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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파담 Oct 05. 2024

21. 중세 속으로 들어서다

25, 26일차_스페인의 천년전주 아스토르가…철의십자가 앞 폰세바돈

산마르델을 떠나며 보는 일출모습

오늘은 아스토르가까지 23km를 걷는다.

이 코스는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와 산티바네스 데 발데이 글레시아스, 산 후스토 델라 베가를 거쳐 아스토르가에 이르는 구간이다.

마을 이름들을 나열한 이유는 이곳에서 놓칠 수 없는 특별한 장소가 있기 때문이다.

엘 파소 온로소 다리
스페인 부북에서는 가장 긴 다리라고 한다. 나의 다리길이만큼 길다.

먼저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에서는 엘 파소 온로소 다리를 주목해야 한다.

이 다리에서는 명예로운 결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13세기에 만들어진 20개의 아치가 있는 스페인 북붕서 가장 긴 다리다.

다리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1434년 레온 출신의 기사였던 돈 수에로 데 카뇬네스가 한 여인에게 실연을 당했다고 한다.

그는 그녀에 대한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목숨을 건 시합을 했다고 한다.

목둘레에 쇠로 만든 깃을 달고, 이 다리를 건너는 기사들에게 마상 창 결투를 벌였다.

돈 수에로는 300차례에 걸쳐 수 많은 기사들과 결투를 벌여 승리했다고 한다. 그리고 사랑의 증표인 쇠로 만든 깃을 지켰다고.

이 승리로 그는 실연의 아픔에서 벗어났고, 자신의 명예도 지켰다고 하는 이야기다.

마상 전투의 전통은 현재에 이르러서도 매년 6월초에 재현하고 있다.

누가 만든 이야기인지는 몰라도 왠지 TV 프로그램 ‘사랑과전쟁’ 같은 느낌이다.

아스토르가까지 이렇게 생긴 길을 계속 걷는다.

이 마을에 도착해 아침을 먹고 있을 때다.

부르고스에서 타파스를 사줬던 재미교포 은퇴 간호사분이 카페에 들어왔다.

같이 아침을 나누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의 정치인들이 문제라는 얘기가 나온다.

장 회장님은 종교의 역할이 바른 정치를 향해 소리치고, 함께하는 역할을 중요시 여긴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

은퇴 간호사분은 종교인이 신앙을 지키고, 자신의 개인적인 갈고 닦음이 중요하다고 하신다.

옆에서 두 분의 대화를 들어보니 서로 좋게 끝날 것 같지 않앗다.

장 회장님께 눈치를 주고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대충 때우고 우리가 먼저 일어나 길을 나섰다. 

인지 심리학자들이 중요시하는 대화 방법이 있다. 대화할 때 명사형으로 끝내지 말라는 것이다.

“철수는 살인자야”와 “철수가 사람을 죽였데”의 차이다.

첫 번째 말은 명사로 끝나고, 두 번째 말은 동사로 끝난다.

그런데, 명사로 끝나는 단어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동사로 끝나는 말은 ‘왜’라는 물음이 가능하지만, ‘살인자’라는 명사로 끝나는 말은 ‘그렇구나’라는 긍정만 가능하다는 것이 심리학자들의 설명이다.

장 회장님과 간호사분의 대화속에서 대화할 때는 이것을 꼭 기억하고 있어야 겠다는 다짐을 가진 시간이다.

산티바네스 데 발데이 글레시아스 순례자 쉼터
장 회장님이 인형의 스카프에 새만금신공항백지화 배지를 달고 있다.

둘째 산티바네스 데 발데이 글레시아스다.

이곳은 순례자의 휴식처로, 십자가와 인형(마네킹)이 있는 장소다.

장 회장님은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배지를 꺼내셨다.

앞서 떡갈나무 십자가에 부착했던 ‘새만금 신공항 백지화’ 배지다.

순례자 인형에 달아 놓으신다.

