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팬서 Mar 13. 2021

<보이후드/Boyhood>

우리도 모르게 찬란했던, 지나온 모든 순간들의 압축.

영화 같은 인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말 극적이고 흥미진진한 인생을 사는 사람에게 자주 쓰는 말이기도 하죠. 그럼 극적인 인생을 살지 않으면 그 사람의 삶은 영화 같지 않을까요. 링클레이터 감독의 역작, <보이후드>는 절대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영화 같은 인생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인생은 영화라고요.

<보이후드>는 제작 방식부터 기념비적인 영화입니다. 누군가의 인생 12년을 그대로 담아내는 영화라니, 상상만 해왔던 방식을 구현시킨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에게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네요. 그러면서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극영화로 만들어냈습니다. 연출 시도 하나만큼은 제가 봐왔던 감독 중에 탑이네요. <보이후드>는 스토리가 있는 극영화지만, 우리의 인생처럼 극적인 부분이 없고 굉장히 자연스럽게 흘러갑니다. 일상과 시간의 조각들의 연속이며, 마치 가족들이 직접 찍은 홈 비디오같이 촬영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굉장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어요. 우리도 모른 채 흘러간 우리의 지나온 모든 순간들은 너무나 찬란하고, 하나의 영화거든요. 극적인 클라이맥스는 없지만 우리의 인생도 그렇고, 우리의 존재 자체가 너무나 소중하니까요.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려주는 영화라서 잘 다가왔습니다.

링클레이터 답게 시간의 흐름을 무지 자연스럽게 연출해내며, 정말 잘 활용하더군요. 마치 우리의 12년을 2시간 40분으로 압축해서 본다면 <보이후드>가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연결 지점을 굳이 티 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해서, 정말 메이슨의 인생을 그대로 둘러보고 온 듯한 느낌이 강했어요. 그래서 여운이 더 남았습니다. 그러면서 변화하는 모든 것들도 잘 나타내는 편입니다. 시대에 맞는 상황, 문화, 소품 등을 너무나 잘 집어넣어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연출함과 동시에 관객들에게 시간의 흐름을 잘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고 있거든요. 이게 나름의 재미로도 작용하구요. 또 놀라웠던 점은 아이의 심리 묘사도 너무 잘 되어있다는 점입니다. 부모님의 이혼이라는 큰 사건뿐 아니라, 아이가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순간들로부터 오는 감정의 변화를 훌륭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어머니의 모습도 잘 묘사되어 있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도 같이 성장하니까요. 어머니의 인생과 대사들도 너무나 인상적으로 남았습니다. 지극히 개인의 인생이지만 매우 보편적인, 그래서 더욱 쉽게 이입할 수 있고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몰입해서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배우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영화의 흥미로운 점 중 하나입니다. 주인공인 메이슨이 훌쩍 자라있는 것을 보면 너무 신기하고, 복잡 미묘한 감정을 선사하더군요. 어린 나이에서부터 12년간 한 영화를 찍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엘라 콜트레인은 정말 대단한 배우라는 생각이 듭니다. 메이슨도 정말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제일 인상 깊었던 건 어머니와 아버지 역을 맡은 패트리샤 아퀘트와 에단 호크였네요. 특히 패트리샤 아퀘트는 너무 인상적이었는데, 어머니지만 인생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의 모습이 비칠 때도 있어서 너무 뭉클했습니다. 에단 호크도 너무 좋았네요. 특히 마지막쯤 클럽에서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눌 때 너무 멋있더군요. 에단 호크라는 배우는 정말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누나 역으로 나왔던 링클레이터 감독의 딸, 로렐라이 링클레이터도 좋았습니다. 개인의 요청으로 후반부 분량이 좀 줄어들었는데, 그래도 꽤나 인상적이었네요. 메이슨과의 관계도 너무 좋았구요.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이유도 있겠지만, 주연을 제외한 대부분의 출연진들을 텍사스 무명 배우들로 꾸린 게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이 듭니다. 영화라는 생각이 안 들게 만드는 아주 훌륭한 장치였다고 생각을 해요.

<보이후드>의 사운드트랙 선정도 너무 완벽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보이후드>의 주제곡이라고도 할 수 있는 패밀리 오브 더 이어의 'Hero'는 제 인생에서 잔잔하게 틀어놓고 싶을 정도로 너무 좋았어요. 이런 류의 음악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영화와 너무 잘 어울리는, 그리고 인생과 잘 어울리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네요. 그리고 이미 유명한 콜드플레이의 'Yellow'도 너무 좋았습니다.

저는 지금 <보이후드>의 엔딩 지점에 서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더욱 다가왔을지도 모르죠. 어리지도, 다 자라지도 않은 이 시점에서 <보이후드>는 제가 지나온 모든 순간들을 돌아보게 하면서, 미래를 바라보게 해줬습니다. 그 어떤 이유에서든 오랫동안 기억하고 애정할 영화가 아닐까 싶네요.




★★★★★
:우리도 모르게 찬란했던, 지나온 모든 순간들의 압축.
매거진의 이전글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