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의 역사를 회고하며 부패가 만연한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를 제시한다.
개인적으로 국내 사극을 즐겨보는 편은 아닙니다. 흥미로운 소재를 차용해 판타지 같은 영화로 만들거나 역사를 왜곡하고, 혹은 흔히들 말하는 국뽕만 채우려는 영화들이 수두룩하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거기서 다 거기라 솔직히 좀 지치는 감도 없지 않아 있구요. 다만 이준익 감독의 작품은 어느 정도 믿고 봅니다. 비록 <왕의 남자>나 <사도> 등을 보지는 않았지만 <동주>나 <박열>같은 영화를 꽤나 재밌게 관람했었거든요.
<자산어보>도 그런 의미에서 나름 기대를 하고 보았던 작품입니다. <동주>에서 아주 탁월하게 사용했다고 생각되는 흑백을 가지고 정약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요. 정약전이 유배를 가는 시기가 조선의 몰락이 시작되는 시기라 어떤 이야기를 흘러갈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이상과는 거리감이 있는, 부패한 사회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 말이죠. <자산어보>는 이러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긴 하지만 흑백의 화면에도 불구하고 어둡고 우울하게 묘사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의외로 훈훈하게 흘러가며 나름의 재미까지 갖추고 있어서, 마음 단단히 먹지 않아도 나름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작품이었네요. 그럼에도 이준익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바는 충분히 전달됩니다. 지금과 다를 바 없는 부패하고 썩은 내가 나는 사회를 흑백의 터치로 돌아보면서,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고, 또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거든요. 물고기를 잡을 줄 알지만 글을 모르는 창대나 글을 알지만 물고기를 잡을 줄 모르는 약전이나 다를 것이 없는 세상. 그러한 세상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세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한 진정한 배움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어요. 우리가 출세를 위해서 하는 공부는 진정한 앎이 아니지요. 순수한 호기심을 가지고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것이 진정한 배움일 텐데, 그렇지 않으니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지도요. 다만 돌림노래처럼 들리는 이러한 메시지들이 조금은 익숙하게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설경구와 변요한의 케미가 극의 활력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워낙 베테랑 배우인 설경구가 극을 잔잔하게 이끌어나가고, 변요한이 그 뒤에서 강한 힘을 보여주고 있거든요. 약전과 창대가 만나고 서로 배우며 나중에는 헤어짐까지 그 과정을 너무나 잘 묘사하고 있는 두 배우입니다. 명품 조연으로 떠오르는 이정은 배우도 적은 역할이지만 나름의 역할을 톡톡하게 해주고, 민도희 배우도 인상적으로 남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우정 출연이 상당히 많아서 놀랐는데, 조연으로 봐도 될 정도의 분량을 가진 조우진과 류승룡이 우정 출연했다는 것이 놀라웠네요. 그럼에도 나름의 열연을 하는데, 그래서 더 인상 깊었습니다. 특히 정약용 역을 맡은 류승룡이 색다르게 다가왔어요. 그리고 김의성부터 동방우, 윤경호까지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우정 출연으로 극을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네요.
다만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것은 자산어보를 편찬하면서 보여줄 만한 여러 소재들을 다 쓰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물론 어느 정도 보여주기는 하지만, 그저 스쳐 지나가고 있는데요. 이를 사용하지 않고도 후반부에서 색다름을 보여주면 되는데, 영화의 후반부는 조금 루즈하게 다가올뿐더러 여느 사극에서도 볼 수 있는 다소 평범한 장면들이라고 생각이 되거든요. <자산어보>만의 독창적인 흥미는 초중반부의 흑산도에서만 이루어지고, 그 섬을 벗어난 후반부에서부터는 조금 익숙하고도 기시감이 느껴지는 메시지들로 가득 차 있는 느낌이랄까요. 좀만 더 <자산어보>만의 매력을 채워 넣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그럼에도 <자산어보>는 수작인 사극이자 이준익 감독의 필모 중에서도 인상적으로 남은 작품 중 하나였습니다. 이제는 어떤 사극을 다음에 보여줄까 더 기대되게 만드는 작품이었네요.
★★★☆
:흑백의 역사를 회고하며 부패가 만연한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의 방향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