‘문규현 신부님은 스페인에서 새만금을 위해 삼보일배를 하셨던 것으로 아는데, 장 회장님은 새만금을 위해 순례길을 걷고 있는 것 같다.’

오늘은 장 회장님을 위해 기도해야겠다.

무료카페 앞 돌맹이 순례길 화살표. 창우씨 이거 만드느라 고생했어요!
무료카페 모습. 순례자들이 여기 음식을 먹고 원하는 만큼 기부하고 간다.

마지막으로 산 후스토 델라 베가다.

여기에 들어갈 때는 순례자들을 위한 무료 카페가 있다.

카페로 들어가는 길가에 만들어 놓은 돌맹이 화살표가 눈에 들어왔다.

“물 한 잔 드세요! 창우! 3/29/23”

일주일전 창우씨가 여기를 지나가다 써 놓은 글이다.

우리가 일주일 후에 올 줄 알고 있었나보다.

너무 고마워서 이 카페에서 무료 음료를 즐겼다.

아스트로가의 모습. 가운데 큰 건물이 오늘 우리가 묵는 숙소(알베르게)다.

어느덧 아스트로가에 도착했다.

멋진 도시다. 아스트로가 공립 알베르게에 체크-인을 한 후 샤워와 빨래를 하고, 알베르게 뒤편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전날 만났던 양갈래머리 최영화씨(42)가 한쪽 발바닥 전체를 물집 곰발바닥으로 만들어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이탈리아에서 온 루카와 그의 친구도 왔다. 이들은 우리와 같이 4인실 한방을 쓰게 됐다.

루카와 그의 친구는 폰페라다라는 도시에서 또 같은 방을 쓰게 되는 인연이 생긴 사람들이다.

시청사의 모습. 종각에 남녀인형이 시간마다 종을 친다.

나는 스페인에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좋은 도시를 추천해달라면 ‘아스트로가’를 가보라고 하고 싶다.

아스토르가는 고대 로마의 흔적은 물론 중세 도시의 모습이 혼재해 있다.

마을 주변을 둘러싼 성벽은 보존이 잘 되어 있다.

아스트로가는 레온 지방에서 가장 유서 깊은 마을이었다. 마치 우리나라의 자랑인 천년 전주처럼 말이다.

안토니 가우디가 설계한 디즈니같은 주교궁도 있으며, 로마시대 고대 유적지들, 성모마리아대성당(Catedral de Santa Maria de Astorga), 인형이 종치는 모습의 시청사, 기원전부터 10세기까지의 성벽, 600여점에 달하는 성물이 보관된 박물관 등 볼거리가 다양하다.

지금부터 무엇을 봐야 할지, 그리고 무엇을 포기해야 할지 선택해야 한다.

나는 가톨릭신자이기에 산타마리아대성당과 박물관을 먼저 보기로 결정했다.

아스토르가대성당

산타마리아대성당은 300년동안 지어졌다고 한다.

이 성당에서 봐야 할 것은 무엇보다 제대화다. 르네상스 시대 가스파르 베세라(Gaspar Becerra)의 작품이란다.

그는 스페인의 유명 화가이자 조각가란다.

마치 이탈리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말이다.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조각가로 아낌없이 사랑받는 사람이었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화재로 소실됐다고 한다.

하지만, 아스토르가대성당에 조각된 제대와 제대화와 원형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르네상스 가스파르 베세라의 작품

대성당 코로석(성가대석)도 유명한 작품이라고 한다.

각 좌석마다 구약과 신약의 인물을 조각해 놓은 것이 특별한 점이다.

박물관에도 성물들이 가득하다.

그 가운데 유독 내 눈에 들어왔던 성물은 갈대로 만든 상자였다.

상자 옆면은 열두제자가 그려져 있고, 덮개에는 성서에 관련된 내용들이 그려져 있었다.

‘아스토르가 정말 대단한 도시구나!’

