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팬서 Mar 08. 2021

<비포 선라이즈/Before Sunrise>

영원히 붙잡고 싶지만 그렇지 않아서 더 낭만적인, 너와 함께한 모든 순간

로맨스 영화를 많이 본 편은 아닙니다만 잘 만든 사랑 영화를 보면 가슴 뛰는 무언가가 느껴집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맹목적인 결실보단 아련하고 애틋함도 동시에 느껴지는 그런 영화를 꽤나 좋아하는데요. <비포 선라이즈>는 그런 요소들을 모두 담고 있는 영화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설렘과, 먹먹해지는 애틋함을 동시에 가진 사랑 영화였어요. 이런 감정들을 다 담고 있는 영화가 얼마나 될까요. 참 훌륭한 영화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 설레는 감정은 정말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과장 조금 보태서 말하면 <비포 선라이즈>가 주는 설렘은 그 어떤 로맨스 영화보다 더욱 짙었어요. 영화는 내내 설레는 분위기를 유지하기보다는 특정 장면에서 힘을 주는데, 그 힘을 주는 장면에서는 정말 심장이 터질 것 같더군요. 많은 분들이 명장면으로 뽑아주시는 레코드방의 장면은 같이 숨을 참게 될 정도였어요.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까지 설렘을 잘 잡아낼 일인가 놀랐습니다. 영화는 낭만적인 유럽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풍경의 도움을 받기보다는 지극히 솔직 담백한 대화로 극을 풀어나가고 있거든요. 이들의 대화를 듣다 보면 그들과 함께 여행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어느새 종착점에 다다라 있습니다. 이들의 대화는 굉장히 진솔하고 담백해서 부담이 없고, 또 한없이 지적이라서 참 클래식한 매력도 느낄 수 있었어요. 이들의 대화가 영화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가 아닐까 싶네요. 이런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랑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구요.

이러한 설렘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의 만남이 단 하루로 제약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찰나의 선택과 즉흥적인 움직임으로 시작된 인연이 하룻밤 사이 돈독해지고 깊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헤어질 것을 알기에 더욱 몰입해서 볼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붙잡고 싶지만, 그렇지 않아서 더욱 낭만적으로 남은 모든 순간들. 그 순간들이 주는 여운은 정말 짙더군요. 사실 이 영화는 우연으로 시작된, 하나의 판타지와도 같은 사랑 이야기입니다. 낭만적인 유럽을 배경으로 한 남녀가 그리는 아름다운 동화 같은 분위기가 극을 장악하죠. 그래서 이 인연이 영원히 지속되었다는, 소위 완전한 해피 엔딩으로 끝이 났다면 그야말로 영화라서 가능한 비현실적인 사랑으로 취급받으며 영화의 여운이나 감동이 급감했을 거예요. 하지만 <비포 선라이즈>는 그런 실수를 범하지 않습니다. 이들의 아름답고 낭만적인 사랑과 아슬아슬한 재회의 기약이 이 영화를 더욱 찬란하게 만들지 않았나 싶네요. 그 당시 후속편의 존재를 모르고 봤다면 꽤나 앓았을 것 같네요.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는 영화의 보물이라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참 잘 어울리는 한 쌍의 커플을 연기했는데, 개인적으로 눈에 띈 점은 이들의 눈빛이네요.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너무나도 아름다웠거든요. 위에서 언급했던 레코드방 뿐 아니라 영화 내내 서로를 향한 눈빛은 낭만적이었으며, 관객들을 이 동화 같은 사랑 이야기에 빠뜨리기 충분했네요. 대사와 눈빛만으로 이렇게 강렬한 인상을 주는 사랑 영화가 얼마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참 대단한 영화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듭니다. 에단 호크는 진짜 잘생겼네요. 에단 호크가 아니었으면 이 제시라는 캐릭터를 누가 했을까 예상이 가지 않아요. 줄리 델피는 정말 최고였습니다. 이렇게 눈과 입이 이쁜 배우는 오랜만인 거 같아요. 각각 너무 멋있고 이쁜데 이렇게 케미까지 잘 어울리니 이거야 안 빠지려야 안 빠질 수가 없더군요. 

환상과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영화가 <비포 선라이즈>가 아닐까 싶어요. 너무 판타지에 가까운 영화나, 리얼리즘에 가까운 영화를 볼 때는 느낄 수 없는 로맨틱함과 애틋함이 공존하거든요. 늦게 보는 입장에서 속편을 바로 볼 수 있다는 부분이 좋게 느껴지기도, 아쉽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이 달콤 쌉싸름한 감정을 계속해서 음미하고 싶거든요.




★★★★☆
:영원히 붙잡고 싶지만 그렇지 않아서 더 낭만적인, 너와 함께 한 모든 순간.
매거진의 이전글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