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팬서 Dec 27. 2020

<더 플랫폼/The Platform>

연대 없이 추락하는 극단적인 계층의 역겨움 속에서 올려보내는 희망.

참신한 소재, 혹은 기괴한 분위기 하나로 호평을 받고 들어가는 공포 영화들이 인기다. 예를 들면 <겟 아웃>이나 <미드소마>같은 영화들 말이다. 하지만 필자는 공포 영화를 정말 못 봐서, 이런 영화들을 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올해에도 호평을 받는 공포 영화가 하나 나왔다. 스페인 영화의 저력을 볼 수 있는 작품인 <더 플랫폼>인데, 용기를 내어서 관람했다. 물론 개쫄아서 반쯤 가리고 봤지만.




영화는 30일마다 랜덤으로 층이 바뀌는 극한 생존의 수직 감옥 이른바 '구덩이'에서 6개월만 버티면 학위를 준다는 말에 들어온 고렝이 여러 룸메이트들을 만나면서 생존함과 동시에 이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우선 공포 영화라는 느낌보단 굉장히 독특하고 참신한 SF적 소재라 몰입해서 재밌게 볼 수 있었다. 많이들 이야기하는 <설국열차>의 세로 버전의 느낌도 났고, 드니 빌뇌브의 단편인 <다음 층>의 느낌도 많이 받았다. 개인적으론 <다음 층>의 분위기와 많이 비슷했는데, 역겹거나 끔찍하고 잔인하기까지 한 기괴한 분위기가 영화의 매력을 한 층 더 살리는 것 같다. 물론 영화 장르 특유의 긴장감도 훌륭하게 잡아낸다. 수직적 감옥이라는 제한적 공감을 통해서 영화의 많은 부분을 채워나가는 편인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자면 한정된 공간을 활용하는 연출법이 후반부로 갈수록 조금씩 약해진다는 점이다. 그런 이유에서 러닝타임을 짧게 잡았다는 점은 탁월한 선택인 듯싶다.

영화가 수직적 감옥을 메타포로 삼아 계층에 대한 이야기를 비유적으로 전하고 있다는 점은 영화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이를 음식, 혹은 가지고 들어올 수 있는 물건 등을 이용해 아주 영리하게 풀어내고 있다. 아주 끔찍하고 역겹고 잔인하며 연대는 커녕 탐욕과 광기, 그리고 절망으로만 가득 찬 계층의 세계를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공간에서 절망과 광기로 가득 찬다는 것은 어찌 보면 뻔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렇게 뻔하지만 잔인한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사실로 다가오기도 한다. 다만 결말에 있어서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음식과 아이를 메시지, 혹은 희망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에게 무작정 넘겨준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열린 결말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기에는 아주 효과적이지만, 영화는 90분 내내 흥미로운 설정들과 소재들로 이야기를 쌓아왔는데, 이렇게 열린 결말로 끝내버린다는 점은 궁금함보다는 당혹스러움이 먼저 느껴지게 만든다. 이럴 땐 감독의 확실한 생각을 듣고 싶다는 마음이다.

고렝이라는 캐릭터는 상당히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캐릭터라고 볼 수 있겠다. 극한 상황에서 적응하고 생존하면서 이 시스템을 바꾸려고 고군분투하는 고렝의 이야기는 몰입이 상당히 잘 된다. 무작정 나서는 영웅적인 캐릭터도, 좌절하고 포기하는 무기력한 캐릭터도 아닌 꽤나 현실적인 인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이반 마사구에의 훌륭한 연기를 통해 전달하는데, 그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고렝은 여러 룸메이트들을 만나는데, 굉장히 인상적인 인물들이다. 첫 번째로 만났던 트리마가시는 광기와 잔인함을, 두 번째 이모구리는 연대와 나눔을, 그리고 마지막 바하랏은 도전과 전달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잠시 인연을 맺은 미히루, 그리고 희망의 메시지라고 생각되는 꼬마 아이도 굉장히 임팩트 있게 남는다. 특히 꼬마 아이를 올려보내는 장면은 상당히 중요하니. 다만 아쉬웠던 점은 한정된 수직 공간의 긴장감을 살려주는 트리마가시나 미히루와 같은 캐릭터가 초반에 비중이 많기 때문에 후반부의 긴장감이 조금 누그러졌다는 점이다. 강렬한 캐릭터의 비중을 적절하게 배분했으면 영화의 힘이 상당히 더 강해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꽤나 호평을 받고 있었지만 공포 영화라는 점이 걸려 손이 쉽게 가지 않았는데, 보기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상당히 재밌는데, 공포 영화보다는 잔혹한 SF 스릴러와 같은 느낌이 강하다. 공포 영화를 못 보더라도 잔인한 영화를 버틸 수 있다면 추천드리지만, 굉장히 역겹고 잔인하다는 점은 염두에 둬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상당히 만족스러웠던 영화, <더 플랫폼>이다.




총점 - 8
연대 없이 추락하는 극단적인 계층의 역겨움 속에서 올려보내는 조그마한 희망.
매거진의 이전글 <뉴 뮤턴트/The New Mutant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