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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서 Jan 08. 2021

<걸/Girl>

자신의 소망을 갈망하는 태도만큼 그녀를 꼿꼿하게 응시한다.

칸 영화제는 유독 성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들이 주목받고 있다. 아예 퀴어 종려상이라는 부문이 있을 정도로 이러한 장르를 많이 좋아하는데, 그런 주제를 다루고 있는 영화가 칸 황금 카메라상과 남우주연상을 받았다고 하면 당연히 주목할 수밖에 없다. 황금 카메라상은 데뷔 영화상이라고 보면 되는데, 루카스 돈트의 검증된 첫 영화인 셈이다. 그리고 상당히 좋았던 영화, <걸>이다.




영화는 소년과 소녀 사이에서 발레리나를 꿈꾸는 16살 라라가 호르몬 치료와 학업을 병행하며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최근에 영화들은 하나의 주제에 시선을 고정하고 굉장히 힘 있게 끌고 가는 편이다. 개인적으로 작년의 <안티고네>에서 그런 느낌을 느꼈는데, <걸>은 좀 다르긴 하지만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비슷하게 보인다. 영화의 촬영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러닝타임 내내 그녀를 꼿꼿하게 응시하는데, 그녀가 갈망하는 것들을 대하는 태도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잔잔하게 흘러가며 소리 없이 그녀를 응원하는 감독의 목소리처럼 보이기도 했다. 영화는 '여기까지 가나?' 싶을 정도로 달리기 시작하며, 정말 끝까지 간다. 후반부에는 소름이 돋을 정도의 클라이맥스를 보여주는데, 조금은 과한 것처럼 느껴졌으나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바, 그리고 라라가 얼마나 간절하게 원하고 있는지에 대한 것들을 확고하게 보여준다.

단순한 젠더 문제를 넘어서 고뇌하는 한 인간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는 점에서 좀 더 쉽게 이입해서 볼 수 있었다. 특히 사춘기 시기를 겪고 있는 라라를 조명하면서 성 정체성에 관해서 받아들이기 힘들어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늘어났다는 점은 아주 좋게 본다. 우리 모두 겪었을 그 시절을 회상하면서 나름의 생각할 거리도 던져준다. 뛰어난 발레 영화이기도 하다. <빌리 엘리어트>를 봤는지 안 봤는지 가물가물해서 비교할 수는 없으나, 라라가 감정을 쏟아내듯이 발레를 연습하는 장면은 정말 묵직하게 다가와 빠져든다. 결국 라라는 무대에 서지 못하게 되는데, 영화는 앞서 열어둔 공감대가 상당히 많아서 그때 라라의 감정에 이입해서 봤다. 다만 이야기는 조금 끊어지는 듯한 아쉬움이 들기도 하며, 주제는 명확하지만 이야기 흐름 자체는 확실하지 않아 조금은 산만하거나 난잡하게 느낄 수도 있을 것처럼 보인다.

라라 역을 많은 빅터 폴스터는 정말 강렬하다. 이렇게 임팩트 있는 신인을 볼 때마다 정말 기분이 좋은데, 빅터 폴스터도 앞으로 많은 작품에서 만났으면 한다. 일단 댄서로 있다가 배우로 발탁된 거라 발레도 직접 소화한 것처럼 보이는데 그래서 그런지 상당히 잘 춘다. 그리고 첫 작품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감정 표현이 세심하며, 변화하는 감정도 물 흐르듯이 해낸다는 점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성 정체성을 혼동하는 캐릭터를 연기하기에는 쉽지 않을 텐데, 정말 잘 해낸다. 성 정체성과 사춘기를 모두 겪는 라라라는 캐릭터를 너무나 잘 소화해냈다. 영화는 등장인물이 상당히 적은데, 그만큼 라라를 집중 조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주변에서 아주 서포팅을 잘 해준 아리 보르탈테르와 발렌티인 다에넨스의 역할도 아주 훌륭했다. 개인적으로 눈길이 간 배우는 라라의 동생 미로 역을 맡은 아역배우 올리버 보다트. 너무 귀엽다.

단순한 젠더 영화를 넘어선 경계에 있다는 점이 가장 강력한 장점으로 다가오는 영화다. 다만 영화가 보여주는 장면들은 호불호가 갈릴만 해 마냥 추천하기엔 힘들 것 같다. 그럼에도 올해 만족한 첫 영화, <걸>이다.




총점 - 7.5
자신의 소망을 갈망하는 태도만큼 그녀를 꼿꼿하게 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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