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팬서 Mar 14. 2021

<전혀아니다, 별로아니다, 가끔그렇다, 항상그렇다>

현실에 대한 비판보다 인상적인 묵묵하게 보내는 응원의 시선.

제목만으로 눈길이 가는 영화가 있습니다. 수많은 호평을 받은 엘리자 히트맨의 영화 <전혀아니다, 별로아니다, 가끔그렇다, 항상그렇다>도 제목이 길어서 눈여겨봤던 작품입니다. 독특한 제목이 갖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상당히 궁금해지거든요. 국내에서는 소리 소문 없이 VOD로 흘러들어갔는데, 넷플릭스에서 공개가 되었길래 냉큼 관람했어요. 왜 많은 호평을 받는지와, 이렇게 긴 제목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며 봤습니다.

영화는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어텀이 사촌 스카일라와 함께 떠난 낙태가 합법인 뉴욕에서의 여정을 보여주면서, 삭막하고 불편한 현실에 굉장히 날선 비판을 가하고 있습니다. 주제가 주제다 보니 여성 이야기를 주로 하고 있는데, 강렬하게 비판하지만 그리 래디컬 하게 풀어내지 않고 있다는 점이 나름의 장점입니다. 정말 끔찍한 현실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너무 많이 들었습니다. 쓰레기 같은 사람들은 넘쳐나는데 이에 대한 인식과 대처는 부족한 현실이니까요. 영화는 정적이고 무거운 연출을 통해 삭막한 분위기를 표출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구구절절한 설명을 하지 않고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데, 이러한 연출법과 분위기가 어텀이 겪고 있는 심정을 너무나 잘 와닿게 해줍니다. 또한 흡입력이 뛰어나구요. 영화가 처음에는 난해해 보이는데, 생각보다 평탄해서 이해하는데 어렵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결말이 조금 황당하게 느껴질 수는 있어도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만 알아채면 괜찮을 듯해요. 유명 독립영화 영화제인 선댄스 영화제에서 좋아할 만한 스타일이라고 느껴졌는데, 기존 선댄스 스타일을 좋아하신다면 좋게 볼 수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드네요.

<전혀아니다, 별로아니다, 가끔그렇다, 항상그렇다>라는 길고 독특한 제목이 갖고 있는 의미는 나름 단순했습니다. 극 중 어텀이 받는 4지선다형 설문의 대답들이었는데요. 뉴욕에서 온갖 고생을 해도 담담하게 참아왔던 어텀이 아이러니하게 이 설문조사에서 무너지고 맙니다. 그녀가 겪은 고통은 단순히 4가지 중 하나의 답으로만 정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거든요. 이외에도 상담 장면에서 잔잔하게 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는 생각보다 압도적이어서 관객들을 강력하게 휘감습니다. 정말 놀라운 힘이었어요.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어텀의 여정을 응원해 주는 듯한 묵묵한 카메라의 시선이었습니다. 그녀를 극적으로 촬영하기보다는 롱테이크와 클로즈업을 통해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그녀의 선택을 지켜보면서 응원하고 있습니다. 비록 어텀이 온갖 고통을 받았더라도 외롭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준 촬영이었어요. 살짝 로드 무비의 느낌도 나는데, 기존 로드 무비가 가지고 있는 특징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나름의 특이점입니다. 정말 힘든 여정을 같이 체험하게 해주기는 합니다.

영화는 효과적인 2인 극이라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그만큼 두 명의 배우가 주는 연기의 힘이 정말 강력한데요. 주인공인 어텀 역의 시드니 플래니건은 훌륭했습니다. 영화가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어텀이 겪는 온갖 일들의 고통을 고스란히 전해주는 심리묘사를 너무나 잘 해줬거든요. 그녀가 보여주는 눈빛과 표정만으로 극의 분위기가 완성되는 정말 강한 신인 배우가 또 한 명 나타난 것 같습니다. 시드니 플래니건과 그녀의 캐릭터 어텀도 너무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제일 인상적이었던 것은 탈리아 라이더와 그녀가 분한 인물인 스카일라였습니다. 어텀을 잘 서포트해 줄 뿐 아니라, 카메라와 더불어 어텀을 보듬어주고 응원해 주는, 진짜 친구 역할을 너무나 잘 해내고 있어요. 어텀만 고생했으면 정말 무겁고 처졌을 텐데, 스카일라가 동반자로 있어준 덕분에 극을 좀 환기시켜줌과 동시에 마음을 더욱 울린 것 같습니다. 저는 스카일라에게 계속 이입이 되더라구요. 카메라와 스카일라가 어텀을 아낌없이 응원해 주고 지지해 주고 있다는 점이 너무 좋았습니다. 탈리아 라이더도 마찬가지로 이 영화가 데뷔작인데, 이 두 배우는 자주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네요. 조연으로 나오는 테오도르 펠르랭도 나름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전혀아니다, 별로아니다, 가끔그렇다, 항상그렇다>는 극적이지도 않고, 좌충우돌한 사건도 없었으며,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는 클라이맥스도 없이 2-3일간의 간단한 여정만 보여주고 끝이 납니다. 체계적인 기승전결로 승부를 보는 영화는 아닌데, 이러한 요소가 영화가 의도하는 현실의 모습을 굉장히 차갑고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꽤나 인상적인 영화였습니다.




★★★☆
:현실에 대한 비판보다 인상적인 묵묵하게 보내는 응원의 시선.
매거진의 이전글 <보이후드/Boyhood>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