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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서 Mar 09. 2021

<비포 선셋/Before Sunset>

만약 그날이 다시 온다면, 우리 서둘러 뒤돌지 말아요.

단편으로 끝내는 게 제일 효과적인 로맨스 영화의 속편임에도 여운이 줄기는커녕 더욱 늘어나니 할 말이 없네요. <비포 선셋>은 이야기의 틀만 조금 다르지 전작인 <비포 선라이즈>의 뼈대나 구조를 그대로 가져오고 있음에도 전작보다 더욱더 빠져들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비포 선라이즈>의 장면들로 영화를 시작하는 부분이 참 인상적이었는데, 애틋하고 아리더군요. 영화는 그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구구절절 설명하는 데 시간을 쏟아붓지 않습니다. 덕분에 둘의 재회가 극적으로 그려지지만은 않는데, <비포 선셋>이 추구하는 분위기에 잘 맞는 스타트였다고 생각이 드네요. 이전 리뷰에서 현실과 환상 사이를 오가는 작품이 바로 <비포 선라이즈>라고 했었는데, <비포 선셋>은 판타지보다 리얼리즘에 더욱 가까이 다가와 있는 작품입니다. 현실 속 이상주의라고 해야 하나요. 어쨌든 시간이 흘러갔으니까요.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설렘보다는 아픔과 애틋함이 많이 느껴집니다. 아주 묵묵하게 봤습니다. 제가 다 가슴이 미어지더라구요. 다만 이들에게서 풍기는, 살짝 다르지만 여전히 좋은 설렘의 향기는 남아있습니다. 이들의 사랑이 아직 유효하기 때문일까요.

9년이란 긴 시간이 흘렀지만 이러한 사랑스러운 감정이 남아있다는 점은 아주 좋게 봤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제시와 셀린만큼 몽글몽글한 커플이 또 없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와 동시에 성숙함도 더해집니다. <비포 선라이즈>에서 참 좋았던 게 눈빛이었는데, 여전히 몰래 보는 사랑스러운 눈빛은 남아있지만, 그 눈빛이 미묘하게 쓸쓸한 느낌이 들도록 변했다는 점이 참 아프게 만들더군요. 지적인 대사가 주는 매력도 유효합니다. 개인적으로 <비포 선셋>에서의 대사가 더 와닿았네요. 특히 '아픔이 없으면 추억이 아름다울 텐데'라는 대사는 정말 크게 울리네요. 1시간 20분 내내 담백한 대사로만 이루어져 있는데, 지루하기는커녕 너무 재밌네요.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 정말 신기합니다. 둘이 주고받는 대사와 함께 이어지는 롱테이크 촬영도 정말 예술입니다. 사랑을 쉽게 시작하고 쉽게 끝내는 시대에 바치는 이 커플의 밀도 높은 사랑. 그리고 이 사랑을 감싸는 듯한 셀린의 왈츠는 화룡점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9년이란 시간이 흐르면서 외모는 조금 늙고 바뀌었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두 사람이 있어서 영화가 더 빛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뜨겁게 사랑하기만 했던 젊은 날들을 보내고, 완성되지 못한 지난날들을 공유하며 서로 추억하고 아파하는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으로 다가오네요. 어찌 되었던 로맨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커플의 궁합이니까요. 조금 더 성숙한 대화들을 이끌어나가면서, 각 인물에게 깊게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셀린에게 정말 많이 이입했는데요, 저와 정말 비슷하더군요. 사랑에 대한 가치관부터 시작해서 하고픈 건 많지만 마음뿐이라는 걱정까지. 저의 모습을 그대로 보는 것 같아서 더욱 공감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에단 호크도 여전히 매력적이네요. 셀린을 바라보는 그 눈빛은 정말 잊을 수가 없습니다. 서로 완성되지 못한 그 사랑을 아쉬워하는 그 장면 하나하나들이 너무나 아프게 다가옵니다. 현실과 환상에서 현실 쪽으로 좀 넘어온 느낌이었어요.

비엔나에서 파리로 넘어온 아름다운 배경과, 훌륭한 노래의 덕을 본 영화기도 합니다. 물론 여느 영화 보단 이것들에 덜 의존하는 편이지만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네요. 개인적으로 그 유명한 센 강의 시퀀스는 참 환상적이더군요. 셀린이 노트르담 대성당을 언급할 때는 감회가 새롭네요. 언젠가 없어질 것이라는 대사가 예언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비포 선라이즈>가 사랑에 대한 설렘이 강했다면, <비포 선셋>은 미완성의 사랑이 주는 여운이 너무나 강력한 영화네요. 사람을 어떻게 여운에 빠뜨려 허우적대게 만드는지 아는 링클레이터 감독의 노련함이 돋보인 엔딩이 <비포 선셋>의 최고 명장면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
:만약 그날이 다시 온다면, 우리 서둘러 뒤돌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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