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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파담 Oct 22. 2024

25. 배려는 또 하나의 그가 되어 주는 것

33, 34일차_휴양지같은 포르토마린…팔라스 데 레이

사리아를 넘어서면 바로 평원이 펼쳐진다. 주변은 목장들이다. 냄새가 심하게 난다.

길을 가던 중 목장에 있던 한 마리 말이 내 앞에서 고개를 내민다.

그냥 지나갈 수 없어서 대화를 시도했다.

“넌 이름이 뭐니!” 아는 스페인어를 동원했다. “Nombre?”- 이름?

계속 킁킁대길래 나는 그 말의 이름을 “킁킁이”로 불러줬다.

말과 이렇게 가깝게 서 보는 것은 처음이다.

옆에서 사진을 찍으려 다가갔더니, 내 옷을 물고 잡아 당겼다.

배낭 속에서 당근 냄새가 풍기나 보다.

내 옷에 말의 침이 잔뜩 묻어 있어서 휴지로 닥아내느라 고생했다.

그다지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그 이후론 말을 보기만 할 뿐 만지지 않았다.

킁킁이와의 만남. 킁킁아? 잘 지내고 있지?

한참을 가니 ‘참새 방앗간’처럼 순례자들이 어떤 조그만 공간에 들어갔다 나온다.

어떤 곳인지 몰라 확인차 그곳에 들어갔다.

순례자들이 써 놓은 소망의 글이 한가득이다.

여기는 성모마리아 경당(Capela de Santa marina)

‘이곳에는 성모님께 소원을 빌어달라 청원하는 곳이었다.’

순례자들의 간절한 이야기가 이 제단에 올려져 있다.

100km 표지석이다. 이곳에서는 잠시 줄을 서야 한다.

순례자들의 사진스팟이기 때문이다.

앞서 사진을 담는 순례자들은 모두 웃음을 띄고 있다.

나는 사리아에서 출발하면서 오늘 100km 표지석을 만나면 어떤 느낌이 들지 궁금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별다른 느낌이 없다.

생장에서부터 800km라는 먼 거리를 걸어 왔던 연예인 ‘손미나씨’는 100km 표지에서 이런 고백을 했었다.

매일 매일 힘들었다고. 빨리 이 길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다고 한다.

막상 100km표지석을 만나니 마음이 뭉클해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주 깊은 내적 고백을 드러냈다.

“내가 이 길을 걷기 전과 후에 내 인생이 같을 수 없다. 이제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 것 같다.”

‘이제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마음속 깊이 느끼고 있다.

손미나씨의 말이 무척 공감된다.

드디어 100km다. 이 표지석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끌림이 너무 크다.

100km를 지나온 기념인지 장 회장님이 맛있는 점심을 사시겠다고 한다.

나는 문어요리(Pulpo)를 사달라고 했다.

카페에 도착하자마자 뿔포를 주문했다. 25유로다.

양도 그리 많지 않다. 비싼 음식이다.

형은수 선생님으로부터 ‘뿔포 예찬’을 들었었기에, 갈리시아 지방에서 맛보고 싶었다.

뿔포는 입 속에서 사르르 녹는다. 문어를 씹는 식감이 무척이나 부드럽다.

하지만, 나에게는 식감이 덜하니 먹는 맛이 덜하다고 할까?

뿔포예찬까지는 오버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파울리와 산드라(앞이 보이지 않는 여성분) 부부를 다시 만났다.

반갑게 인사한 후, 오늘 기분이 어떤지 물었다.

파울리는 어젯밤 숙소에서 알베르게 주인과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단다.

산드라 때문에 항상 개인실을 예약하고 다니는데, 막상 그곳에 도착하니 숙소 주인이 방이 없다고 했단다.

나중에는 허름한 구석방을 내줬다고.

산드라는 옆에서 듣기만 한다.

“Sandra? Are you ok?”- 산드라 괜찮아요?

그녀는 웃기만 했다.

그 웃음은 안 괜찮다는 뜻이구나.

포르토마린으로 들어가는 중. 저 다리를 건너면 포르토마린이다.

나는 세상에는 딱 세종류의 사람만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극히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옛날 송광호가 나오는 영화인데, 그 제목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다.

어제 그들이 머문 숙소 주인은 ‘나쁜 놈’이라고 생각했다.

내 이상한 버릇이 또 나를 자극한다.

‘그럼 너는 너 자신을 어떤 부류라고 생각하니?’

내 스스로에게도 질문을 던졌다.

역시나 나는 ‘이상한 놈’ 부류다.

어쩌면 오늘 이들 부부와의 대화가 앞으로 더욱 가까워지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목적지인 포르토마린에 도착했다.

포르토마린은 휴양지같은 느낌이었다.

2세기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고풍스런 다리 유적지를 지나면 깨끗한 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알고 보니 본래 포르토마린은 수몰됐다고 한다.

1960년 이곳 미뇨강에 댐이 건설되면서 옛마을은 물속으로 사라졌다.

