여기에서는 ‘딸을 고히 보내줘야 할 시간’이다. 또 펑펑 눈물을 쏟으신다.

그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나는 그 어머니의 눈물이 딸을 잃은 슬픔의 기억이 아닌 한없이 약한 자신의 향한 눈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순간 흘린 눈물의 의미는 어머니와 하느님만이 알겠지만 말이다.

철의십자가로 속속 순례자들이 도착한다.

코덱스 칼릭스티누스는 철의십자가에서 내가 지었던 죄를 놓고 오는 의식을 해야 한다고 일러준다.

철의십자가에서 해야 할 기도문도 따로 있다.

중세시대부터 지금까지 순례자들이 해 왔던 전통이다.

본래는 출발 장소인 집에서부터 돌(죄의 상징)을 가져와 여기에 놓고(정화) 가야 한다.

그 돌을 이 곳에 놓고 다음과 같이 기도한다.

‘주님, 제가 구세주의 십자가 아래에 저의 죄를 바칩니다. 심판의 날에 여기에 놓인 물건이 당의신 심판에 놓이게 하소서.

나는 철의십자가에 ‘집착’을 놓고 왔다.

집착으로 인해 괴로워했던, 집착으로 인해 나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고통을 주었던 행위가 있었다.

집착으로 인해 타인을 이용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순례길을 걷는 순간까지도 여전히 집착에 사로잡혀 있었다.

집착이 나에게는 죄의 원인이자, 하느님께 향하는 방해물이었던 것이다.

‘주님! 저는 여기에 집착을 놓습니다. 이제 자유롭고 행복한 영혼으로 거듭나도록 이끌어 주세요.’ 

장 회장님을 앞서 보내고 나는 철의십자가 옆에 있는 소성당 쉼터에 앉아 혼자의 시간을 보냈다.

순례자들이 속속 도착했다.

기억에 남는 순례자는 뚱뚱했던 외국인 여성이다.

십자가로 올라가기 바로 앞 난간 나무를 잡고 펑펑 눈물을 흘린다.

그 옆에 한 남성이 그녀의 눈물의 의미를 아는 듯 아무 말 없이 옆에 서 있었다.

철의십자가에는 한국사람들이 놓고 간 물건도 많이 보인다.

한국어는 대부분 무엇을 청하는 기원의 글이 많았다.

철의십자가에는 순례자들의 기원과 애환이 함께 스며있는 장소다.

다른 의미로 나에게는 철의십자가에서 영적기운이 품어져 나오던 곳이기도 하다.

내리막길에서 만나는 첫마을 아세보.

철의십자가를 뒤로 하고 길을 떠났다.

이제부터 내리막길이다. 산길을 따라 계속 내려가야 한다.

내리막길이 길어질수록 발과 종아리, 허벅지에 전달되는 고통이 커진다.

아뿔사! 70세가량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넘어지셨나 보다.

그 할머니 주변에 순례자들이 모여 있다.

우리는 그분이 순례길이 아닌 도로를 따라 계속 걷고 있던 것을 목격한 바 있다.

“회장님? 저 할머니 도로로 저렇게 다니면 위험하지 않을까요?”

“다리가 안 좋아서 그래. 돌길을 걷지 못하는 거야. 조심히 잘 가시겠지.”

그 할머니가 결국은 넘어지셨던 것이다. 이 후 택시를 타고 폰페라다로 가신 것으로 알고 있다.

장 회장님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나보다.

내리막 길을 함께 걷기 시작했다. 산 중턱에 아름다운 마을이 나타났다.

마을 이름은 아세보(Acebo)다.

처음 눈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이 마을에서 하루 쉬어가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날 정도로 매력넘치는 마을이다.

마을 입구 첫 번째 카페에 도착하니 순례자들이 한가득이다.

재밌던 일은 그들이 장 회장님과 나를 보더니 마치 결승선에 도착한 사람을 환영하는 듯 소리쳐 준다.

그 상황이 재밌고 웃겨서 껑충껑충 뛰며 화답했다.

그랬더니 축구 결승골을 넣은 장면에서처럼 모두가 일어나 ‘와’ 하며 더 크게 소리친다.

창피함이 확 올라와 얼른 다음 카페로 걸음을 옮겼다.

카페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산마르틴 마을에서 처음으로 만났던 최영화씨가 스페인 순례자와 함께 마을에 도착했다. 반갑게 인사하니 우리 옆에 자리를 잡는다.

최영화씨는 새벽에 폰세바돈에서 출발했단다. 아마도 가장 앞서 출발했을 것 같다.

