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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서 Oct 18. 2020

<소리도 없이/Voice of Silence>

소리도 없이 흘러나오는 지독한 아이러니.

아직 학생 신분인 나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올해는 시국이 시국인지라 더더욱 극장에 잘 가지도 못해 웬만한 기대작이 아니면 극장에서 보지 못한 작품들이 많다. <반도>부터 <강철비: 정상회담>,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이 한국 여름 기대작 3개와 <테넷>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개봉작들을 훑어보던 중, 눈길이 가는 한 작품을 발견했다. <베테랑>부터 <버닝>까지 화려한 필모그래피를 자랑하는(<#살아있다>는 제외..) 유아인 배우가 나오는 <소리도 없이>는 개봉하는지도 몰랐던 작품인데, 어쩌다 기회가 되어서 극장에서 관람한 영화다. 그리고 생각보다 만족했던 영화, <소리도 없이>다.




영화는 범죄 조직의 하청을 받아 전문적으로 시체 처리를 하며 살아가는 태인과 창복에게 실장이 아이를 하나 맡아달라고 부탁하고, 아이를 맡은 다음날 실장이 죽게 되면서 벌어지는 다사다난한 일들을 그린다. 정말 훌륭한 국내 영화를 오랜만에 본 거 같다.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 중 TOP 3에 무조건 들어갈 거 같은 느낌이다. 상업 영화의 느낌보다는 독립/예술 영화 쪽에 가까워서 오락적인 재미를 기대하고 간다면 실망할 수도 있는 작품인데, 조금만 다른 방향의 기대를 가지게 되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품인 듯하다. 훌륭한 몰입도와 긴장감을 유지하는 훌륭한 연출력이 돋보이며, 끝나고 나면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종종 이야기했듯이 여러 번 곱씹고 생각하고 해석하는 영화를 꽤나 좋아하는 편이라서 더 좋게 보았던 거 같다. 대충 시놉시스만 봐서는 얼마 전 개봉한 <담보>의 느낌이 나지 않을까 싶었는데, 오히려 필자가 아주 좋게 본 <플로리다 프로젝트>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영화는 극 중 현실 속에 존재하는 아이러니를 중심으로 극을 이루며 전개해 나간다. 끔찍한 현실에 비해 너무나 무덤덤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란 아이러니, 어른이지만 아이 같은 태인과 아이지만 어른 같은 초희의 모습이라는 아이러니, 시체를 처리하는 끔찍한 일을 하지만 약간의 중압감에도 심히 흔들리는 창복이라는 아이러니. 이러한 수많은 아이러니들 속에서 극을 전개하면서도 자칫하면 모호해질 수도 있는 메시지를 끝까지 확고한 시선을 유지하면서 전하고자 하는 주제를 공고히 하는 편이다. 또한 유괴/납치 물에서 종종 보이며, 너무 뻔한 이야기나 신파로 빠져나갈 수 있는 스톡홀름 증후군도 보이지 않고, 여성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남녀는 평등해야 한다는 대사나 여자아이라서 몸값을 적게 준다는 설정 등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전달한다는 점도 좋았다.

유아인의 연기력은 단연 돋보인다. 극 중 대사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듣고 갔지만서도 이런 훌륭한 연기력을 보여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가 극 내내 보여주는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영화에 몰입하게 된다. 출연료도 거의 받지 않았던데, 정말 훌륭한 배우라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유재명의 연기력도 인상 깊게 보았다. 정말 실존하는 듯한 인물을 보는 거 같은, 생활(?) 연기를 참 잘하는 배우 같았다. 아역 배우들의 전체적인 연기력도 준수하며, 초희 역을 맡은 문승아 배우는 상당히 눈길이 간다. 다만 연기력과는 별개로 왜 등장했는지, 또는 왜 이런 역할로만 쓰였는지 싶은 의문이 드는 캐릭터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좀 더 확실하게 단정을 짓거나 혹은 더 많은 역할을 부여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주연 급 캐릭터의 대사가 하나도 없다는 것은 배우에게도 무척이나 힘든 일이지만, 연출자의 입장에서도 극을 어떻게 채워나갈지 고민이 많아진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홍의정 감독은 다른 조연들의 대사를 늘리는 단순한 방식보다는 유아인의 훌륭한 연기력을 기반으로 무겁고 중압감 넘치는 분위기를 유지하는 탁월하고 훌륭한 연출력을 보여준다. 또한 극이 너무 무거운 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중간중간 센스 있고 세련된 유머를 넣으면서 분위기를 한번 환기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다만 개인적으로 후반부에 다다를수록 스토리가 정리가 안되는 느낌을 받았고, 깔끔하지 않은 마무리가 영 찝찝한 것은 사실이다. 모호한 것은 둘째치고, 너무 성급한 마무리를 지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럼에도 정말 만족했고, 훌륭한 연출력과 연기력을 보여준 영화라고 생각된다. 아직 뜨거운 인기를 얻었던 <남매의 여름밤>을 보지는 않았지만, 올해 개봉작 중 <남산의 부장들>에 이어 만족했던 영화였다.




총점 - 7.5
끔찍한 현실과 무덤덤한 반응 속에서 소리도 없이 흘러나오는 지독한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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