성당과 박물관을 둘러본 후 성벽을 보기 위해 마을밖으로 나갔다.

아스토르가는 2,000년전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만들어진 도시라고 한다.

이 성벽의 기원이 로마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로마시대 모습은 파괴되고, 지금 볼 수 있는 성벽은 중세에 재건된 모습이란다.

나폴레옹과 러시아의 전쟁도 이곳 아스트로가에서 펼쳐져 일부 성벽까지 파괴됐다고 한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내가 본 성벽에 대한 생각은 전체적으로 잘 보존돼 있다는 감상이다.

안토니 가우디가 설계한 주교궁

마을 성벽을 끼고 한바퀴 둘러본 후 시나고가 정원(Jardín de La Sinagoga)으로 가서 ‘게으름’을 즐겼다.

두어 시간가량 여기에 앉아 있으니, 저녁놀을 서쪽 하늘에 뒤덮었다.

아무 일도 할 필요가 없고, 아무것도 생각할 일이 없는 시간이다.

그저 한가로이 멍때리는 중이다. 너무 편안하다.

게으름을 찬양하는 것처럼.

게으른 이 시간이 너무 좋다.

저녁시간이 돼 시나고가 정원 근처에 있는 카페로 향했다.

그런데, 이날 엘클라시코(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로셀로나 축구클럽 경기) 경기를 중계중이다.

카페에 주민들이 한가득이다.

소리를 질러가면 열렬한 응원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레알 마드리드’를 응원했다.

‘아스트로가는 레알 마드리드 지역인가보다.’

나는 개인적으로 메시가 있는 FC 바르셀로나를 더 좋아한다.

여기서 혼자 바르셀로나를 응원했다가 뼈도 못추릴 것 같다.

혼자 속으로 ‘바르셀로나FC 파이팅’을 외쳐본다.

시나고가 정원에서 찍은 성벽과 석양의 모습

밤이 되자 세마나 산타를 준비하는 아스토르가 주민들이 바르톨로메오 성당앞으로 몰려들었다.

이곳에서부터 성모마리아대성당까지 9시부터 행렬을 한다고 한다.

우리 알베르게가 닫히는 시간도 9시다.

오늘 아스트로가 행렬을 보지 못해 아쉬움만 남기고 숙소로 돌아갔다.


아스토르가를 나오면 이런 평지길이 계속 이어진다.

오늘은 폰세바돈까지 27km를 간다.

폰세바돈은 철의십자가(Cruz del Ferro)가 있는 장소로 산티아고순례길의 핵심 중 하나다.

아침부터 조급함이 크게 밀려온다.

철의 십자가에 도착할 때까지 죄묵상을 완료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여전히 40대 초반에 머물러 있는 상태로, 사실상 시간적으로는 죄묵상을 완료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오늘은 분기별로 구분해 묵상하지 않고, 1년 단위로 진행할 생각이다.

멀지 않은 기간의 과거시간이다보니, 내가 지은 죄가 더 뚜렷하게 기억난다.

죄의 근원을 찾아야 할 사건, 사건들이 계속 생각나니 1년기간이 넘어가지 않는다.

지금 조바심이 한가득이다.

앞에 걷고 있는 외국인 두분과 계속 길을 겹치며 걸었다. 앞에 보이는 성당이 이라고 베네딕도수도공동체 성당이다.

오늘 길은 평지를 걷다 언덕을 치고 올라가야 한다.

오후가 되면 이라고산(Monte Irago) 중턱에 있는 폰세바돈 마을까지 가야 하기 때문에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나에게는 힘든 이 산을 올라가기 전에 들러야 할 곳이 있었다.

산 입구인 라바날 델 카미노(Rabnal del Camino) 마을에 있는 라면 맛집이다.

한국인들에게는 유명한 맛집이다. 다만, 본래의 순례길을 조금 길을 벗어나야 한다.

