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팬서 Dec 02. 2020

<번 애프터 리딩/Burn After Reading>

빈 수레를 요란하게 만드는 코엔 형제의 탁월한 블랙코미디.

몇몇 감독들은 무겁고 압도적인 분위기를 이끌어낸 작품을 만들고 나서 조금은 쉬어가는 느낌이 드는 영화를 제작하기도 한다. 폴 토마스 앤더슨이 <매그놀리아> 이후 만든 <펀치 드렁크 러브>나 샘 맨데스가 <레볼루셔너리 로드> 이후 만든 <어웨이 위 고>가 그러했는데,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로 아카데미를 휩쓴 코엔 형제도 비슷한 영화를 만들었다. 근데 생각보다 너무나 재밌었던 영화, <번 애프터 리딩>이다.




영화는 헬스클럽에서 일하는 채드와 린다가 우연히 전 CIA 요원 오스본의 개인 CD를 줍고 이를 기밀문서로 생각해 오스본과 거액의 협상을 요구하지만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아 일이 점점 꼬여가는 도중, 린다는 인터넷으로 만난 남자 해리에게 마음을 뺏기고, 채드는 몰래 들어간 오스본의 집에서 해리를 만나게 되면서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을 그린다. 정말 너무너무 재밌게 본 코미디 영화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바로 전작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도 가벼운 분위기다. 코엔 형제의 유머 감각이 여기서 폭발한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취향에 맞았고 한국인의 정서에도 잘 맞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사회를 통렬하게 비판하는 메시지도 확실하게 전하면서, 코엔 형제의 블랙코미디 연출력은 정말 엄청나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각기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면서 이들이 엮이는 과정과, 이를 통해 매우 복잡해져 파국으로 치닫는 사건들을 아주 위트 있고 재밌게 보여주는 영화다. 그런데 알고 보니 원인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해도 정도로 사소한 오해에 불과하며, 이러한 복잡한 사건들을 통해 얻는 것은 0에 가깝다. 이를 잘 보여주듯 극중 CIA 상관이 이 사건을 통해 배운 것이 뭐냐고 묻자 간부가 잘 모르겠다고 답하고, 상관 자신도 모르겠다고 말하는 신은 명장면. 미국 사회의 단점들을 표현한 듯한 캐릭터가 펼치는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은 블랙코미디의 정수라고 불릴 정도의 짜임새를 가진다. 그런데 정말 얻는 것은 없다.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를 이렇게 재밌게 만들고 확고한 메시지까지 전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코엔 형제의 연출력은 정말 엄청나다. 빈 수레를 요란하게 만드는 능력. 영화 진짜 잘 만든다.

영화의 오프닝에서 눈길을 끄는 건 단연 매우 화려한 배우 라인업이다. 우선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스페이스 포스>에서 정말 인상 깊게 봐서 빠져버린 배우 존 말코비치는 해고된 CIA 정보원 역을 맡았는데, 너무나도 매력적이다. F-word를 정말 잘 쓰는 배우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코엔의 페르소나인 프란시스 맥도먼드도 성형 수술만 바라보는 린다라는 캐릭터를 통해 정말 훌륭한 연기력을 보여준다. 이런 역할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듯싶다. 영화의 최대 매력이자 강렬한 웃음 포인트는 바로 브래드 피트다. 진짜 이런 면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멍청하고 어리바리한 캐릭터 채드를 너무 잘 연기한다. 그간 보여줬던 그의 캐릭터와는 정말 다른 모습이다. 브래드 피트가 보이거나 말하기만 하면 웃기다. 등퇴장이 모두 충격적인, 영화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캐릭터. 조지 클루니도 속물인 캐릭터로 나오는데 멋있으며, 후반부 놀라는 연기는 압권이다. 틸다 스윈튼도 나와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J.K. 시몬스도 임팩트 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명배우들이 모두 새로운 변신으로 생각지 못한 재미를 주는 영화다.

음악도 좋았고, 엠마누엘 루베즈키의 촬영도 좋았다. 이렇게 한 템포 쉬어가는 느낌으로 만든 영화들이 모두 취향에 맞는 듯한데, <번 애프터 리딩>도 너무나 좋게 봤다. 정말 오랜만에 만족해 추천하는 코미디 영화, <번 애프터 리딩>이다.




총점 - 8.5
빈 수레를 요란하게 만드는 코엔 형제의 탁월한 블랙코미디(그리고 브래드 피트).
매거진의 이전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