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창작은 세상 그 자체라는 예술에서 비롯된다.
개인적으로 코엔 형제의 1991년작 <바톤 핑크>를 코엔 형제의 20세기 필모그래피 중 최고로 꼽고 싶습니다. 코엔 형제 커리어를 통틀어서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인사이드 르윈>와 함께 탑 3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인상 깊게 다가왔던 작품이었습니다. 코엔 형제가 초기작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스타일이 총 집약되었으면서도 코엔 형제가 나중에 보여줄 연출 스타일을 미리 보여준 듯한 느낌의 영화였네요.
영화는 꽤나 난해하게 다가옵니다. 워낙 난해하다는 소문이 많다 보니 이번에는 집중을 해서 봤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더군요. 일단 영화는 창작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예술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죠. 현실의 삶을 떼어내고 재조립하고 재배치한 것이 바로 예술입니다. 눈과 귀를 닫아놓고서는 아무것도 성취해낼 수가 없지요. 결국 창작은 현실이라는 예술로부터 비롯되는 것이거든요. 머릿속의 창작보다 현실 그 자체가 더 예술적이라면, 창작가는 무엇을 바라보아야 할까요. 이러한 메시지가 참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들었던 작품입니다. 그와 동시에 1940년대를 비롯해 전반적인 할리우드에 대한 비판도 들어가 있어요. 진정으로 예술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돈만 바로 보는 작자들로 가득한 위선적인 할리우드에 대한 비판이 상당히 영리하게 들어가 있어서 이걸 파헤치는 맛도 있었습니다. 영화를 다룬 영화 중에서 정말 최고가 아닐까 싶기도 했네요.
코엔 형제 영화 중에서도 상징적인 요소들이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게 대충 던져놓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해석을 할 수 있게 만들어서 정말 재미가 있었는데요. 개인적으로 엔딩에서 보여주었던 사진 속 여자와 똑같은 포즈를 취하는 여성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네요. 나름의 해석을 해보자면 이 엔딩이 앞서 언급한 창작은 현실 세상으로부터 온다는 메시지를 압축해서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예술을 창작할 때 자신을 가두는 것이 아니라 실제 세상을 봐야 하는 것이죠. 이게 정말 와닿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찰리가 주었던 상자도 나름 생각을 하게 만들었는데, 오드리의 머리로 추정되는 이 상자는 아무래도 잃어버린 핑크의 감성, 혹은 끝없는 영감 그 자체일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핑크는 이 상자에 대한 알 수 없는 갈망으로 자신이 역작이라고 생각하는 작품을 써 내려갔으니까요. 핑크는 어렴풋이 추측이 가지만 여전히 물음표로 가득한 상자를 열어보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물음표야말로 영원한 영감일 테니 말이지요.
존 터투로가 열연한 바톤 핑크라는 캐릭터 참 매력적이었습니다. 존 터투로가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시몬스 요원이었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는데, 처음에는 <다크나이트>와 <앤트맨>에서 조연 역할을 톡톡히 했던 데이빗 다스트말치안이 살짝 보인다 싶기도 하다가 시몬스 요원의 얼굴이란 걸 알고 나니 완전 달라 보이기도 하네요. 아무튼 냉소적이고 줏대 있어 보이는 촉망 받는 신인 극작가가 오직 자본주의로만 돌아가는 할리우드에서 압박받고 피폐해지는 과정을 정말 잘 연기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존 굿맨이 아마 <바톤 핑크>의 정수가 아닐까 싶네요. 그만큼 나름의 반전을 주기도 하는 캐릭터고, 핑크와의 관계도 정말 필연적이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달까요. 존 굿맨이 총을 들고 쫓아오는 신은 정말 역대급입니다. 핑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인물들이 정말 할리우드의 어두운 면들을 정말 잘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알코올 중독자에 비서가 대신 작품을 쓰게 한 유명 작가 메이휴부터 돈밖에 모르는 사장까지. 이런 모습을 보면 코엔 형제가 단단히 맘먹고 비판했다는 생각도 드네요.
개인적으로 좋았던 것은 고요하고 신비하면서 오묘한 분위기였습니다. 살짝 기괴하기도 한 분위기가 유지되는데, 이후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느껴지는 긴장감도 보인달까요. 개인적으로 호텔의 그 알 수 없는 느낌(약간 공포스러우면서도 신비로운)을 너무나 잘 묘사해서 좋았습니다. 또 촬영이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을 했는데, 크레딧을 보니 로저 디킨스가 촬영했더군요. 정말 남다르긴 합니다.
정말 좋게 본, 코엔 형제의 역작 중 하나입니다. 난해한 영화였지만 정말 만족스러웠던 몇 안 되는 영화 중 하나였습니다. 이런 느낌의 영화를 한 번 더 만들어줬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소망도 있네요.
★★★★★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선 아무것도 성취해낼 수 없음을, 모든 창작은 세상 그 자체라는 예술에서 비롯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