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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서 Nov 28. 2020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염세적이지만 우아하게, 나란 존재에 대해 의문을 던지다.

폴 토마스 앤더슨과 더불어 최고의 평가를 받고 있음에도 어떤 영화도 접하지 않았던 감독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조엘 코엔과 에단 코엔이다. 그 유명하다고 하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도 보지 않았는데, 그러한 이유에서 이번 도장깨기를 하면서 가장 기대되었던 감독들 중 하나였다. <블러드 심플>부터 <위대한 레보스키>까지 거의 모든 작품들이 성공적이었는데, 나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이 영화도 기대했다.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리뷰다.




영화는 1950년대 캘리포니아에서 이발사 일을 하며 무료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에드가 드라이클리닝 사업을 위한 투자금을 아내 도리스와 바람을 피우고 있던 빅을 협박해 얻어내는 과정에서 빅을 죽이게 되지만, 자신이 아닌 아내 도리스가 체포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코엔 형제 영화답게 우연이 겹쳐 점점 일이 꼬이고 결국엔 비극으로 끝나는 스토리로 이루어져 있다. 이를 흑백 화면으로 연출하고 독백을 많이 사용해 더욱 잔잔하고 염세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필름 누아르라는 말이 딱 들어맞을 정도. 정말 잘 만들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작품성이지만 고전 영화의 느낌이 많이 나며 난해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어 호불호가 조금 갈릴 수는 있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지루하게 봤는데, 작품성 하나만큼은 뛰어난 영화다.

무료한 일생을 보내던 중 조그마한 일탈을 하려고 하자 자신의 존재감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에드. 제목에서 볼 수 있는 '거기 없었다'라는 말이 너무나도 잘 와닿는 부분이다. 영화에서도 언급된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영향을 줘 결과가 바뀌어버린다는 불확정성의 원리도 영화를 관통하는 아주 중요한 소재다. 자유 의지 없이 흘려보내며 살고 있을 땐 알아서 비켜가기까지 했지만, 뭔가 하려고 개입하는 순간 세상은 에드를 막아버린다. 그 남자는 거기에 없었던 것이다. 영화는 동시에 자신이 하지 않은 일로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당하는 장면을 보여주며 진실에 대한 아이러니를 던져준다. 때때로 진실은 삶을 빗겨 지나간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자신의 의지 없이 살아가는 삶을 성찰하는, 코엔 형제의 걸작이다.

에드 역의 빌리 밥 스톤의 연기력은 정말 대단하다. 그의 무덤덤하면서도 감정이 드러나는 연기는 정말 놀랍다. 표정 연기도 정말 좋지만 빌리 밥 스톤의 냉소적이면서 정적인 독백은 미치도록 매력적이다. 조금은 고전적인 느낌이 나기도 한 연기였다. 프란시스 맥도먼드는 명실상부 코엔 형제 최고의 페르소나인 만큼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생각보다 그녀의 분량이 많지는 않았지만 강한 임팩트를 보여준다. 스칼렛 요한슨도 조연 치고는 나름 비중 있게 등장하는 인물인데, 19년 전 그녀의 풋풋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코엔 형제의 영화를 보다 보니 꼭 한 명쯤은 수다쟁이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 같다. 코엔 형제의 유머러스함을 엿볼 수 있는 캐릭터라는 생각이 든다.

음악이 정말 좋다. 시대에 걸맞은 음악을 비롯해 클래식까지 좋은 음악들로 꽉 채워져있다. 특히 베토벤의 소나타는 영화에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엔딩 크레딧에 베토벤의 음악이 흘러나올 때는 너무나도 우아해서 끝까지 들었다. 품격 있는 중후함이 분위기와 아주 잘 맞는 듯했다.

비록 조금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압도적인 연출력을 볼 수 있었던 영화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총점 - 8
잔잔하지만 날카롭게, 염세적이지만 우아하게, 나란 존재에 대해 의문을 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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