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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서 Oct 28. 2020

<팬텀 스레드/Phantom Thread>

아름답고 우아한 하나의 드레스처럼.

폴 토마스 앤더슨은 <부기 나이트>로 출세해 가장 최근작이자 오늘 이야기할 영화인 <팬텀 스레드>까지 엄청난 연출력을 선보이며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공고히 해왔다. 그는 항상 불완전하지만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들을 그리면서 수려한 편집과 명배우들의 열연, 그리고 뛰어난 음악과 촬영을 관객들과 평론가들에게 선사해왔다. PTA의 작품들을 봐오면서 점점 달라지는 그의 작품 색깔을 두 번 느낄 수 있었는데, 첫 번째는 어둡고 무거워진 <데어 윌 비 블러드>였고, 두 번째는 난해함에서 벗어나 우아함을 뽐내는 이 영화, <팬텀 스레드>였다. 공교롭게도 두 영화의 주연배우가 모두 다니엘 데이 루이스였다는 점에서 신기한 영화, <팬텀 스레드>다.




영화는 1950년 런던, 귀족들의 드레스를 만드는 의상실 우드콕의 디자이너 레이놀즈는 음식점에서 우연히 마주친 알마라는 여자에게 첫눈에 반하게 되고, 그녀를 집으로 데려와 함께 생활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팬텀 스레드>는 정말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답고, 우아하다. 극 중 등장하는 화려한 드레스를 보는 듯한, 굉장히 아름답고 완벽한 영화다. 상당히 독특하고 복잡하게 존재하는 사랑이라는 주제를 스크린에 옮기는 능력이 역시나 탁월한 PTA 감독이다. 아름다운 드레스를 선보이듯이, 한없이 우아한 분위기와 화면 곳곳에 절제되어 있는 아름다움은 영화를 완벽하게 빚어내며, 이를 제작한 PTA를 세기의 장인으로 탄생시킨다. 또한 영화 시대에 걸맞은 고풍스럽고 엔틱한 의상과 미장센은 너무나도 아름답다. PTA의 이전 작품인 <인히어런트 바이스>보다 덜 난해해 받아들이기 더욱 쉽다는 장점도 있다.

이런 사랑도 있다. 한쪽이 무너져내려야만 성립되는, 불균형한 것 같지만 완전한 그런 사랑. 마치 한쪽이 뚫려야만 하는 바느질을 통해 완성되는 아름다운 드레스처럼, 레이놀즈의 인생을 망치러 왔지만 결국 그의 구원자이자 뮤즈인 알마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는 굉장히 비정상적이면서도 기이한 사랑. PTA는 한쪽이 파멸해야 성립되는 병적인 사랑을 탁월한 연출력으로 아름답게 담아낸다. 제목인 팬텀 스레드(Phantom Thread), 즉 보이지 않는 실은 그들의 여러 감정들을 이끌며 하나의 사랑을 완성한다. 레이놀즈와 알마의 관계가 전복되면서 어느 순간 빠르게 다가오는 클라이맥스에서의 전율은 일품. 정말 아름다우면서도 지독한 사랑을 수려하게 뽑아낸다. PTA의 특유의 모습이자 그의 강점인 하나의 업계에 빗대어 인간의 흥망성쇠를 표현하는 전개 방식이나,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그리는 점도 눈에 띄지만, 확실히 여러모로 색다른 모습의 PTA를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연기력은 말할 것도 없다. 이전부터 계속 이야기했듯이 정말 완벽에 가까운 연기를 보여주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이번에도 열연을 펼친다. 비록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었고, 그것을 제외하더라도 이미 세 번이나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어마 무시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만큼 굉장히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준다. 이 작품이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은퇴작이라는 것을 알고 본다면 조금 색다른 감정을 느낄 수도 있을 듯하다. 물론 은퇴 선언을 번복할 수도 있지만, 더 이상 그의 연기를 보지 못한다는 점이 그저 아쉽기만 하다. 여주 알마 역을 맡은 빅키 크리옙스도 돋보인다. 레이놀즈의 스쳐 지나가는 평범한 뮤즈로 남지 않고, 그녀만의 방법을 통해 광기 어린 사랑을 성취해내는, 극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성장하는 캐릭터를 잘 표현한다. 후반부 그녀가 그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독버섯으로 요리를 하는 장면에서의 몰입도와 연기력은 압권.

음악도 소름 끼칠 정도로 좋다. 조니 그린우드의 음악은 역시나 탁월함을 선보인다. 익숙하면서도 다른, 아주 훌륭한 클래식 음악의 선율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편이다. 촬영 또한 역시 압도적이다. 내용 전개 면에서는 폭주하지만, 화면 안에서는 소름 끼칠 정도로 절제하는, 미치도록 매력적이고 완벽한 장면들을 뽑아내는 데에 그저 감탄만 할 뿐이다.




총점 - 10
보이지 않는 실로 완성된, 기이하면서도 완전한 한 벌의 드레스 같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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