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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서 Apr 12. 2021

<낙원의 밤/Night in Paradise>

스타일과 피칠갑만으로는 메꿔지지 않는 지점들이 숱하게 존재한다.

정말 놀랍게도, 박훈정 감독의 최고작이라고 불리며 현재까지도 한국 느와르의 전설로 치부되는 <신세계>를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영화의 대사들과 여기서 파생된 여러 드립들은 숱하게 들어봤지만, 정작 본 영화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보지 않았는데요. 국내 영화를 잘 안 보는 편이기도 하지만 언제 볼지 타이밍을 잡지 못해서 그러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 보니, 어느새 넷플릭스에서 박훈정 감독의 새로운 느와르가 공개되었는데요. <신세계>는 이 영화보다 더 나은가 궁금해지게 만든 영화, <낙원의 밤>입니다.


국내 느와르는 많이 안 봤어도, 해외 느와르 무비는 많이 관람했던지라 <낙원의 밤>을 보면서 같은 장르를 다룸에 있어 국내와 해외의 태도의 차이점을 위주로 관람했던 것 같습니다. 확실한 건 외국 느와르와 차별화된, 국내 느와르만의 특별한 점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 점이 꼭 장점만으로 작용하지는 않습니다. 특별한 점이 뭔가 보이기는 해도 이것이 극의 완성도를 바꿀 만큼 중요한 요소는 아니니까요. 또한 박훈정 감독이 <마녀>에서 보여주었던 것처럼 외국 느낌이 나는 소품들(여기에서는 총격 액션이 되겠네요)을 사용하고 있어서 이 특징들이 뚜렷하게 드러나지는 않고 있네요. 다만 개인적으로 <마녀>와 같은 박훈정 감독의 국내를 배경으로 한 스타일리시한 액션은 꽤나 좋게 보는 편인데, 여기서 보여줬던 마지막 액션도 역시나 만족스러웠습니다. 전체적인 카메라 워킹도 아주 세련되었고, 나름 화끈한 액션도 자주 선보여주는 편이구요.


다만 이 감독만의 스타일과 피칠갑의 액션만으로는 메꿔지지 않는 지점이 한둘이 아닙니다. 일단 느낌 있어 보이는 분위기 자체도 겉치레에 불과합니다. 이 겉치레도 굉장히 낡아 보이는데, 술과 담배, 그리고 욕설이 답니다. 10년 전에나 통했던 요소들을 그대로 끌고 와서 멋을 부리니, 굉장히 촌스러워 보이더군요. 느와르 하면 생각나는 것들은 이것밖에 없지만, 더 이상 저 소재들만으로 감당하기에는 힘들지요. 하지만 <낙원의 밤>은 그 이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박훈정 감독이 느와르로 한 번 더 비상하려면 새로움이 필요해 보이네요.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가장 큰 문제점은 클리셰로 범벅이 된 서사입니다. 일단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벌어지는 사건으로부터 어떻게 이야기가 흘러갈지 훤하게 보이는데요. 단 하나의 오차도 없이 예상한 대로 전개되더군요. 캐릭터가 전부 예상한 대로 행동하다 보니 긴장감은커녕 굉장히 지루하고 답답하며 짜증까지 납니다. 결국엔 똑같은 이야기였네요. 특별함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캐릭터 설정 자체도 굉장히 아쉬웠습니다. 일단 주인공 태구부터 상당히 기시감이 느껴지는 캐릭터였는데요. 재연이라는 캐릭터도 뭔가 심심하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봤을 때는 엄태구나 전여빈 배우 모두 연기력은 좋았지만 캐릭터가 받쳐주지 못하니 허공에다 주먹질을 하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네요. 특히 전여빈 배우의 카리스마는 훌륭했는데, 그 카리스마에 비해 캐릭터가 보여준 퍼포먼스는 조금 아쉽게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또한 캐릭터에 대한 포커스를 제대로 배분하지 못하는데, 분명 태구가 주인공처럼 보였으나 어느새 재연이 메인 플롯에 끼어든 듯한 느낌입니다. 주인공을 두 명을 넣을 거라면 초반부터 틀을 잡아놨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상당히 혼란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요. 때문에 각 캐릭터가 나오는 장면들이 상당히 루즈하게 느껴지는데, 이를 살려내는 것이 마 이사 역을 맡은 차승원입니다. 어쩌면 제일 뻔하게 느껴질 수 있는 악역 캐릭터였는데, 나름 능글맞은 연기로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살려내더군요. 박호산 배우도 악질 중의 악질 연기를 잘 해냈고, 이기영이나 현봉식 등도 인상 깊었는데요. 전체적으로 뭔가 애매한 느낌을 받긴 했습니다.


느와르에 로맨스적인 분위기를 섞으려는 노력은 보이지만 굉장히 겉도는 듯하며, 한국 영화의 고질적인 문제라고 생각되는 어색하고 작위적인 대사는 여전히 아쉽게 남고 있습니다. 또한 무의미한, 답답하게만 느껴지는 몇몇 시퀀스들도 존재하구요. 다만 느와르라는 장르 특유의 매력은 나름 살아있는 편이니, 클리셰는 범벅이라도 유혈낭자한 느와르물을 좋아하신다면 나쁘게 보시지는 않을 것 같은 영화입니다. 




★★☆
:스타일과 피칠갑만으로는 메꿔지지 않는 지점들이 숱하게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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