우리가 그녀를 만난 것은 철의십자가에서 내려오는 길목에서였다.

천천히 걷고 있는 그녀에게 조심히 오라는 인사를 건넨 후 그녀를 추월했었다.

이제야 아세보에 도착한 것이다. 아마도 그 속도면 쉬지 않고 계속 걸어온 것 같았다.

절뚝거리며 들어오는 모습이 무척 고통스러울 것 같았다. 그럼에도 환한 표정으로 웃음짓는다.

카페에서 최영화씨가 발바닥을 보여줬을 때, 직감적으로 알았다.

‘이건 도저히 걸을 수 있는 발이 아니다.’

물집이 겹겹이 쌓여 발바닥의 두께가 확연히 커진 것을 보았다.

저 정도면 발을 내디딜때마다 고통이 엄청났을 것이다.

“걸을 때 고통이 아주 심할 것 같아요. 지금 통증이 어느 정도나 심하나요?”

“너무 아파서 발바닥을 디딜 수 조차 없어요. 지금 한 발로 걷고 있어요.”

다행히 장 회장님은 메디폼(상처에 붙이는 우레탄폼)을 가지고 계셨다.

가지고 있던 모든 메디폼을 최영화씨한테 건네줬다.

장 회장님은 메디폼을 어디에다 버릴까 고민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혹시 몰라 계속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조심히 오라는 인사를 다시 건넨 후 우리는 아름다운 아세보마을을 출발했다.

‘최영화씨는 오늘 장종혁이라는 천사를 만났다.’

몰리나세카. 아기자기하니 참 이쁜 마을이다.

산길을 계속 내려간다.

무척 싫어하는 뱀도 봤다. 이제 봄이라 뱀도 나오나보다.

‘너무 싫다.’

뱀을 본 후 발걸음이 빨라진다. 계속 산길을 따라 내려갔다. 2시간 넘게 왔나 보다.

저 멀리 몰리나세카 마을이 보였다. 처음엔 그 마을을 폰페라다로 생각해 목적지에 도착할 순간이 다가온 것 같아 너무 기뻤다.

“회장님 드디어 다 왔어요.”

아! 마을 이름이 몰리나세카다. 실망감이 크게 올라왔다.

그래도, 이 마을도 너무 이쁘니 기분이 좋다.

메루엘로 강 위에 세워진 몰리나세카 다리(Puente Romano)와 뒤로 보이는 니콜라스성당(Iglesia de San Nicolas de Bari)의 어울림이 환상이다.

전망대에서 마을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는데, 건너편 카페에서 누군가 손을 흔든다.

앞서 몇 차례 만났던 재미교포 은퇴 간호사분이다.

우리도 그분에게 반갑게 인사한 후 그분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오늘이 내 생일이에요. 혼자 생일 식사를 하고 싶지 않았는데 정말 잘 됐어요. 같이 점심을 먹읍시다.”

“생일 축하합니다.”

오늘 점심은 푸짐한 생일상이다.

각각 좋아하는 메뉴와 함께 마실 와인을 시켰다.

‘순례길에서 맞는 생일의 느낌은 어떨까? 나는 혼자 맞는 생일도 혼자 식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역시 나는 감정의 흐름이 다른 사람보다 무딘지도 모르겠다.

폰페라다 템플기사단성. 성이 온전하게 보전돼 있다.

한참을 얘기 나눈 후 우리는 폰페라다로 향했다.

몰리나세카에서 폰페라다까지 순례길을 걷는 동안 가장 지루하기도 했고, 힘들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당황스러웠던 것은 도로를 따라 가면 곧장 폰페라다에 들어가는데, 순례길을 따라 걸으면 캄포와 오테로라는 작은 마을을 거쳐 빙빙 돌아가도록 만들어져 있다는 점이다.

1시간이면 갈 도시를 2시간 넘게 가야 한다.

이미 지칠데로 지친 상태에서, 곧장 가는 길을 보았음에도 돌아서 간다는 것은 입에서 욕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힘들었다. 순례길 바닥에 그냥 배낭을 두어 차례 내던졌던 것 같다.

나만 감정이 상한 상태가 아니었다.

장 회장님도 죽을 맛인가 보다. 장 회장님을 보니 한편으로 지금의 상황이 위로도 된다.

“이 놈의 길이 사람 미치게 만드네.”

계속 하소연하신다.

이 구간은 ‘진정 사람 미치게 만드는 구간’이다.

우여곡절 끝에 폰페라다에 도착했다.

