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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서 Mar 31. 2021

<밀러스 크로싱/Miller's Crossing>

끝끝내 소신이 확고한 인물로 정통 느와르를 우아하게 변주한다.

갱스터 영화 하면 바로 생각나는 작품들이 바로 <대부>나 <좋은 친구들> 같은 영화죠. 영화 역사에 있어서 한 획을 그은 작품이라고 봐도 될 정도의 훌륭하고 인지도 있는 갱스터 영화들인데, 이렇게 잘나가는 작품도 있는가 하면 나름 고평가를 받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몇몇 작품들도 있습니다. 코엔 형제의 <밀러스 크로싱>도 그런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얼핏 보면 전형적인 갱스터물이나 느와르 장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여러 하드보일드 작품들에서 보였던 특징들을 신나게 오마주하고 있거든요. 특정 장면들뿐 아니라 여러 대사들까지 이런 점들을 발견하는 것이 작품의 색다른 묘미입니다. 정통 느와르의 틀을 쓰고는 있지만 코엔답게 기존의 방식을 답습하지 않고 깔끔하고 우아하게 변주하고 있다는 것이 영화의 최대 장점입니다. 개인적으로 코엔이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주인공 톰의 캐릭터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말 똑똑한 머리를 가졌으며 굉장히 침착하고, 감정이 메말랐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냉철하지만 자신의 신념 하나는 꿋꿋이 지키는 이 캐릭터가 다소 평이할 수 있는 분위기를 완전히 반전시켜버립니다. 개인적으로 갱스터 영화에서 이런 캐릭터를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요. 특출한 싸움꾼은 아니지만 갖은 말들로 사건들을 다루어 해결하는 톰을 보면서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서사가 정말 치밀하고 촘촘한 영화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치밀한 정도가 엄청나서 인물의 이름이나 혹은 영화의 한 장면을 놓치면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데요. 극 자체는 난해하지 않으나 꼭 집중해서 봐야 하는 영화로 보입니다. 워낙 인물들이 많고 관계도 복잡스럽게 꼬여있기 때문이지요. 정말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궁금할 정도로 일을 꼬아놓지만 결국엔 정갈하게 마무리하는 모습을 보면 감탄만 나온달까요. 코엔 영화 중에 대사가 정말 많다고 느낄 정도로 극의 상당한 분량을 대사들로 채워 넣고 있는데요.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톰의 캐릭터도 그렇고, 필연적인 대사들이 있긴 하지만 안 그래도 복잡한 극을 더 정신없게 만들기도 하며 또 대사로만 사건을 설명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 보이네요. 그래도 코엔 형제 특유의 아기자기함이나 나름의 재미도 다른 영화에 비해서 적긴 하지만 종종 발견할 수 있어요.

결국 서로 간에 있어 얽히고설킨 관계는 대체 무엇인가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영화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온갖 배신이 판치는 권력 세상에서 통찰력이 뛰어나며 끝까지 자신의 소신을 지키는 캐릭터를 통해 사랑과 우정과 의리가 무엇인가에 대해 훌륭하게 고찰해내고 있거든요. 욕심과 이기심에 사로잡혀 갇혀있는 다른 이들에 비해 비교적 자유롭게 행동하는 톰은 아무래도 필연처럼 다가오는 우연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것이겠지요. 다소 생소한 배우들이 주연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1994년작 <작은 아씨들>이나 <유주얼 서스펙트>, <유전>등의 작품에 얼굴을 비췄지만 이때는 신인이었던 가브리엘 번의 연기가 참 좋았습니다. 마샤 게이 하든이 이 영화로 데뷔했으며, 정말 훌륭한 배우 중 하나인 스티브 부세미도 잠깐이나마 출연합니다. 코엔 형제랑은 아마 이때부터 같이 작품을 했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호평받는 것에 비해서는 살짝 아쉽게 다가오긴 했습니다. 꽤나 지루한 지점이 포착되기도 했고 아까 언급했듯이 설명을 너무 쉽게 하려는 듯한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럼에도 정통 느와르를 이토록 우아하게 변주할 수 있다는 코엔 형제의 능력에 감탄한 작품입니다.




★★★☆
:끝끝내 소신이 확고한 인물로 정통 느와르를 우아하게 변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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