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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서 Jan 06. 2021

<데쓰 프루프/Death Proof>

타란티노는 절대로 위기를 탈출하는 것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타란티노의 영화들은 끝내주거나 골 때리거나 둘 중 하나에 속하는 경우가 다반수다. 그런 면에서 <데쓰 프루프>는 골 때리는 영화에 조금 더 가깝다고 할 수 있겠는데, 영화의 엔딩만큼은 타란티노 영화들 중에서 가장 통쾌한 영화라고 생각이 든다. 국내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서 알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충분히 만족했던 영화, <데쓰 프루프>다.




영화는 자신뿐 아니라 미녀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에서 삶의 위안을 얻는 남자 스턴트맨 마이크가 애버나시를 비롯한 다른 미녀들을 대상으로 사고를 위장한 살인을 저지르려고 하자, 위기에서 벗어나 복수를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상술했듯, 정말 골 때리는 영화다. 타란티노의 여느 영화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 강했는데, 아마도 타란티노의 취향이 가득한 것처럼 보인다. 그가 좋아하는 발이 많이 나오며, 그 또한 조연으로 나름 비중 있게 나온다. 개인적으로 타란티노가 자신의 영화에서 조연으로 나오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편인데, 이번엔 더 길게 등장해 마음에 들었다. 또한 한 사람, 혹은 집단의 모습을 쭉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마치 1, 2부가 나누어져 있는 것처럼 전개하는데, 이것도 나름 독특한 전개 방식이다. 자칫하면 동떨어진 두 이야기라고 생각되기 쉽지만 그렇지는 않다.

전혀 다른 방식의 폭력이 나온다. 초반부터 중후반까지 폭력의 수가 적을뿐더러 조금은 찝찝한 폭력이 주를 이루는데, 그래서 조금은 의아하기도 했다. 게다가 영화는 전반적으로 타란티노의 재치 있는 말발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통쾌함을 느끼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었고, 전개도 조금은 느린 데다 독특하기까지 해 따라가기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걱정은 후반부에 들어가면서 싹 사라진다. 다짜고짜 긴장감 넘치는 카 체이싱으로 시작하더니, 스펙터클한 위기 탈출을 보여준다. 그리고 여기서 놀라운 점은, 단순히 탈출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자들은 안도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연장을 챙겨서 복수하러 쫓아간다! 여기서부터 미친 쾌감이 시작되는데, 타란티노의 마법이 또다시 통하는 부분이다. 똑같은 행동을 통해서 복수하고, 마지막 일격으로 마무리한 후 나오는 The End 크레딧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기에 충분하고도 넘친다.

인물을 정리하기에 조금은 어려운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그럼에도 주인공이자 메인 빌런인 커트 러셀이 연기한 스턴트맨 마이크는 확실한 존재감을 보인다. 세상 터프하고, 미친 섬뜩함을 보여주는 줄 알았는데 상처 입고 징징거리며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란. 괜히 대배우라 불리는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이 맛깔나게 캐릭터를 소화한다. 미친 나초 먹방을 덤. 매력적인 여자들이 영화의 최대 강점이라면 강점이다. 전반부에 나오는 바네사 페를리토, 조던 래드, 시드니 타미아 포이티어, 로즈 맥고완도 충분히 매력적이었지만, 후반부에 나오는 로사리오 도슨, 트레이시 톰스,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 그리고 조 벨 이 4인방이 정말 최고다. 좀 아쉬웠던 점은 리 역을 맡은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의 모습이 갑자기 안 보인다는 점 정도. 어떻게 되었는지가 조금 궁금하기는 하다.

어쩌면 기대를 제일 안 했던 작품인데, 그 덕분인지 상당히 통쾌하게 봤던 작품이다. 러닝타임도 1시간 53분 정도로 적당해 느린 전개도 참을만하며, 그 뒤에 오는 커다란 카타르시스는 정말이지 압권이다. 타란티노의 취향과 능력이 모두 들어간 작품, <데쓰 프루프>다.




총점 - 8.5
타란티노는 절대로 위기를 탈출하는 것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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