가장 주목해야 할 장소는 니콜라스 성당(Iglesia de San Nicolas de Portomarin)이다.

이 성당은 수몰지에서 분해해서 위쪽으로 가져와 다시 쌓았다.

사람들의 정성과 애정이 대단한다.

포르토마린의 명물. 2세기에 만들어진 다리다. 이 다리를 통과하면 깨끗한 포르토마린 시내를 만난다.

오늘은 운이 좋게 개인실을 받았다. 비용은 다인실 비용을 냈다.

우리가 오늘 늦게 도착한 탓에 4인실은 모두 만실이었다.

주인은 더 이상 올 손님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우리에게 2인실을 내 주었다.

휴양지에서 편안하게 휴양하면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다.

니콜라스성당. 문이 닫혀 있어 내부를 보지는 못했다. 과거에 이 성당은 병원으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오늘은 팔라스 데 레이까지 25km를 걷는다.

아침부터 비가 세차게 내린다.

갈리시아 지방에 들어서서 아침, 점심, 저녁 날씨가 변화무쌍하다.

아침에는 비를 세차게 쏟아내다 11시가 넘으면 해가 쨍쨍 뜬다.

오늘 역시 마찬가지다.

비가 쏟아지는 아침에는 길을 떠나기 무척 싫어진다.

‘그래도 가야지!’

산길을 올라도 계속 평지같은 오르막이 이어진다.

포르토마린에서 팔라스 데 레이까지는 두갈래의 길로 나눠진다.

하나는 산길을 오르는 짧은 길이고, 다른 하나는 도로를 둘러오는 편한지만 긴 길이다.

이 길은 다시 만나기는 한다.

나는 짧은 산길을 올랐다. 이 길을 오르면 4km가 줄어든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진흙밭 산길을 오르는 것은 무척 힘들었다.

산길을 오른 후에도 평지에 가까운 오르막이 계속 이어진다.

팔라스 데 레이로 가는 길은 도로 옆 길을 자주 만난다.

이 길의 장점은 도로 옆을 따라 가다 카페를 들어 갈 수 있다는 점이다.

순례자들이 많기 때문일까?

10분 간격으로 하나씩 있었던 것 같다.

천천히 길을 걸으니, 내 옆에 유모차 두 대가 지나간다.

처음에는 외국인 부부가 자신들의 짐을 유모차에 넣고 밀고 가는 줄 알았다.

‘짐을 운반하는 방식도 참 다양하구나!’

아뿔사! 내 생각이 잘못됐구나.

그들이 쉬고 있을 때, 유모차의 비와 햇빛가림막이 열려 있는데 정말 아기가 그 속에 타고 있었다.

이렇게 비가 새차게 내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이들과 함께 순례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이 길의 매력은 무엇일까!’

이 유모차 부부는 우리가 오늘 묶었던 알베르게에 함께 있었다.

물론 그분들은 가족만 사용하는 공간에 숙박하고, 우리는 창고같은 알베르게에서 잤다는 것은 다르지만 말이다.

저 앞에 가는 부부가 유모차를 끌고서 가는 사람들이다.

비가 너무도 세차게 내려 카페에 들어가 커피 한잔을 하며 빗줄기가 사그러들기를 기다렸다.

지금 밖에는 태풍이 온 것 마냥 바람도 어마어마하다.

잠시 후 한국 사람이 흠뻑 젖은 채로 카페에 들어왔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으로, 그녀는 사리아부터 걷고 있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가장 좋았던 도시까지 함께 이야기하게 됐다.

그녀는 포르투칼의 ‘포르투’를 가장 인상깊고 아름다운 도시라고 했다.

꼭 가야 할 곳을 추천한다면 단연 ‘포르투’란다.

생장에서부터 오면서 ‘포르투’에 꼭 가보라는 다른 순례자들의 이야기는 수차례 들었었다.

하지만, 포르투는 나에게는 그다지 끌리는 도시는 아니었다.

축구선수 ‘호날두’의 나라.

호날두를 좋아하지도 않기에, 아니 그의 언행을 싫어하는 한사람으로서 포르투칼 자체가 안 끌린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순례를 마치고, 관광을 나선다면 ‘코르도바’로 갈 생각이었다.

또 아빌라와 세고비아도 가보고 싶었기에 포르투는 생각조차 안했다.

이미 장 회장님과 이야기를 나눈적도 있었다.

“회장님은 순례를 마치고 가보고 싶은 도시가 있으세요?”

“나는 포르투에 가보고 싶어.”

주변 순례자들로부터 포르투 이야기를 들어서 흠뻑 빠지신 것 같다.

‘왜 다들 포르투, 포르투 하는 걸까?’

에라! 모르겠다. 그래. 속은 셈 치고 포르투에 가보자.

결과적으로는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나에게 포르투를 한마디로 말하라면 ‘편안한 파리’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 역시 포르투에 꼭 가보라고 추천할 것 같다.

