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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서 Oct 16. 2020

<뮌헨/Munich>

복수의 한계와 폭력의 악순환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정말 혐오하는 국제 범죄는 바로 테러다. 무식하며 끔찍하고, 절대로 정당화할 수 없는 범죄인 테러는 최근에는 좀 잠잠해졌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많은 사상자를 내었다. 당장 우리가 많이 들었던 9.11 테러부터 시작해서 파리, 보스턴, 뭄바이 등등. 수없이 많은 나라에서 많은 희생자를 내었던 극악무도한 범죄인 테러. 이러한 테러 범죄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이 하나 있는데, 바로 1972년 벌어진 뮌헨 올림픽 참사다. 그리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영화 <뮌헨>을 통해 이 참사를 그린다.




영화는 1972년 뮌헨 올림픽, 축제 분위기 속에서 팔레스타인 무장 조직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 선수 11명을 납치해 인질극을 벌인 후, 전부를 살해하는 일이 벌어지자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는 애브너를 비롯한 5명의 비밀 조직을 창단하고 뮌헨 사건의 배후에 있는 인물들을 처치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처음에는 뮌헨 참사의 배후자들을 암살하는 단순하고 통쾌한 복수극으로 예상했고, 또 내심 그런 이야기를 기대했었던 것은 사실이다. 다만 놀랍게도, 영화는 상당히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뮌헨 참사를 이야기하는 편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유대인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중립적인 입장에서 연출했다는 것 자체가 놀랍고 대단하다. 영화는 또한 굉장히 느리고 건조한 전개로 범죄의 원죄는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과, 타깃을 제거해도 계속 대체 인물이 나오는 현실을 보여주며 폭력의 악순환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영원히 지속될 갈등과 싸움의 끝은 과연 어디인가.

앞서 말한 듯이 중립적인 입장으로 뮌헨 참사를 그려내고는 있지만, 나름 첩보물의 매력도 한가득 안고 있는 영화다. 통쾌함이 아니라 찝찝한 느낌이 주를 이루기는 하지만, 한 명 한 명 목표 인물을 제거해나가는 애브너와 007스티브를 비롯한 팀들의 모습을 보면서 굉장히 사실적이고 긴장감 넘치는 첩보물의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의 임무 수행 과정을 보면 어딘가 서툴고 어설프며 실수투성이다. 그런데 전혀 답답하지 않고 오히려 이해되며 공감된다. 나라의, 단체의 복수를 위해 개인이 겪는 살인에 대한 죄책감과 트라우마는 어떻게 보상할 것이며, 또 복수에 의한 살인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스필버그는 결국 우리 모두가 복수의 희생양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연출력이 돋보인다. 사실 보기 전 2시간 44분이라는 상당히 긴 러닝타임을 보고 살짝 거부감이 든 것은 사실이나, 괜한 걱정이었다. 영화를 틀자마자 펼쳐지는 긴장감 넘치는 장면들로 빠져들었고, 2시간 44분이라는 러닝타임이 지루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중간중간 처지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훌륭한 몰입도를 선사했다고 생각된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편집이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시간이 꽤나 여러 번 넘어가는데, 이를 잘 알려주지 않아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다. 불친절한 편집만 해결했으면 좀 더 좋은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처음에는 조국을 위한 복수를 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떠났지만, 복수가 자행될수록 어느새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해짐에 따라 과연 무엇이 정의인가에 대한 고뇌를 하는 애브너의 캐릭터성은 아주 훌륭하다. 처음에는 냉철하게 복수를 하다가 어느 순간 이게 과연 정당한 일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결국 PTSD까지 겪는 애브너라는 캐릭터는 현 상황을 아주 잘 보여주는 캐릭터다. 동료가 암살당한 것을 본 후 목숨의 위협을 느껴 침대나 전화기, TV를 샅샅이 살피는 애브너의 모습은 단연 압권. 이러한 뛰어난 캐릭터성은 애브너를 연기한 에릭 바나의 연기력이 한몫했다고 생각된다. 그의 눈빛 연기는 상당히 강렬하다.

<쉰들러 리스트>와 상당히 다른 느낌을 보여준, 스필버그의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괜찮은 영화다. 너무 느리고 잔혹해 이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는 관객들도 있겠지만, 아주 냉혹하고 건조하게 테러리즘의 원죄와 폭력을 통한 복수의 악순환을 아주 잘 나타내는 작품이다.




총점 - 7.5
스필버그가 건조하고 냉철하게 전하는 복수의 악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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