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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서 Apr 18. 2021

<플란다스의 개>

유쾌하고 산뜻하게만 보이는 세상살이는 언제나 처연한 비극.

처음 이 영화를 만났을 때에는 이제는 한국 최고의 거장이 된 봉준호 감독의 장편 영화 데뷔작이라는 것 정도만 알았습니다. 포스터만 봐서는 약간은 밝고 쾌활한, 가족 영화의 느낌으로 전개되지 않을까 했는데요. 역시 봉 감독님은 그렇게 뻔한 인물은 아니더군요.

일단 가장 놀라웠던 점은 이 시절 봉준호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지금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점입니다. 개인적으로 봉준호 감독은 국내에서 사회 풍자를 아주 유쾌한 듯하면서 처연하게 해내는 능력이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장편 데뷔작에서 이런 모습을 보였다는 게, 정말 떡잎부터 다른 사람이구나를 알게 해준달까요. 영화는 언뜻 보면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작은 소동을 그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회의 모습을 너무나도 잘 투영해내고 있습니다. 이를 꽤나 귀엽고 산뜻하게 풀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여오는 긴장감과 서늘함을 곁들여서 완급조절을 아주 뛰어나게 해내는데요. 인상적인 오프닝부터 해서 관객들을 러닝타임 내내 영화에 집중하게 만드는 흡입력이 정말 훌륭합니다. 영화가 전체적으로 희극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비극에 가깝다고 봅니다. 이게 세상살이라는 듯한 봉준호 감독님의 말이 전해지네요. 선한 일을 한 자는 피해를 입고, 악한 일을 한 자는 성공하는 사회의 부조리함과 아이러니를 아주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점이 왜 봉테일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지 알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영화가 2000년 개봉이니, 아마 1999년도에 촬영을 했을 가능성이 높은데요. 그 시기의 여러 디테일들이 너무 잘 들어가 있어서 이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비록 제가 1999년도에 살아보지는 않았지만) 21세기 초반에 느낄 수 있었던 특유의 그 촌스러움이 오히려 사랑스럽게 다가왔네요.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그 당시 이 영화가 흥행을 못했던 이유 중 하나가 이러한 매력이 느껴지지 않아서 그렇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그나저나 봉준호 감독은 이 영화를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하는데, 이 영화는 봉준호 감독 필모 중에서 꿇릴게 하나 없다고 생각이 드네요. 물론 초기작이라서 아쉬운 부분이 보이기는 하지만요.

<플란다스의 개>를 보면서 이성재와 배두나의 젊은 시절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은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2002년 <공공의 적> 이후로 작품 선택이 별로 좋지 못한 이성재가 주연으로 나오는데, 훌륭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그가 연기한 캐릭터도 인상적이었구요. 그래도 이 영화의 가장 사랑스러운 점은 배두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21년 전이니 20살 때의 모습인데, 굉장히 앳되고 귀엽더군요. 배두나 배우를 영화에서 그렇게 많이 만난 것은 아닌데, 확실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배우라고 생각이 듭니다. <플란다스의 개>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이었네요. 영화가 보여주는 사회 풍자 요소들이 캐릭터 안에 너무나 잘 녹아들어 있어서, 캐릭터의 역할이 확실하게 잡혀있으면서도 매력도 있습니다. 캐릭터 구축도 참 잘하네요.

봉준호 감독의 초기작이지만 그의 장점은 잘 드러나있는 작품이었습니다. 물론 아직 완성되지 않은 부분도 보이긴 하나, 장편 데뷔작을 이 정도로 뽑아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기도 하네요.




★★★☆
:유쾌하고 산뜻하게만 보이는 세상살이는 언제나 처연한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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