‘갈 길이 멀더라도 라면은 먹고 가야지!’

장 회장님을 앞서 보내고 나는 라면집으로 향했다.

라면 맛집으로 소문난 이곳은 알베르게와 카페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알베르게 누에스트라 세뇨라 델 필라르(Albergue Nuestra Senora del Pilar)다.

‘필라르 우리들의 어머니 숙소’라고 해석해야 할까?

여기에서 배부르게 맘껏 먹었다.

그리고 테이블 의자에 기대 맥주도 시켜 멍때리기를 시전했다.

오늘 이곳 손님은 순례자로서는 나 혼자뿐이다.

카페 전체를 혼자 독차지하고 있다.

한참 지나니 가족인 듯한 동네분들이 들어오셨다.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엄마, 손자, 손녀. 내 눈에는 3대가 함께 온 듯 보였다.

그분들은 내가 밖에 있어서인지, 아니면 원래 그랬던 것인지는 카페 내부로 들어가셨다.

여기가 한국인들에게 유명한 라면 맛집이다. 순례길에서 조금 벗어나 있으니 참고해야 한다.

이곳은 또 몬테 이라고(Monte Irago) 베네딕토 수도공동체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공동체는 ‘순례’ ‘침묵’ ‘환대’를 3대 의무로 두고 있다.

수도공동체 정문에 써 있는 문구다.

‘찾아오는 모든 손님을 그리스도처럼 맞아들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장차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 너희는 나를 맞아주었다’ 라고 말씀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 베네딕도 수도 규칙.’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이 말은 마태오복음 20장 25절의 내용이다.

가톨릭 신자들은 이 내용을 주제로 한 성가를 익히 알고 있다. 자주 그리고 많이 부르는 성가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느 때 주님께 음식을 드렸고

목마른 주님께 마실 것 언-제 드렸나.

.......

진실히 네게 이르노니 미소한 형제 중에-

하나에게 해 준 것 모두가 내-게 한 것 이니라. 내게 한 것이니라. 

수도원 문구를 읽으니 배부르게 먹은 내 자신이 미안해진다.

혹시 순례길에 오르는 분들이라면 이 수도공동체를 방문해 보길 청해본다.

나는 수도공동체에 들어갈까 하다 시간이 지체될 것 같아 바로 이동했다.

순례길을 걷다보면 돌로 만들어진 길 표시를 자주 보게 된다.

이제부터는 무조건 오르막이다. 길을 오르는 순례자들도 많아졌다.

‘정말 사람이 많아졌구나!’

30분마다 한반씩 쉬면서 산을 올랐다.

힘들어하는 내 모습에 응원을 하며 여러 순례자들이 앞서 나갔다.

폰세바돈 마을 입구.

어느덧 목적지인 폰세바돈이다.

앞서 가셨던 장 회장님은 포세바돈 마을 입구에서 휴식을 취하고 계셨다.

‘식사는 하셨는지 몰라.’

회장님과 인사를 한 후 부엔까미노 앱에 평점이 좋은 호스텔(Alberue Monte Irago)을 발견했다.

우리가 들어간 호스텔은 포세바돈 마을 입구에 있는 숙소다.

폰세바돈 마을은 너무 작아서 입구라고 표현이 어울릴지는 모르겠다.

우리는 이라고몬테 알베르게에 여장을 풀었는데, 순례자들이 몰려 오후 3시가 되자 만실이다.

동네도 작을 뿐 아니라, 우리가 머무는 숙소는 수용 인원이 20여명이 최대일 것 같다.

여장을 풀고 순례자의 일상을 시작했다.(샤워와 빨래)

이제 마지막 죄묵상을 끝내야 한다.

내가 기한으로 잡은 죄묵상은 오늘까지다.

그 이유는 내일 새벽 철의십자가에 올라 내가 하느님을 향한 삶을 살아가는 데 방해되는 것들을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숙소 카페에 앉아 커피를 시켜놓고 그동안의 일을 정리했다.

