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천국과 같은 적막의 순간을 겪게 해주는 경이로운 체험.
베토벤은 귀가 들리지 않지만 천재적인 음악가로 남아있다는 사실은 아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사실만 알고 있을 뿐, 베토벤이 실제로 어떠한 상황이었는지 알기는 힘들다. 다른 청각 장애의 이야기들도 그렇다. 정말 자신이 청각 장애를 겪게 된다면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를 알려주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여기, 그러한 체험을 효과적으로 발휘하는 작품이 있다. 아마존 오리지널 무비, <사운드 오브 메탈>이다.
영화는 여자친구 루와 2인조 메탈 밴드로 활동하고 있는 드러머 루빈이 과거 마약 중독의 영향으로 갑자기 청력을 잃게 되고, 청각 장애인 커뮤니티에 들어가게 되면서 루빈이 내적 변화를 겪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개인적으로 기대를 했던 작품이라 집중하면서 봤는데, 몰입도 하나는 끝내준다. 다만 일반적인 음악 영화를 생각한다면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해 실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같은 드럼을 소재로 한 <위플래쉬>와도 또 다른 느낌인데, 드럼을 연주하는 분량은 상당히 적은 편이다. 그럼에도 초반부에 휘몰아치는 락과 드럼 연주는 매료되기 충분하다. <사운드 오브 메탈>은 영화를 연출한 다리어스 마더의 장편 영화 데뷔작인데, 데뷔작치고는 상당히 섬세한 연출이 돋보여 상당히 흡입력 있게 극을 끌고 간다. 하지만 이러한 흡입력은 후반부로 갈수록 힘이 빠지는 듯싶은데, 적은 갈등으로 인해 서사가 심심하고 밋밋하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는 듯하다.
영화의 묘미는 바로 사운드 믹싱에 있다. 청각 장애가 생겼을 때 들리는 소리들을 재현해 내 실제 청각 장애인이 되었을 때의 상황을 직접 체험할 수 있게 만든다. 기존에는 묵음 처리만 하던 청각 장애를 울림과 이명을 이용해서 아주 현실적으로 표현해 훨씬 더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아마 이번 아카데미에서 음향상을 수상하고도 충분한 역량이 아닐까 생각된다. 120분 동안 청각 장애를 경험하면서 극 중 나오는 청각 장애인이 되는 법을 알아볼 수 있는, 꽤나 신선한 영화다. 또한 수화를 비롯한 다양한 소통 수단, 그리고 생활 방식 등을 보여주면서 청각 장애에 대해서도 좀 더 잘 알게 해주는 영화기도 하다. 우리가 불편하다고만 생각했던 적막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한다. 교회에서 종소리가 흘러나오자 루빈은 귀에 이식한 임플란트를 때 버리고 적막 속에 남는다. 고요함이 천국과도 같다는 벤의 말처럼, 때로는 소음과도 같은 일상의 소리를 듣지 않는 것 또한 어찌 보면 좋게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을 던져준다.
루빈은 갑자기 찾아온 청각장애로 인해서 갈등하고 고뇌하지만 점차 성장해나가는 인물이다. 다만 갈등이 턱없이 적은 서사 때문에 밋밋하게 보일 수 있던 캐릭터를 리즈 아메드의 연기로 살려낸다.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 <베놈> 등 굵직한 작품에서 모습을 보인 그가 상당히 진중한 연기를 선보이는데, 그 힘이 굉장하다. 쉽지 않은 청각 장애인 연기를 아주 훌륭하게 해내며, 이번 아카데미에서도 충분히 승산 있다는 개인적인 의견이다. 루의 역할이 상당히 적었다는 점이 아쉽게 다가온다. 루와의 갈등을 만들어내던가, 혹은 극적인 역할을 한 번쯤은 해줬어야 하는데, 그저 그런 평범한 캐릭터로 남아버렸다. 올리비아 쿡의 변신이 새롭게 다가왔기에 더욱 아쉬웠다. 사실 마티유 아말릭이 나온다길래 그의 역할도 기대했는데, 정말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다. 왜 있는지는 조금 아쉬운 캐릭터. 벤이라는 캐릭터가 사실 가장 중요한 캐릭터가 아닐까 싶다. 루빈의 성장을 도와주고, 우리에게 고민할만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겉도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이긴 하다.
기대치에 미치지는 못했으나 올해 나온 훌륭한 작품 중 하나인 것은 확실하다. 리즈 아메드의 연기가 빛났으며,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절대로 음악 영화를 기대하고 관람하면 안 된다. 갑자기 찾아온 장애를 마주하고 한층 성장하는 인물을 그린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한 영화, <사운드 오브 메탈>이다.
총점 - 7.5
때론 천국과 같은 적막의 순간을 겪게 해주는 경이로운 체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