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운과 실용적 선택만이 남는다는 아이러니.
<매치 포인트> 같은 무거운 주제를 <매직 인 더 문라이트>처럼 경쾌한 분위기로 전하고 있는 영화, <이레셔널 맨>. 덕분에 굉장히 비이성적인 철학을 그리고 있는 이 영화가 왠지 모를 어두움과 광기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다만 전체적인 흐름이 조금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며, 왜 이러한 이야기로 흘러가야 하는지 여지를 두지 않는다는 점은 조금 아쉽게 다가온다. 심지어는 낭만이나 흥미 모두 챙기지 못해 지루하기도 하며, 흥미진진하게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를 대충 얼버무렸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앨런 최대 매력인 라스트 신도 <매직 인 더 문라이트>부터 조금씩 활력을 잃는 듯. 앨런답게 대사와 독백 모두 많은데, 이게 너무 과용되는 듯한 느낌이 들어 극의 흐름이 많이 깨진다.
영화는 철학적 내용을 그리고 있다. 참 낭만적으로 보이는 이 철학은 사실 잘못된 생각이며, 아주 비이성적이라는 점을 보여주며 인생엔 실용적인 선택과 타고난 운만 남는다는 아이러니함을 전한다. 참 염세적이고 비관적인 앨런답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이러한 메시지를 훌륭하게 전달하지 못하는 후반부의 연출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덕분에 앨런의 단점 중 하나인 얼렁뚱땅 넘어가는 개연성이나 캐릭터성의 문제가 더욱 부각되기도 한다는 점이 영화의 가장 큰 패착이 아닌가 싶다. 불륜 소재는 여전한데, 최근 들어 조금 덜 파격적이고 코믹하게 풀어내는 경향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원래 그랬지만 자기방어적인 느낌이 강해진 느낌.
호아킨 피닉스와 엠마 스톤의 연기는 참 대단하다. 특히 호아킨 피닉스는 워낙 명배우인 만큼 극을 휘어잡는 포스가 대단한데, 비관적이며 자기 파괴적인 우디 앨런의 자전적 캐릭터를 아주 잘 표현해낸다. 엠마 스톤도 <매직 인 더 문라이트>에 이어 우디 앨런의 영화에 출연했는데, 개인적으로 <이레셔널 맨>에서의 연기가 더 좋았다. 이런 평범한 여대생으로 나올 때 엠마 스톤의 매력이 더 사는 듯. <매직 인 더 문라이트>와 같이 두 명의 등장인물에 집중한 2인 극의 형태로 전개되는데, 앞서 언급했듯이 캐릭터를 너무 대충 사용하는 바람에 힘이 빠져버리는 느낌이 강하다. 너무 작위적인 역할로만 조연들을 사용한다고 해야 하나.
굉장히 애매해서 개인적으로 별로였던 영화다. 솔직히 2010년대 영화 중에서 <미드나잇 인 파리>와 <블루 재스민> 빼고는 고만고만한 영화들이라 그럴지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데 좋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총점 - 5.5
낭만적으로 보이는 철학은 비이성적이며, 결국 운과 실용적 선택만이 남는다는 아이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