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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서 Apr 21. 2021

<옥자/Okja>

돈의 세상에서 오늘의 총성은 막지 못해도 내일의 총성은 막을 수 있기를.

지금 제가 굉장히 애용하고 있는 OTT 플랫폼인 넷플릭스가 국내에서 유명세를 얻게 된 계기가 바로 봉준호 감독님이 연출한 영화 <옥자>입니다. 당시 멀티플렉스가 극장 상영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논란이 많이 일었던 것 같은데요. 지금 와서 넷플릭스 작품들을 극장에서도 상영하는 걸 보면 참 웃기기도 하지요. 제작과 배급, 상영은 분리되어야 한다고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네요.

하여튼 저도 그때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의 존재를 처음 알았는데요. 정작 <옥자>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보았네요. 일단 전체적인 봉준호 감독님의 필모 중에서도 힘을 많이 뺀, 꽤나 가볍고 귀여운 분위기의 영화입니다. 약간 감독님의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의 느낌도 났는데, 봉 감독님이 잘하는 유쾌하고 동화 같은 분위기로 비극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그 끝에는 조그마한 희망을 불어넣는 연출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자본주의의 이면을 투영하고 있는데요. 돈의 세상에서 나타나는 여러 비극적이고 아이러니한 일들이 우회적이면서도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참 안타까운 점은 이들 모두의 목적이 그렇게 악하지 않다는 것인데요.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행동, 그리고 동물 보호를 위해 행하는 폭력 등은 결국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고, 피해는 힘없는 약자가 받게 되는 세상이죠. 마치 옥자처럼요. 여기서 인간의 양면성도 너무나 잘 드러납니다. 미란도 회사, 동물 보호 단체 ALF, 그리고 미자까지 모두 양면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요.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듭니다.

강원도 시골 소녀인 미자가 자본주의 사회를 처음 마주하게 되면서 변화하는 과정이 참 인상적입니다. 그렇게 옥자를 구하려고 좌충우돌한 고생을 해도, 결국 황금 돼지 하나로 거래를 하면 되는, 어찌 보면 간단한 해결책을 보여주죠. 우리는 지금 돈으로 살 수 있는 것과 살 수 없는 것을 구별할 수 있나요. 평생 친구라고 생각했던 존재를 돈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한 소녀. 옥자와 예전과 같은 관계로 돌아가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그리고 개인의 돈으로는 옥자 한 마리 밖에 구하지 못하죠. 한 발의 총성은 막아도, 그 뒤에 들릴 수백 발, 수천 발의 총성을 막지는 못하는, 봉준호가 선사하는 무력감이 참 일품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자는 것이 봉준호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은 아닙니다. 오늘의 총성은 막지 못해도, 내일 들릴 총성을 막을 수 있게. 그렇게 한 발자국, 옥자 한 마리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나아가야 합니다. 먹먹함, 무력감과 동시에 조그마한 희망의 불씨도 잊지 않고 챙겨주는 봉 감독님이었네요.

개인적으로 화려한 캐스팅이 가장 놀라웠고 흥미로웠습니다. 물론 주인공인 미자 역을 맡은 안서현 배우는 아역이지만, 당장 주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틸다 스윈튼과 제이크 질렌할은 명실상부 할리우드 탑 급 명배우들이지요. 거기에 봉준호 영화에 종종 등장하는 변희봉, 윤제문, 최우식, 이정은 등도 조연, 단역으로 많이 출연하구요, 이제는 할리우드에서도 한자리를 당당히 꿰차고 있는 폴 다노, 릴리 콜린스, 스티븐 연 등도 등장합니다. 그리고 최희서, 윤경호 등도 잠깐이지만 모습을 비추고요. 이미 봉준호 감독님이 이전 <설국열차>로 틸다 스윈튼, 크리스 에반스 등과 호흡을 맞춘 것은 알고 있었지만, <옥자>는 그 정도의 스케일로 보이지는 않았거든요. 확실히 넷플릭스의 자본이 대단하다는 걸 다시금 느끼네요. 전부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하나씩 연기해내는데요. 개인적으로 몇몇 캐릭터들에게 서사를 조금 더 부여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네요. 너무 많은 등장인물 때문에 조금은 난잡해 보이기도 하구요.

굉장히 좋게 본 봉준호 감독님의 영화였습니다. 보기 전에 평들이 조금 호불호가 갈리는 거 같아서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봤는데, 푹 빠져들어서 봤네요. 이전 작품들과 결이 조금 다른데, <플란다스의 개>를 재밌게 보신 분이라면 좋게 평가하실 것 같기도 합니다.




★★★★
:돈의 세상에서 오늘의 총성은 막지 못해도 내일의 총성은 막을 수 있기를, 그렇게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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