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잡을 수없이 번전 분노의 불꽃에 피부가 그을리듯 생생하다.
프랑스 국기의 세 가지 색이 의미하는 것은 자유와 평등, 박애라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요소들이 프랑스를 건국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지요. 그런데 과연 지금의 프랑스에는 이 자유와 평등, 박애가 남아있을까요. 이러한 프랑스의 현실을 아주 날카롭고 충격적으로 전하는 영화가 바로 레쥬 리 감독의 <레 미제라블>입니다.
영화는 오프닝부터 관객을 사로잡기 충분합니다. 2018년, 프랑스가 월드컵 우승을 차지한 이후, 개선문 앞으로 사람들이 이를 기념하기 위해 모이는 장면을 보여주는데요. 남녀노소 모두 기뻐하는 축제의 현장이지만 프랑스 혁명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도 하는데, 순간적으로 영화에게 압도당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활기차고 기뻐 보이는 현장을 뒤로하고, <레 미제라블>이란 제목이 지나가고 난 이후의 프랑스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 보입니다. 사고뭉치의 아이들과, 좋지 못한 행동의 어른들, 그리고 정의롭지 못한 경찰들의 모습들로만 가득하지요. 또한 종교와 이민자 문제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혁명이 필요해 보이는 이 시기. 불씨만 붙으면 화르르 타오를 것 같은, 팽배한 긴장감이 도는 이 상황에서 어이없게도 아기 사자가 없어지는 사건이 도화선 역할을 합니다. 이후 분노의 불꽃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게 되는데요. 폭력적인 어른들로부터 썩어가던 사회가 어느 순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폭발해버립니다. 200년 전 빅토르 위고가 꿈꾸었던 사회와는 정반대인 현대의 프랑스에서, 혁명을 마주해야 함을 알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비극은 현재진행형입니다. 분노와 폭력으로만 가득한 사회를 더 이상 지켜볼 수만은 없다는 강렬한 고발이 참 인상적이었네요.
이러한 이야기가 굉장히 생생하게 다가와서, 타오르는 분노로부터 피부가 그을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요.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굉장히 다큐멘터리적인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분명히 극 영화인데 말이죠. 찾아보니까 레쥬 리 감독이 다큐멘터리 영화로 데뷔를 했더군요. 현장감을 구현하는 능력이 아주 대단합니다. 프랑스 사회의 모든 것을 담아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낭만과 혁명의 나라로 알려져 있는 프랑스는 현재 썩어가고 있습니다. 자유, 평등, 박애 중 하나도 남아있지 않지요. 이민자와 난민이 넘쳐나고, 경찰은 부패했으며, 종교 갈등이 심화되고 있음에도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모습이 참 먹먹하게 다가오기도 했네요. 프랑스뿐 아니라 현대 사회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도 합니다. 현대의 비극은, 우리가 마주하게 된 여러 문제들의 원인을 알 수 없다는 것이 아닐까 싶은데요. 정말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알아차리기 전에 비극적인 문제는 삽시간에 번져버리죠. 결과는 있지만 원인은 없고, 해결책도 없는, 안타까운 작금의 모습입니다.
영화는 폭력적인 어른들로 인해 아이들이 피해를 보고, 그 분노가 축적되어 결국 아이들이 들고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어른들의 문제로 가장 피해를 입는 것은 아이들이라는 사실도 아주 잘 전해주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사라는 캐릭터가 참 인상적이었는데요. 새끼 사자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도 했달까요. 새끼 사자가 물러서다 마지못해 결국엔 횃불을 드는, 그런 모습이 참 강렬하게 남았습니다. 끝나지 않는 지옥과 같은 이 사회에서 물리적인 폭력을 휘두르는 자만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타협하는 척하면서 방관하는 자도 성난 횃불을 피할 수 없지요. 도대체 누가 그르고 누가 옳은 것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세상에는 나쁜 풀도, 나쁜 사람도 없소. 다만 나쁜 농부가 있을 뿐이오.'라는 빅토르 위고의 말이 있습니다. 그 나쁜 농부가 현대 사회에서 도대체 누구일까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였네요.
정말 훌륭한 영화였습니다. 극장에서 놓치셨다면 나중에라도 꼭 보시기를 추천드리는 영화입니다. 쉽게 다뤄내기 어려운 소재를 엄청난 에너지로 감싸고 있거든요. 더 이상 외면하고 물러설 수 없는 현실입니다.
여담이지만 92회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 영화상에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제치고 프랑스 후보로 올랐는데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봤을 땐 이게 왜 탈락했지 싶었는데, <레 미제라블>을 보고 나선 저였어도 이 두 영화 중 하나를 고르기 참 힘들었을 것 같네요. 이동진 평론가님도 두 작품 다 만점을 주셨구요.
★★★★☆
:걷잡을 수없이 번진 분노의 불꽃에 피부가 그을리듯 생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