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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서 Apr 08. 2021

<더 파더/The Father>

세월이란 바람 앞에서 기어코 떨어지고 마는 기억의 잎사귀.

보통 이맘때쯤이면 아카데미는 물론 여러 시상식들이 마무리되고도 남지만 코로나19로 인해서 많이 밀린 상태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레 아카데미에서 주목받는 작품들도 뒤늦게 공개가 되었는데요. 3월 초 <미나리>가 개봉했고, 4월에는 <노매드랜드>,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까지 여러 작품들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리뷰할 <더 파더>도 그런 작품 중 하나였구요.

<더 파더>는 치매를 앓고 있는 안소니와 그의 딸 앤의 이야기를 그린다는 것 외에는 많은 정보를 알고 관람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충 치매를 앓고 있는 환자와 힘겨워하는 보호자의 관계를 그려낼 것이라고 예상을 했지요. 하지만 <더 파더>는 굉장히 신선한 방식으로 극을 풀어내고 있습니다. 보통 영화에서 치매라는 소재를 다룰 때 3자의 입장에서 환자를 바라봐 어떤 증상을 앓고 있는지 한눈에 볼 수 있게 하는 게 정석입니다. 다만 <더 파더>는 치매를 앓고 있는 안소니의 시선으로 극을 전개해나가 관객들로 하여금 치매라는 병을 고스란히 체험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야기 자체보다는 인간의 내면을 어떻게 시각화할 것인가에 대해 상당히 많이 고민한 흔적이 보인달까요. 그리고 그 결과물이 꽤나 훌륭하게 드러나기도 하구요. 또한 영화는 치밀한 플롯을 고밀도의 화법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사를 복잡하고 혼란스럽게 꼬아놓을 뿐 아니라 환상으로 추정되는 신들까지 집어넣어 안소니가 느끼는 고통과 무력감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이를 굳이 시간 순으로 재배열하거나, 혹은 진위 여부를 가려내는 게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는 않네요. 다만 이러한 장면들을 나열해놓는 바람에 혼란스럽거나 지루하게 느껴지는 지점도 존재한다는 점이 아쉽게 다가온달까요.

보고 나면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상당히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자신의 전성기가 지나고 죽음을 앞두고 살아가는 노년 시절에 치매라는 난치병까지 찾아오며 철저하게 무너지는 안소니의 모습이 참 처절하게 느껴졌네요. 자신이 가꾸어 피워놓았던 소중한 잎사귀가 세월, 시간의 흐름이라는 바람에 의해 무기력하게 떨어지는 모습을 너무나 잘 플롯화해내고 있거든요. 안소니는 또한 하나의 가부장적인 환경에서 아버지라는 역할을 해내고 싶어 하는 모습과 자신의 집이나 시계에 집착하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요. 그렇지 못하면 상당히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죠. 그래야만 자신의 세계가 인정받는다고 생각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어쨌든 물러날 시간은 다가오니, 일종의 병으로 인해 아기로 회귀해버리는 모습이 참 측은하게 다가오기도 하네요. 삶이 뭔지, 시간이 뭔지에 대해서 고심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안소니 홉킨스야 전설적인 배우이지만 <더 파더>에서 다시 한번 탁월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수십 년 전부터 명배우였음에도 볼 때마다 놀라운 연기를 선사하는 게 참 대단하고 존경스러울 정도이네요. 안소니가 겪는 혼란스러운 상황들을 받아들이는 공포감과 무기력함이 아주 생생합니다. 삶의 막바지에서 자신을 옥죄는 여러 사건들을 겪는 순간, 그 지점을 완벽하게 소화해내고 있거든요. 이런 훌륭한 연기를 올리비아 콜맨을 비롯한 여러 조연 배우들이 안정적으로 서포트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안소니의 시점으로 영화가 진행된다고 해도 주위 사람들의 고통 또한 다뤄야 하는데, 그 역할을 아주 탁월하게 해내는 올리비아 콜맨이네요. 개인적으로 안소니보다 그의 딸 앤에게 더 마음이 가더군요. 드라마 <셜록 홈즈>에서 마이크로프트 홈즈로 유명한 마크 거티스 뿐 아니라 얼마 전 제시 아이젠버그와 호흡을 맞춘 <비바리움>에서 주연을 맡았던 이모전 푸츠까지 주연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에 훌륭하게 조응하고 있습니다.

좋게 보았습니다. 단순하게 잔잔한 드라마가 아니라 나름의 서스펜스도 찾아볼 수 있어서 더욱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었던 영화였네요.




★★★★
:세월이란 바람 앞에서 기어코 떨어지고 마는 기억의 잎사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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