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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서 Nov 13. 2020

<레볼루셔너리 로드/Revolutionary Road>

녹록지 않은 현실에 이상은 죽고 적막만이 남을 뿐.

1997년 개봉한 제임스 카메론의 <타이타닉>의 커플, 잭과 로즈는 정말 세기의 커플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어모았고, 자연스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의 인기도 함께 올라갔다. 많은 사람들이 다시 디카프리오와 윈슬렛을 만나는 것을 바랐고 원했는데, 샘 멘데스가 2009년 연출작에서 이번에는 부부 역할로 나왔다. 그런데, 그 내용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샘 멘데스의 걸작 중 하나이자 레오와 윈슬렛의 연기력이 폭발한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다.




영화는 첫눈에 반해버린 에이프릴과 프랭크는 결혼을 해 행복한 가정을 이뤘지만, 그것도 잠시, 일상에서 탈출해 이상적인 생활을 꿈꾸는 에이프릴과 지금의 삶에 안주해 현실을 직시하고자 말하는 프랭크는 사사건건 갈등을 빚게 되고, 결국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이야기를 그린다. 참으로 걸작이다. 오프닝부터 확 사로잡는다. 첫눈에 반하고 사랑스러운 나날은 정말 잠깐 보여주고, 곧바로 서로를 죽일 듯이 비난하며 싸우는 이들의 모습을 강렬하게 보여주어 관객들을 시작부터 압도한다. 개인적으로 노아 바움백의 <결혼 이야기>와 상당히 비슷하다고 느꼈다. 하나의 소재를 가지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강력하고도 뚝심 있는 연출이 돋보였으며, 후반부에 펼쳐지는 부부 싸움 신은 단연 압권이다. 서로를 헐뜯고 상처를 입히는 싸움과 갈등을 보여주면서 현실을 녹록지 않다는 사실을 확고하게 보여준다. 또한 이러한 갈등은 처음부터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영화를 보다 보면 <결혼 이야기>에서처럼 서로 이혼을 하면 되지 않는가 하는 질문이 나올 수도 있다. 다만 다소 보수적이었던 195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을 비롯해, 남의 말에 상당히 신경 쓰고, 남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휠러 부부의 특성이 이혼을 결정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라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영화의 갈등 요소는 단지 사랑이 식어서나, 외도가 발각되어서가 아니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상과 현실의 대립에서 오는 갈등이다. 에이프릴은 여기를 떠나 파리에서 살고 싶은 이상적인 삶을 원하는 사람이지만, 프랭크는 현실을 직시하고자 하는 사람이다. 애초에 갈등이 점점 심해지던 와중에 이러한 대립을 보여주면서 현실적인 부부의 갈등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이상적인 계획은 무너지는 잔인하고도 무거운 현실의 안타까움을 보여준다. 이상을 꿈꿀 때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지만, 사실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다만 누구를 탓하겠는가. 이상적인 삶을 꿈꾸는 것도, 현실을 직시하자는 것도, 뭐라 나무랄 수가 없다. 그래서 이상이 가로막히고 현실을 자각할 때마다 다투는 휠러 부부는 더 안타까우며, 현실의 암울함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또 다른 갈등의 원인은 소통의 부재라고도 볼 수 있다. 프랭크와 에이프릴은 사소한 소통조차 하지 않고 현실과 이상의 대립만 두고 싸운다. 이를 보여주는 듯 후반부 아침 식사를 하며 하는 소박한 대화가 가장 평화롭고 행복하다는 점은 오히려 슬프고 불안하기까지 하다. 또한 주변 인물들이 참견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현실의 모습을 무섭게 비판한다. 정말 아무렇지 않게 남의 생각에 대해 비판하고 심지어는 태세를 전환하기까지 하는 이들을 보여주면서 날카롭게 비판한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보청기를 꺼버리는 엔딩은 여운이 깊었다. 우리는 너무 많이 지쳤다. 남이 나를 까내리는 말도, 남이 남을 까내리는 말도 넘쳐나는 세상에, 보청기를 한 번쯤 끄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을까. 참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가 많은 영화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의 연기력은 그야말로 폭발한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워낙 출중한 연기력으로 블로그에서도 칭찬을 상당히 많이 했지만, 여전히 놀라우며 언급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레오가 미친 듯이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는 연기가 너무나도 좋다. 케이트 윈슬렛이 상당히 놀랐다. 개인적으로 그녀의 작품들을 많이 보지는 못해서 연기력을 볼 시간이 없었는데, 정말 인상 깊은 연기력이다. 어쨌든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지만, 이 영화로 받지 못한 게 의아할 정도로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둘의 치고받는 연기력을 보기만 해도 감탄사가 나오며, 특히 앞서 말한 것처럼 오프닝과 후반부에 보이는 부부 싸움 신은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휘몰아치는 연기 이후 보이는 복잡 미묘한 감정의 묘사가 너무나도 뛰어나다. 이외에도 익숙한 배우들이 많이 보인다. 여러 굵직한 작품들에 주조연으로 출연한 마이클 섀넌을 비롯해 <기묘한 이야기>로 스타덤에 올라 <블랙 위도우>에도 출연할 데이빗 하버, <타이타닉>, <미드나잇 인 파리>의 캐시 베이츠 등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미국 중산층의 모습도 아주 잘 드러내고 있으며, 1950년대라는 시대적인 배경도 잘 살리는 미장센, 그리고 매력적인 분위기 등, 빠질만한 요소들이 많다는 점도 강점이다. 다만 너무 쉽게 풀어나가는 스토리나, 잘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이 눈에 띈다는 점은 아쉽기도 하지만 그리 거슬리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기대를 하고 봤음에도 영화에 압도당한 기분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개인적으로 <결혼 이야기>를 보고 난 뒤의 여운을 꽤나 만족스러워했는데, 비슷한 기분이 들어 정말 좋게 보았던 영화다. 샘 멘데스의 걸작, <레볼루셔너리 로드>다.




총점 - 9.5
녹록지 않은 현실에 이상은 죽고 적막만이 남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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