우리가 찾은 숙소는 오비스포 카밀로 로렌조(Albergue de peregrinos parroquia san nicolas de flue) 공립 알베르게다. 여기는 기부제 알베르게로 각 방당 4인씩 들어가는 곳이며, 성당에서 운영한다.

여장을 풀고 나오니 이탈리아에서 온 순례자 루카와 그의 친구가 우리 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카르멘성모성당(Capilla de Nuestra Señora del Carmen)으로 가서, 기도 드린 후 순례자의 일상을 시작했다.

이 성당에서 봤던 그림은 천정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다.

정중앙에 예수님이 앉아 있는 모습이다. 그 둘레로 야고보의 기적사화가 그려져 있었다.

주변 기둥에는 4대 복음사가의 상징을 표현해 놨다.

카르멘 성모성당 천정에 그려진 프레스코화 모습

폰페라다로 시내로 나섰더니, 세마나산타 행렬이 진행되고 있었다.

오늘은 성 금요일이나구나! 예수님이 돌아가신 날이다.

이들이 매고 가는 파소의 모습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무덤에 묻힌 장면까지다.

십자가의 길 14처의 모습이 재현되고 있었다.

‘세마나산타는 요일별로 달라지는구나!’

새로운 발견이다.

‘코스탈레로(파소를 끌거나 매고 가는 사람들)’들의 어깨에 붙어 있는 마크는 어떤 파소를 담당하고 있는지 구분할 수 있는 표지였다.

관악대도 초등학생부터 어른까지 연령층도 다양했다.

예수 무덤에 묻히심을 상징하는 장면 앞에는 다른 관악대가 이끌고 간다.

이 장면에서는 슬픈 연주를 계속 울렸다.

성모님은 세마나산타에서 꼭 함께 움직이는 것 같다.

필리핀 순례자 벨에게 어디에 있는지 메시지를 보내니, 폰페라다에 들어왔다는 답변이 왔다.

내일 벨과 템플기사단성 입구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후, 슈퍼에 들러 저녁거리를 구입했다.

내가 느낀 폰페라다는 아기자기한 이쁜 도시다.


공립 알베르게에서 쉴 수 있는 시간은 단 하룻밤이다.

오늘은 성 토요일이다.

아침에 숙소를 나서며 비아프랑카로 길을 떠나야 할지 고민이 생겼다.

앞서 이탈리아 순례자 프레도에게서 부활 성야미사를 레온으로 돌아가서 드리자는 제안을 받았었다.

버스로 레온으로 이동한 후 내일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자는 것이다.

지금 머물고 있는 폰페라다도 만족스러운 도시였다.

여기에서 부활절을 맞아도 좋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장 회장님 상의한 결과, 우리는 폰페라다에서 부활을 맞기로 결정했다.

이제 오늘 처리해야 할 일을 정리했다.

하루 더 지낼 숙소를 예약하고, 필리핀 순례자 벨과 만날시간을 정하고, 저녁에는 부활성야미사에 참여하는 것이다.

아침에 숙소를 나와 템플기사단성 근처의 카페에서 브런치를 시켰다.

장 회장님과 한가로이 수다를 떨고 있었더니, 우리를 발견했는지 최영화씨가 안으로 들어왔다. 

최영화씨는 경상도 아가씨다.

그녀의 영어회화는 깊은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이다.

‘저 정도 실력이니 혼자서 이렇게 오지. 대단해.’

그녀는 어제 폰페라다에 도착하자마자, 물집치료를 위해 보건소로 갔다고 한다.

의사로부터 물집치료를 위해 당분간 걷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단다.

그래서 오늘은 폰페라다에서 그냥 한가롭게 지내기로 했다고 한다.

우리도 오늘 하루 더 쉬어 갈 것이라고 얘기하니, 자신이 머물고 있는 호스텔을 우리에게 소개시켜줬다.

그 호스텔은 연박 예약이 가능한 곳이었다.

숙소는 2층 침대였지만, 예약한 순례자가 많지 않아 침대가 텅텅 비어 있었다.

숙소는 전체적으로 무척 깨끗했으며, 관리가 잘 되고 있는 상태를 보여줬다.

나는 이 숙소의 창가에 자리를 잡고, 회장님은 1층 침대만 있는 따로 떨어져 공간을 차지했다.

길 이 카라스코(Gil y Carrasco)가 그의 연인인 후아나 바일리나(Juana Bailina)를 조각한 작품. 일설에 길 이 카라스코는 독일 주재 스페인 정부의 스파이였다.

