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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서 Dec 23. 2020

<마틴 에덴/Martin Eden>

계급과 사회의 벽에 막혀 꿈과 사랑이 침몰하는 가난한 예술가에 대한 통찰

2020년은 코로나19로 블록버스터 영화들을 많이 만나지는 못했지만 덕분에 작품성 있는 다양한 영화들을 많이 접해볼 수 있었다. 기생충과 겨뤘던 오스카 후보작들부터 평소 같으면 잊혔을 독립영화까지 많은 영화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필자가 눈여겨 본 작품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극장에서 보지는 못했지만 집에서 관람하고 싶은 영화들을 보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마틴 에덴>이다.




영화는 20세기 중반 이탈리아 나폴리, 주먹 하나만큼은 최고인 선박 노동자 마틴 에덴이 상류층 여자 엘레나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녀처럼 말하고 생각하기 위해 열정을 가지고 공부하여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이탈리아 영화는 익숙하지 않았는데, 굉장히 담백하고 우아한 연출이었으나 나름의 재미도 챙기는 수작이었다. 연출력이 굉장히 돋보이는데, 고전 영화를 보는 듯한 기품있고 고급진 연출력이 독특한 화면비를 만나 영화의 완성도를 더해준다. 이러한 분위기의 영화는 참 오랜만에 보는 듯하다. 다만 후반부가 조금 아쉬웠는데, 후반부 전개에 시간을 좀 할애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지루하게 느껴지고도 하고 급작스러운 마무리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영화의 완성도 자체는 너무나도 뛰어나서, 올해 가장 만족한 영화 중 하나다.


사랑에 있어서 계급이란 장벽, 그리고 배움에 있어서 노동과 돈이란 장벽을 통해서 혼란스러웠던 20세기 이탈리아의 사회가 어땠는지 정확하게 통찰해낸다. 순수해야 할 사랑과 배움이야말로 계급과 돈에 철저하게 지배되며 벗어나기 힘들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려준다. 이러한 장벽들, 압박들로 인해 꿈과 사랑이 모두 무너지는, 가난한 예술가 마틴 에덴의 삶을 통해서 그 시대의 아픔을 엿볼 수 있다. 예술과 사랑의 순수함이 방해에 가로막혀 짓밟히고 침몰하는 것만큼 안타깝고 아픈 것도 없을 테니. 내용만 본다면 마틴 에덴이 사랑을 위해서 글을 배우고 작가가 된 것처럼 보이지만 영화는 오직 마틴 에덴이라는 하나의 개인을 그려내고 있다. 개인에 대한 고찰을 통해 혼란스러웠던 시기 자신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하지 못하고 꿈꾸었던 순수한 예술과 사랑 모두 무너지는 마틴 에덴이라는 캐릭터를 투박하면서도 클래식하게 담아낸다. 또한 그 시기 팽배했던 사회주의, 그리고 자유주의 모두에게 저항하며 방랑하는 마틴 에덴을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지금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가.


그런 의미에서 마틴 에덴을 연기한 루카 마리넬리의 연기는 호소력이 짙다. 정말 이렇게 연기를 잘 하는 배우인지 몰랐다. 전반부의 연기도 놀라웠지만 후반부의 모습은 다른 사람인 것처럼 무너져 타락한 듯 광기 어린 모습이 뇌리에 박혀 잊히지 않는다. 특히 후반부 엘레나에게 격분해 악에 받친 듯 소리치는 장면은 정말 놀라웠다.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배우. 엘레나 역을 맡은 제시카 크레시도 독특한 마스크로 기억에 남는다. 여러 배우들을 합쳐 놓은 듯한 그런 마스크. 그녀의 연기도 좋았는데, 생각보다 분량이 적어서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래도 영화 내내 루카 마리넬리와의 합이 굉장히 눈에 띄었다. 마르게리타 역을 맡은 데니스 사르디스코와 루스 역을 맡은 칼로 세치의 연기도 괜찮았으며, 전체적인 조연진들의 연기력이 훌륭해서 몰입도를 높이는데 큰 역할을 했다.


시대극이다 보니 그 시절의 분위기를 잘 살려낸 미장센도 아름다웠다. 아무래도 평이 좋다보니 기대를 하고 봤는데, 실망하지 않은 작품이었다. 루즈함이 따라오긴 하지만 작품성 하나만큼은 아주 뛰어난 영화, <마틴 에덴>이다.




총점 - 8
계급과 사회의 벽에 막혀 꿈과 사랑이 침몰하는 가난한 예술가에 대한 품격있는 통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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