11시쯤 되면 비를 쏟아냈다는 흔적은 사라지고, 하늘이 언제 그랬냐는 듯 햇빛이 쨍쨍하다.

오늘 목적지인 팔라스 데 레이는 ‘베드버그’ 이슈로 네이버 커뮤니티가 난리가 났다.

침대 시트에 붙어 있는 진드기의 모습이 사진으로 그대로 올라왔다.

순례길 박사인 이탈리아 순례자 프레도 역시 팔라스 데 레이에서 베드버그에 물렸었단다.

팔라스 데 레이는 베드버그가 넘쳐나는 마을 같다.

겁이 덜컥 났다.

팔라스 데 레이에 들어가기 전 마을에서 멈추자고 장 회장님에게 말씀드렸다.

그러자 20km이상은 가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신다.

나 역시 베드버그에 물리는 상상만 해도 너무 싫어서 갈 수 없다고 맞섰다.

회장님도 짜증이 올라오나 보다.

회장님의 뜻을 따라 처음 계획 그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결국 베드버그 이슈가 있던 팔라스 데 레이에서 숙소를 잡았다.

나에게는 엄청난 모험이다.

베드버그 공포로 밤새 설잠을 치렀다.

순례길 막판인데 너무 고통스럽다.

오늘은 또 순례길을 마치고 포르투에 떠나는 일정도 마무리해야 한다.

우선 비고로 이동할 기차 예약이다. 또 비고에서 포르투까지 2시간을 버스를 움직여야 하기에 이것도 동시에 예약해야 한다.

최저가로 예약하기 위해서는 유럽인들이 사용하는 어플인 트래인라인(Trainline)을 이용했다.

그런데, 버스 티켓을 A4용지로 출력해 오란다. 이렇게 해 오지 않으면 인정받지 못한다고 주의사항에 적혀있다.

‘출력은 또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하나?’

알베르게 리셉션에 가서 도움을 청했더니 흔쾌히 출력을 수락해줬다.

팔라스 데 레이의 모습

나는 모든 것을 마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팔라스 데 레이 마을을 둘러봤다.

마을 광장에서 이규석씨를 다시 만났다. 그분들도 오늘 이곳에서 묶는다고 한다.

광장에 계속 앉아 있었더니 프레도가 나타났다.

프레도는 공립알베르게에 체크인을 마쳤다고 한다. 지금이 오후 5시가 넘은 시간임에도 공립알베르게 입실자는 자신 혼자뿐이라며 웃음짓는다.

‘여기 공립알베르게는 베드버그 이슈가 너무 커서 한국사람들은 아예 안가요.’

속으로 이렇게 말하며 함께 미소 지었다.

프레도는 내일 멜리데라는 마을에서 반드시 뿔뽀(문어요리)를 먹어야 한다고 말해줬다.

그리고 멜리데에서 뿔뽀요리로 가장 유명한 식당도 소개해줬다.

‘내일을 갈리시아 명물 뿔뽀를 진정 맛볼 수 있는 날이다.’ 

프레도와 마을 산책을 함께 했다. 

오늘은 프레도와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프레도는 걸어다니는 순례백과사전이다.

프랑스길에서 봐야 할 곳들, 내일 멜리데라는 도시에서 초기 순례길과 만난다는 것 등등.

나를 위해 영어도 쉬운 영어를 골라서 써준다.

'프레도 고마워요'

팔라스 데 레이에서의 성당 모습. 바로 앞에 체크무늬 옷이 프레도다.

7시 미사시간이 돼 프레도와 함께 성당으로 향했다.

그런데 갑자기 신부님이 다가오니 프레도가 나를 잡아당긴다.

성당에 들어가지 말라는 뜻이다.

이유를 물었더니, 성당에 대해 설명을 한 후 돈을 요구한다고 한다.

한가지 더 있다.

프레도가 성당에 미사 온 2명의 남성을 가르키며 신발을 주의 깊게 보라고 한다.

그의 이야기는 지금부터는 소매치기들이 극성을 부릴테니 잘 가려내고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순례자와 거짓순례자(순례자가 아닌 사람)을 구별하는 방법은 신발을 통해서다.

프레도의 설명은 단순하지만 명확했다.

거짓 순례자들은 걷지 않는다. 그렇기에 신발이 깨끗하다.

그는 신발이 깨끗한 사람은 무조껀 의심하라고 조언한다.

앞서 오 세브레이라는 마을 공립알베르게에서 한밤중 사건처럼, 프레도는 그런 부분을 잘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프레도가 얘기했던 2명의 남성은 우리와 같은 창고 같은 알베르게에 머물고 있다.

우리가 입실할 때 먼저 들어와 있었던 사람들이다.

이날은 샤워를 갈 때도, 움직일 때도, 잠을 잘 때도 귀중품을 몸에서 떨어뜨리지 않았다.

시금장치가 되어 있는 숄더백을 꽁꽁 몸에 싸매고 잠을 청했다.

‘진짜 순례자도 거짓 순례자도 모두 돈 때문에 힘든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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