최영화씨는 레온에서부터 걷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녀의 목적지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아니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2주간의 휴가기간 동안만 걸을 수 있다고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너무 좋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휴가를 내자마자 무작정 이 곳으로 향했다는 이야기다.

순례길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이 길이 천주교와 관련된 것은 알지만, 산티아고가 예수의 열두제자 중 하나라는 사실도 모르고 있다.

그냥 길이 예쁘고 경치가 좋다는 얘기에 끌렸다고 한다.

그녀의 말을 들을 수록 무척 당황스러웠다.

‘용감한 것인지!, 무모한 것인지!’

모르고 오면 어떠랴!

이곳에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많이 얻고 가라고 얘기하니, 순례길에 대해 모르고 온 것이 지금은 후회된다는 표현을 한다.

최영화씨에게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물어보라고 했다.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은 성심껏 얘기해 주겠다고 대답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첫 물음이 귀를 울린다.

“순례자가 해야 할 의무가 있나요?”

이 말은 순례길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어야 가능한 물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앞 뒤 전 후’ 모두 생략된 채 결과를 얘기해 달라는 것 같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무엇인지 알아야되는 것 아니에요?”

“지금 저에게 시간이 없어서요. 전부를 알기에는 너무 시간이 없어요.”

남은 시간 동안이라도 지금부터 순례자처럼 걸어보고 싶다고 한다.

나는 그녀에게 가톨릭평화방송 ‘산티아고 가는 길’이라는 토크 프로그램 유튜브 링크를 보냈줬다.

그 프로그램의 제목은 ‘산티아고 순례길은 거룩한 바보의 길’이다.

총 분량은 2시간 가량되는 프로그램으로, 이것을 보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얘기했다. 

한가지 만은 꼭 얘기해줘야 할 것 같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거룩한 바보의 길인 이유를.

‘부엔까미노’라는 순례자간의 축복인사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순례길을 상징하는 조개껍질 빗살무늬가 모여드는 하나의 정점이 무엇인지를.

템플기사단 성 외부 산책길을 한바퀴 돌아봤다. 

그러면서 모든 사람이 그 이유, 그 목적, 그 정점을 찾기 위해 길 위에 서 있는 것이라 말했다.

나의 순례길의 의미는 내 옆에 또 하나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 같다고 나의 생각을 전했다.

그러면서 폰세바돈에 올라오기 전 마을 라바날 델 카미노에 있는 몬테이라고 베네틱토 수도공동체의 3대 핵심 가치를 소개했다.

‘순례’와 ‘침묵’과 ‘환대’.

순례는 걷는 것이요

침묵은 나를 성찰하는 것이요

환대는 내 옆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내가 생각해도 멋진 말이다.’

지금 혼자 잘난 맛에 취하는 느낌이다.

입이 열리니 강의가 시작됐다. 

‘가장 미천한 자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마태오복음 25장 40절에 나오는 그 문구는 순례자는 물론 순례자를 맞이하는 모든 이에게 통하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핵심 문구라고 말했다.

그 말은 모든 사람들에게 열린 마음으로 다가서고, 그가 필요한 때에 내가 함께 해주는 ‘또 하나의 그 사람’이 되어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영화씨가 내 말에 감동을 받았나보다.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두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며, 끄덕끄덕 고개를 흔드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 

선물을 줘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 선물은 내가 가지고 있던 ‘코덱스 칼릭스티누스’ 책이다.

나는 이미 그 책을 정독한 상태다.

이제 그 책은 내 배낭의 무게만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 이 책을 없애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던 차에, 지금 이 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생긴 느낌이다.

최영화씨에게 코덱스 칼릭스티누스를 넘겨줬다.

“이 책 읽어보면 순례길 걷는데 많은 도움이 될 거에요. 그리고 나에게 돌려주지 마세요. 이건 내 손을 떠나는 순간 내 책이 아니에요. 알아서 처분하세요. 다른 사람을 주든 이제부터는 이 책의 주인입니다.”

뿌듯한 마음을 느끼며, 벨을 만나기 위해서 서둘러 길을 나섰다.

템플기사단 성 입구. 해자를 지나 성안으로 들어가면 매표소가 나온다.

필리핀 순례자 벨을 만나기 위해 폰페라다성으로 향하는 길이다.

폰페라다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순례자가 늘어나면서 생겨난 마을이란다.

본래 마을 이름은 라틴어인 폰스 페라타(Pons Ferrata)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폰스 페라타는 철로 된 다리라는 뜻이다.

1082년 오스문도(Osmundo) 주교가 마을을 가로지르던 실 강(Rio Sil) 위에 다리를 세운 데서 이름이 시작됐다고 한다. 

