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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서 Apr 16. 2021

<노매드랜드/Nomadland>

관조적 태도와 깊은 응시로 고양해낸 노매드란 단어의 재정의.

개봉하는 영화를 기다리다 보면 소재가 무엇인지는 알지만 이를 어떻게 그려낼지 도저히 감이 안 잡힐 때가 있습니다. 저에겐 클로이 자오 감독이 연출한 <노매드랜드>가 그러했는데요. 제목에 유목민인 노매드가 들어가는 걸 봐서 떠돌며 사는 유랑민들의 이야기를 그리겠거니 했습니다. 수상 소식도 많이 들려와서 기대를 걸었던 작품이었는데요. 기대 이상으로 좋았던 영화였습니다.

일단 제목 <노매드랜드>의 노매드는 유목민, 유랑자이라는 뜻입니다. 다만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것을 봐선 전통적인 의미의 유목민, 유랑자를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을 했는데요. 예상대로, <노매드랜드>는 노매드라는 단어를 재정의하고 있습니다. 기존 가축들을 이끌고 옮겨 살던 이들을 부르는 의미에서, 21세기에 와서도 자유롭게 이동하며 살아가는 이들로 말이지요. 실제로 최근 들어서 노매드라는 단어가 이렇게 통용되고 있기도 하구요. <노매드랜드>는 단순한 노매드가 아니라 사회 문제(여기서는 경제 문제가 가장 커 보입니다)로 인해서 떠돌이 삶을 살게 된 이들을 바라보고 있는데요. 이들을 상당히 관조적인 태도와 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여운을 깊게 느끼게 해줄 뿐 아니라 노매드라는 단어를 이 영화만의 이러한 방식으로 재정의하고 있거든요. 노매드뿐 아니라 집이라는 단어도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집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살아가고, 사랑하고, 또 소중히 여기는 것 그 자체라고요. 이렇게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스쳐 지나가듯이, 정말 체험하게 하는 듯한 연출이 참 좋았습니다.

현대인의 아픔을 담아내는 솜씨가 남다르더군요. 여기서는 다들 무언가를 잃은, 상실의 아픔을 겪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요. 이들이 이러한 이별의 고통을 맞이하는 방식이 참 좋았습니다.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 잠시 떠나는 것뿐이며 언젠가 만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고가 정말 인상적이었네요. 상실을 겪은 이들이 떠나는 여정을 아주 잘 담아내고 있기도 합니다. 카메라가 응원의 손길도, 괴롭힘도 들이밀지 않고 그저 여정 자체를 바라보는 것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소 쓸쓸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들이 위안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더라구요. 참 여러모로 마음을 울리는 영화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영화의 촬영과 음악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약간은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이 들게 만드는, 촬영과 배우들의 시선이 논픽션에 가깝다고 느껴질 정도였는데요. 이게 참 현실적으로 다가오게 만들기도 하더군요. 상황에 맞지 않게 정말 아름답고 광활한 풍경을 담아내는 촬영도 더욱 쓸쓸하게 만들기도 했구요. 마음을 통과하는 듯한 선율의 음악도 정말 좋았습니다. 왜 음악상에 노미네이트가 되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네요.

프란시스 맥도먼드는 영화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노매드 그 자체인 것 같습니다. 그녀의 눈빛과 표정에서 오는 감정이 너무나도 강렬해서 노매드가 어떤 생활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고스란히 전해지더라구요. 영화는 정말 노매드의 삶을 정말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이를 잘 구현해내는 프란시스 맥도먼드의 연기 덕분에 더욱 살아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일정 기간 동안 노매드로 살았다고 하니, 열정이 느껴진달까요. 이 영화를 끌고가는 강력한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하구요. 엔딩 크레딧을 보고 있자니 놀라운 점이 하나 눈에 들어왔습니다. 영화에 등장했던 수많은 노매드들이 배우가 아니라 실제 노매드들이었다는 점인데요. 조연급 분량을 가진 데이브만 데이빗 스트라탄이 연기했고 나머지는 전부 실제 떠돌이 생활을 하는 이들입니다. 이러한 배우 기용이 더 인상적으로 다가오게 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노매드들 중 스완키는 눈빛이 남다르기도 했고, 참 훌륭한 캐릭터라는 생각을 했는데, 진짜 노매드였다니 정말 놀라웠네요. 이 점이 촬영과 더불어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아주 잘 허물어내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더욱 이입할 수 있었구요.

정말 좋았습니다. 꽤나 잔잔하긴 했지만 아주 깊어서 여운이 오래가는 영화였습니다. 올해 개봉작 중 엄청 만족했다 싶은 영화는 <소울>밖에 없었는데, 한 편이 더 추가된 것 같네요. 곱씹어보다 만점으로 올릴 의향도 있습니다.




★★★★☆
:관조적 태도와 깊은 응시로 고양해낸 노매드란 단어의 재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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