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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서 Oct 14. 2020

<터미널/The Terminal>

기다림과 만남의 미학.

90년대의 영화는 특유의 정겨움이 있다. 필자가 90년대를 지냈던 사람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90년대에 만들어진 영화를 보면 어색함보다는 따뜻함과 정겨움이 먼저 느껴지는데, 덕분에 90년대의 영화를 볼 때 부담을 가지지 않고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그런 느낌을 가장 많이 받았던 영화는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톰 행크스 주연의 <포레스트 검프>였다. 특히나 톰 행크스가 주연으로 나서면 그 감정은 배가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여기, 2000년대 영화임에도 90년대의 정겨움이 묻어나던 영화가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에, 역시나 톰 행크스 주연인 영화, <터미널>이다.




영화는 미국에 왔다가 자신의 고향 크로코지아가 쿠데타로 인해 일시적으로 유령 국가가 되자, 국적이 없어져 공항에 머물 수밖에 없게 된 빅토르 나보르스키가 9개월 동안이나 공항에 갇히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영어도 못하는 데다 나라가 뒤집어져 울부짖는 빅토르를 그냥 지나치는 여행객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외지인에게 무관심하게 불친절하게 대하는 현대인들, 특히 미국인들을 간접적으로 비판한다. 그와 동시에 기다림에 대한 메시지와 미학을 스필버그 특유의 따뜻한 분위기로 녹여낸다. 또한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의 빈도가 줄어드는 현대 사회에 다양한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대한 매력과 중요성도 보여주는 편이다. 그러면서 미국이라는 나라의 초석이 바로 인정과 연민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메시지를 공고히 한다.

앞서 이야기한 여러 가지 메시지를 불가피한 상황으로 공항에서 살아가는 빅토르 나보르스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아주 잘 나타내는 편이다. 나라가 전복되어 공항에 갇히게 된 극한의 상황에 놓인 빅토르의 모습은 안쓰럽다가도, 나름의 방법으로 적응해나가는 그를 보면서 흥미로움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극의 후반부로 갈수록 너무 우연에 기댄 전개력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나름의 유머러스함을 챙기려는 의도는 보이긴 하지만, 무리수를 두는 경우가 종종 보인다는 점은 명백한 단점 중 하나다. 너무 작위적으로 보인다는 것.

톰 행크스의 연기력은 정말 감탄만 불러일으키게 된다. 전형적인 미국인으로 보였고, 또 그러한 역을 많이 연기했던 그가 갑자기 영어가 어눌한 크로코지아인으로 변신했다. 연기를 한다는 느낌보다는 실존하는 한 인물을 보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또한 그가 공항에서 느끼는 온갖 감정들을 아주 잘 표현해낸다. 그리고 그를 옆에서 서포트 해주는 감초 같은 조연들의 모습도 빛난다. 아멜리아부터 굽타와 토레스까지. 매력적인 조연들로 가득 차 있다. 다만 인간관계를 풀어나가는 것에 대한 허술한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 토레스가 엔리크의 청혼을 받아주는 점과 딕슨이 순순히 빅토르를 놓아주는 장면은 조금 무리수를 두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스필버그 특유의 따뜻하고 뭉클한 엔딩은 영화의 확실한 매력이다. 필자가 90년대 영화의 정겨움을 느꼈다는 이유도 여기에서 온다. 오랜 시간 계속해서 기다린다는 말만 하던 빅토르가 마침내 집에 간다는 한마디를 내뱉는 순간 밀려오는 뭉클한 감정은 정말 마성의 매력을 지녔다. 

인물이나 사건 전개 등에 있어 작위적인 느낌이 상당히 강해 현실성이 떨어지고 판타지적인 요소가 많이 보인다는 점은 사실이며, 이를 싫어하는 관객들에게는 좋지 않게 보일 수 있는 영화다. 다만 스필버그의 따뜻함과 기다림에 대한 미학을 전해준다는 점에서 충분히 괜찮았던 영화, <터미널>이다.




총점 - 7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서의 만남, 그리고 그것의 소중함과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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