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팬서 Mar 30. 2021

<아리조나 유괴 사건/Raising Arizona>

세상의 모든 평범하지 않은 이들을 위한 따뜻하고 희망찬 손길.

전 코엔 형제의 코미디를 정말 좋아합니다. 무거운 분위기만 다룰 줄만 알았던 이 감독들이 각 잡고 웃기니까 빠져나갈 구멍이 있을 리가 없죠. 제 인생에 있어서 손에 꼽을 정도로 재밌게 본(말 그대로 깔깔대며 본) 코미디 영화 중 하나가 코엔 형제가 연출한 <번 애프터 리딩>인데요. 작품성을 떠나 가장 만족하면서 봤던 코엔 형제의 작품이기도 하거든요.

코엔 형제의 초기작인(조엘 코엔 단독 연출, 에단 코엔은 각본만) <아리조나 유괴 사건>도 코미디의 탈을 쓰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코엔 형제의 코미디가 특별하게 다가오는 점은 단순한 슬랩스틱이나 말장난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시대상과 인간상을 너무나도 잘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배경이 담고 있는 요소, 그리고 또 이와 맞물리는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들이 기본적인 코미디 소재와 함께 작용해 웃기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밀도 높은 코미디가 완성되거든요. <아리조나 유괴 사건>은 굉장히 어리숙하고 미성숙한, 평범하고 싶지만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나름의 아픔을 겪고 있는 인물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코미디다 보니 조금은 과정 되었는데, 이런 비현실적이지만 괜히 마음이 가는 캐릭터들을 코엔답지 않은 따뜻한 손길로 보듬어주고 있는 것이 특징인데요. 한창 웃기다가 갑자기 따뜻한 위로가 들어오니 색다른 울림과 여운이 남기도 하네요. 위로에만 멈추지 않고 새로운 희망까지 불어넣어 주니, 실컷 웃고 나서 뭔가 힘을 얻는 듯한 느낌도 든달까요.

<아리조나 유괴 사건>은 정말 막무가내, 좌충우돌한 이야기의 연속으로 보이는 듯한 플롯으로 극을 전개해 나갑니다. 이러한 정신없는 사건들의 연속에서 나름의 스펙터클한 (그러면서 배꼽이 빠질듯한) 추격전이나 인물들이 겪는 아픔들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있는데요. 이렇게 보면 참 치밀하게 계산된 플롯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일을 한창 벌려놓지만 아주 깔끔하게 수습하고 마무리하거든요. 엔딩의 여운도 상당한 편이구요. 여기서 보여주는 코미디는 어찌 보면 뻔하고 낡은 코미디로 보일 수도 있는데, 이걸 살려주는 건 아무래도 매력적인 배우들의 열연 때문이겠죠. 니콜라스 케이지를 비롯해서 홀리 헌터, 존 굿맨, 프란시스 맥도먼드 등 익숙한 배우들이 보여주는 능글미 넘치는 연기는 이 코미디를 한껏 살려내는 힘을 불어넣어 주고 있습니다. 니콜라스 케이지와 홀리 헌터의 조합도 참 좋았고, 코엔 형제의 페르소나라고 볼 수 있는 존 굿맨과 프란시스 맥도먼드의 연기도 정말 훌륭했습니다. 랜들 텍스 코브의 캐릭터는 참 강렬했네요. 코엔 형제의 색깔이 가장 잘 드러난 인물인 것 같기도 하구요.

다만 코미디와 위로의 간극이 종종 벌어질 때가 있어 조금 애매하게 웃기는 장면들이 가끔씩 보이는데, 이러한 부분들이 때에 따라서는 정말 썰렁하게 느껴질 수도 있달까요. 주제가 주제다 보니 살짝 블랙코미디 같은 분위기도 내려고 했던 것 같은데, 전체적인 분위기는 밝고 코믹하게 유지하고 있어 그 사이 자리 잡은 애매한 지점이 조금은 아쉽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클리셰에 가깝게 마무리되는 모습도 보이구요. 엔딩 신의 여운은 뛰어나지만 너무 급하게 보여주는 감이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매력적인 코엔 형제의 초기작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블러드 심플>로 데뷔한 이후 그다음 작품을 바로 코미디로 찍는 입장에서 새로운 시도라고 볼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저는 나름 만족스러웠네요.




★★★☆
:세상의 모든 어리숙하고 평범하지 않은 이들을 위한, 유쾌하게 전하는 따뜻하고 희망찬 손길.
매거진의 이전글 <마스터/The Master>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