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팬서 Apr 17. 2021

<서복/Seobok>

살지 못하는 자와 죽지 못하는 자 사이의 본원적 고민을 던지기만.

코로나 사태가 지속되면서 시들시들해진 극장계에서 가장 보기 힘들었던 종류의 영화는 의외로 한국 대작들이었습니다. 물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도 자취를 감추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각종 OTT 서비스와 동시 개봉을 하는 등의 대책을 강구했던 반면 국내에선 이렇다 할 메인 OTT 서비스가 없었으니까요. 기껏 해봐야 넷플릭스에게 배급을 맡기는게 다였을 텐데, 이 방법도 한계가 있었을 것이구요. 그러다 지난 12월 개봉 예정이었다 개봉일자가 밀린 <서복>이 티빙과 함께 극장 동시 공개를 선언했습니다. 이를 계기를 한국 대작들이 많이 보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여하튼 <서복>은 복제인간이라는, 기존에 충무로에서 보기 힘들었던 소재를 다루고 있습니다. <승리호> 때부터 느끼는 거지만 이제 한국도 할리우드에서만 볼 수 있었던 이야기들을 풀어낼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복제인간이라는 소재는 굉장히 흥미롭기도 하고, 할 수 있는 이야기도 많아서 좋은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다만, <서복>의 시도 자체는 좋지만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여러 영화들의 모방에서 그친다는 점이 많이 아쉽게 다가옵니다. 서사에서 느껴지는 독창성이 너무나도 부족하거든요. 복제인간이란 것을 우리나라는 처음 제작하는 거지만, 관객들은 많이 만나본, 어쩌면 친숙하게 다가오기도 하는 소재입니다. 이러한 소재를 다루는 방법이 이전 영화들에서 선보였던 익숙한 요소들을 이리저리 붙여놓는 것이라면, 그건 실패한 연출이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복제인간을 다룬다는 것은 생명윤리적 화두를 던지겠다는 말이랑 같습니다. 복제인간이 가진 가장 매력적인 요소이기도 하니까요. <서복>은 이러한 윤리적 딜레마에 관한 고민을 끊임없이 던지면서 철학적인 면모를 돋보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고민과 질문이 영화를 겉돌기만 하고 확실한 무언가를 보여주지를 못하네요. 꺼낸 물음표를 확실한 느낌표로 바꾸지 못한달까요. 물론 이런 영화에 꼭 답이 있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질문으로 끝나도, 혹은 확실한 의견을 표출하며 끝나도 상관은 없지만, 적어도 영화만의 확고한 스타일을 내세워야 하는데요. <서복>은 이도 저도 아닌, 너무 어중간한 답만 내세워 대충 끝내려는 듯한 모습이 너무 강하더군요. 또 이 딜레마도 적어도 백 번은 본 듯한, 굉장히 전형적이고 익숙한 메시지라서 그렇게 색다른 장점으로 다가오지도 않았네요.

메시지도 자체도 부족했지만, 이러한 메시지에만 집중했다는 점이 참 아쉽습니다. 복제인간을 다루는 것에 있어서 일종의 압박감이 존재했던 것인지, 혹은 편협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인지, 너무 윤리적 메시지에만 갇혀있는 듯한 느낌이 많이 들더라구요. 서복의 설정을 보면 충분히 흥미로운 장면들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 보이기도 하는데, 메시지(그것도 애매한)에 가려 장점이 될 수 있는 요소들이 빛을 발하지 못합니다. 그나마 서복의 능력인 염력이 종종 볼거리가 되어주기도 하는데, 이것도 갈수록 너무 뻔하게 다가오기도 하네요. 총기 액션도 뭔가 색다르게 느껴지지도 않았구요. 개인적으로 연출도 꽤나 아쉽게 다가왔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상당히 지루하고 피곤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아무래도 많은 플래시백을 사용한다는 점이 피로감을 증폭시키지 않았나 싶습니다. 시대에 뒤떨어진, 낡아 보이는 이 연출 때문에 영화가 정말 밋밋하게 느껴지더군요.

소재와 더불어 영화의 최대 기대 포인트가 아마 배우들이 아니었나 합니다. 개인적으로 배우를 보고 영화를 관람하러 가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박보검과 공유의 만남은 나름 관심을 가지기에 충분했지요. 결과적으로 둘의 연기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공유는 특유의 멋을 잘 살렸고, 박보검도 본인만의 장점인 순수한 눈빛을 잘 활용했네요. 다만 이 둘이 열연한 캐릭터가 너무나 매력이 없었습니다. 굉장히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두 인물이었는데요. 일단 설정부터 기시감이 느껴질뿐더러, 극 중 내뱉는 대사들마저 아쉽게 다가왔습니다. 대사가 너무나도 작위적이고 딱딱해서, 도저히 몰입이 안 되었네요. 항상 국내 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도대체 누가 저 상황에서 저런 말을 내뱉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서복은 계속해서 질문을 하는데, 이게 처음엔 순수한 복제인간이란 캐릭터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쳐도, 그 이후부터는 조금 짜증이 나기도 한달까요. 그리고 이 질문에 답해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넘겨버리는 바람에 전혀 쓸모없는 질문들로 가득 찬 영화였습니다.

솔직히 기대를 많이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나름의 재미는 주지 않을까 싶었는데 꽤나 아쉽게 다가온 영화였네요. 복제인간이란 소재 자체는 흥미롭지만 이 소재를 풀어내는 과정에 있어서 특별함을 찾아내기에는 조금 부족한 영화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
:살지 못하는 자와 죽지 못하는 자 사이의 본원적 고민을 끝내 느낌표로 만들지 못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노매드랜드/Nomadland>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