이 도시에서 가장 볼만한 장소는 템플기사단의 성(Castillo de los Templrarios)이다.

이 성은 실 강 언덕 위에 있다.

성 안으로 입구의 거대함은 템플기사단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순례자 여권을 가지고 있으면, 5유로에 입장 할 수 있다.

성안으로 들어가니, 템플기사단을 소개하는 글이 있었다.

템플기사단은 익히 알고 있는 기사단이다.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기사단이기도 하다.

템플기사단을 생각하면 ‘십자군전쟁’이 연상된다.

성지탈환이라는 거룩한 전쟁을 하는 사람들이 십자군이다.

‘성전’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하는 걸까?

십자군전쟁에서 템플기사단의 활약은 어마어마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전쟁을 벌인다는 당위성을 놓고, 그들이 행했던 잔혹한 살인들은 어떻게 봐야 할까?

제1차 십자군전쟁을 승리한 후 권력쟁탈과 실크로드 상인의 목숨을 담보로 부를 축적해 왔던 행위는 또 어떤가?

예루살렘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까지 싸웠던 기사단임은 존중해야 하겠지만, 나는 전쟁 자체를 성전처럼 여겼던 아이러니를 받아들이기는 힘들었다.

템플기사단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유럽으로 가져온 수많은 성물들도 문제가 많다.

진위여부를 가리는 것을 떠나, 성물이라며 비싼 값을 부렀던 ‘거룩함의 비용’도 생각해 볼 이야기다.

템플기사단의 3대 핵심 사명은 청빈, 정결, 순명이다.

베네딕토회나 프란치스코회, 도미니코회, 예수회 등 대부분의 수도회도 3대 사명으로 지키는 가치다.

‘정말 그들이 그렇게 살았을까?’

가난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프란치스코수도회에 대한 비아냥소리가 있다.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재산이 얼마나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폰페라다 템플기사단 성에서 바라본 엔시나 성모성당의 종탑 모습

필리핀 순례자 벨과는 성벽 내부에서 만났다.

만나기로 했던 시간보다 30여분 늦게 도착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방에서 쉬다 늦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벨이 자신의 아랫배쪽에 생긴 종기를 보여주며 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한다.

늦은 자신이 미안했는지 자신의 힘든 상황을 표현하는 모습이 귀엽다.

67세의 나이에 하는 행동이 꼭 어린아이 같다.

‘나이가 들수록 행동은 아이가 되는 것일까!’ 

템플기사단의 성은 성벽을 돌아 내부 광장으로 들어가는 동선이 이어진다.

이곳에는 12개의 탑이 존재하는 데 이것은 열두제자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다른 얘기로는 12개의 탑은 12궁도 별자리를 상징한다는 말이 있다.

개인적인 추론으로는 템플기사단이 그리스도교를 지키기 위한 방패역할이었던 것과, 교황청 직속 기사단으로 배속받았던 과거의 행적을 비춰볼 때, 12개의 탑은 열두제자를 상징한다는 말이 더 설득력 있을 것으로 본다.

이 성은 보존이 정말 잘 돼 있다.

여기에서 지금 당장 중세시대 영화를 촬영한다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템플기사단 성 가장 높은 곳에 올라 폰페라다를 함께 사진으로 담아봤다.

오늘은 부활 성야다.

벨과 템플기사단의 성을 둘러본 후 시계탑이 있는 엔시나 광장(Plaza de la Encina)으로 가서 닭고기요리를 함께 먹었다. 한참 있으니 헝가리 순례자 그레이타가 나타났다.

그레이타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녀는 오늘 부활성야미사를 드릴 성당을 찾고 있다고 한다.

장 회장님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더니, 어제 잠시 들렸던 성당에서 8시 미사가 있다고 답이 왔다.

나와 그레이타는 8시 조금 넘어 그 성당으로 들어갔다.

장 회장님과 최영화씨가 미사를 보고 있었다. 옆에 자리에 앉아 4명이 함께 부활미사를 드렸다.

미사가 끝나고 나와 순례자들에게 축복인사를 했다.

“Congratulation, easter-of Jesus”-예수 부활을 축하합니다.

이렇게 말했더니, 그레이타가 바른 영어로 화답해 준다.

“Happy easter”- 행복한 부활 되세요.

‘이렇게 짧다니.’

영어는 참 쉬운 언어다.

엔시나광장의 모습. 시청사 오른쪽 옆에 있는 카페에서 벨과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이전 21화 21. 중세 속으로 들어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