잠깐 휴식을 취하려 담배를 피기 위해 숙소 뒤 들판을 걸었다.

그런데, 이 석상이 왜 여기에 있을까?

그것은 조그마한 불상이었다.

“부처님! 안녕하세요.”

그 불상을 보자마자 ‘아 그렇구나!’ 하는 그 무엇이 마음을 스쳐갔다.

알베르게 뒷편 들판에서 부처님을 만났다. 스페인에서 부처님을 만나니 너무 반가웠다.

유명한 살불살조(殺佛殺祖)라는 임제스님의 말이 있다.

이 말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인다는 뜻이다.

나를 얽어매는 것은 무엇이든지 부셔버리라는 의미다.

부처라는 관념, 조사나 아라한이라는 이름에 속박되면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자유와 해탈을 이루는 길이 살불살조인 것이다. 

권위든 경험이든 관념이든 나를 속박하는 것은 그 무엇이라도 과감하게 내버려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스스로가 주인이 될 수 있다.

그래야 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되고 서 있는 곳마다 참된 진리의 자리가 된다.

깨달음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조바심을 갖는 것 조차도 나를 얽매고 있는 하나의 생각이었던 것이다.

‘조바심 갖지 말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이곳 알베르게는 스페인사람이 아닌 독일분이 운영하는 숙소다.

이유를 물어보니 스페인 남성과 결혼해, 여기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독일에서는 음악가로 생활해 왔다고 한다.

숙소 건너편 쉼터에서 ‘작은 공연’이 열리고 있다.

알베르게 주인 부부가 순례자들을 위해 연주와 노래를 하고 있다.

많은 순례자들이 주변에 모여 그들의 공연을 감상중이다. 

저녁은 순례자메뉴를 먹었다.

내 옆에는 바르셀로나에서 온 연인이 앉았다.

그런데, 연인가운데 남자가 한국에 관심이 많은지 이것저것 물어온다.

발음을 알아듣기가 어려워서, 다시 말해달라고 얘기했더니, 여성이 그 남자의 질문을 다시 말해준다.

그 여성의 발음은 잘 들렸다. 매번 그 남자가 물으면 나는 그 여자에게 무슨말인지 알려달라 쳐다보게 된다.

영어로 대화하면서 ‘통역’이 필요했던 신기한 경험이다.

그 남자에게 많이 미안했다. 

내일 철의십자가에 오른다는 기쁨과 설레임에 잠이 오질 않는다.

철의십자가는 내가 걷는 순례길에서 가장 가고 싶었던 곳 중 하나였고, 가장 의미있는 장소 중 하나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다를 잠에 들었을 때, 홀로 숙소 뒤편 들판에 나와 걸었다.

달도 밝고, 저 멀리 아스트로가 도시의 불빛이 환하게 비쳤다.

나는 넓적한 커다란 돌맹이 하나를 집어 내일 내가 버려야 할 것을 적기 시작했다.

돌맹이 가장자리를 둘러 한명, 한명의 이름을 적어나갔다.

그리고 돌맹이 한 가운데 크게 적었다.

‘내가 버려야 할 것은 이것이었어.’

밤에 잠이 오질 않아 뒤편 들판에 나와 밤 하늘을 담아봤다

숙소로 들어와 돌맹이를 배낭에 집어넣었다.

오늘도 폰세바돈의 달은 서서히 산을 걸어 넘어간다. 

마지막으로 철의십자가에 대한 주의사항을 적어본다.

[카미노의 상징적 장소다. 순례자가 자신의 죄만큼 큰 돌을 가져오는 곳이다. 주의해라. 여기에는 돌만 남겨놔야 한다.

리본, 기념품, 엽서 및 기타 다른 물건은 쓰레기로 취급돼 수거된다. 매일 수백명의 순례자가 지나는 곳이며, 이러한 환경 때문에 관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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