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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서 Mar 10. 2021

<버니/Bernie>

감정으로 용서하는 작금의 실상을 묵직하고 아슬아슬하게.

가끔가다 현대인들의 이면을 꿰뚫는 듯한 모습의 영화를 만나면 참 놀랍습니다. 그런 영화들은 관객들을 이리저리 굴려서 설득시켜놓은 다음에 묵직한 한방으로 자신도 그런 현대인 중 한 명이라는 씁쓸함을 너무나 잘 담아내거든요.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버니>도 그런 영화에 속해있었습니다. 이전부터 그래왔을지는 몰라도 개인적으로 느끼기엔 요즘 들어 감정이 앞서는 상황들이 많이 발생하는 것 같더군요. 필자라고 100퍼센트 이성적이고 객관적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감정을 앞세우는 상황을 잘 구별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다수죠. <버니>는 버니가 살인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에게 잘해주었으며, 피해자인 마조리가 평상시 자신들에게 못되게 굴었다는 이유로 버니를 변호해 주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선과 악을 자신들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의 모습이죠. 이러한 장면들을 통해서 작금의 현실을 꽤나 강렬하게 풍자하고 있습니다. 근데 재밌는 점은, 관객들을 마치 그 마을의 주민 중 한 명으로 만들어 버니의 편에 서게 만든다는 거예요. 살인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관객들로 하여금 버니는 선하고 그를 구속하려는 검사를 악당으로 보게 만들면서 정말 아차 싶게 만듭니다. 버니가 판결을 받기 직전까지 긴장하게 만들다가 자기반성을 하게 만드는, 영리한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는 굉장히 독특한 연출법을 표하고 있습니다. 실화를 풀어쓴 기사를 바탕으로 제작되어서 그런지 페이크 다큐 형식으로 연출되고 있는데요, 링클레이터 감독이 참 다양한 연출을 시도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줍니다. <보이후드>도 그렇고 참 색다른 시도들을 하는 것 같아요. 시간의 흐름도 잘 활용하는 느낌이고요. 아무튼 한 사람에 대한 다큐멘터리 같은 형식으로 흘러간다는 점은 참신하게 다가오긴 하지만, 시간이 흘러갈수록 점점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진짜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영화를 30분 남겨두고 시작하니, 1시간 10분 동안 정말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무엇보다 정극처럼 느껴지는 부분과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지는 부분의 간극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을 때가 있어서 굉장히 어색하게 느껴지는 지점이 있습니다. 극의 흐름이 어설프게 느껴지기도 하구요. 그래도 후반부는 나름 흥미롭게 흘러가서 괜찮긴 했습니다. 영화 분위기가 참 사랑스러운 거 같으면서도 찝찝하네요. 코미디물이라고 알려져 있긴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사회 풍자와 윤리적 딜레마를 꽤나 묵직하게 던져놓는 바람에 그렇게 웃을 수 있는 장면이 없습니다. 뻘하게 웃긴 장면은 있지만 코미디물을 기대하고 보신다면 졸거나, 아님 심각한 고민에 빠질 수 있을 것 같아요. 극적인 요소는 덜하지만 소소한 매력은 있는 작품입니다.

버니 역을 맡은 잭 블랙은 영화의 최대 강점이네요. <스쿨 오브 락>에서도 그렇지만 잭 블랙도 링클레이터 감독이랑 참 잘 맞는 것 같아요. 잭 블랙이야 워낙 코미디 배우로 잘 알려져 있지만, 이런 영화에서도 자연스럽게 연기를 잘 하더군요. 버니라는 캐릭터를 옹호할 수 있게 만드는 것도 잭 블랙의 역할이 크구요. 버니라는 캐릭터를 너무나 잘 살렸습니다. 다만 장르를 잭 블랙이 나오는 코미디로 알고 보신다면 굉장히 어색하거나 이질감이 드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어쨌든 코미디 영화에서의 임팩트가 강했던 것은 사실이니까요. 셜리 맥클레인도 캐릭터를 너무 잘 살렸더군요. 제가 버니였어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 정도로 악덕스러운 마조리라는 캐릭터를 너무 표현해냈습니다. 매튜 맥커너히는 말할 것도 없죠. 정의롭지만 악인처럼 느껴지는 대니 검사를 잘 소화해냅니다. 카우보이 모자를 쓴 스타일이 꽤나 익숙한 모습이라 재미있었네요.

감정만 앞서는 현대 사회를 꽤나 신랄하게 풍자하는 블랙코미디였습니다. 다름 신선하고 독특하게 다가온 연출법도 장점이구요. 다만 중간중간 헐거워지는 지점과, 덜어내지 못한 지루함이 조금은 아쉽게 작용한 영화였습니다. 감정에 앞서 범죄자들을 용서하는 현상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에 참 회의감을 느끼게 하네요.




★★★
:감정으로 용서하는 작금의 실상을 묵직하고 아슬아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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