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전통을 온전히 계승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은 이변이 많았지만, 노미네이션 자체에서 조금 놀라웠던 것은 각색상에 노미네이트된 인도 영화 <화이트 타이거>였습니다. 저도 나름 좋게 본 영화였지만 각색상 부문에서 후보에 오른 것은 또 다른 업적이었으니까요. 인도 영화가 이제는 나름 힘을 쓰는구나 싶기도 했네요.
<수업시대>도 베니스 국제 영화제나 토론토 국제 영화제 같은 굵직한 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 중 하나였습니다. <화이트 타이거>와 마찬가지로 넷플릭스에서 공개가 되었는데요. 여기에 알폰소 쿠아론이 제작을 맡기도 했다니 나름 기대를 걸었던 작품입니다. 영화는 생각보다 잔잔하게 흘러가는 편입니다. 전통 예술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지, 순수한 예술 자체를 보존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잔잔한 분위기 속에서 흘러가지만 꽤나 날이 서있더군요. 순수한 매력에 빠져 고전을 탐닉하더라도 결국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있고, 현대 사회는 이런 전통을 바라지 않죠. 이것을 보존한다는 것 자체는 솔직히 불가능해 보이기도 합니다. 퓨전 음악이야 꽤나 인기를 얻고 있기는 하지만 순수 전통 음악을 하는 분들이 인지도가 얼마나 있을까요. 비단 인도만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는 않았네요.
이것을 보존하기 위해 많은 것들을 감내해내는 인물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경제적인 여유도 갖지 못하며, 항상 외롭고 괴로우며, 실력도 그렇게 있는 편은 아니었죠. 거기에 자신의 유일한 스승마저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하고, 퓨전 음악을 하는 사람들을 저마다 승승장구하기 시작합니다. 한 가지를 위해 전력투구를 해도 세상은 무관심하기만 한데요. 극 중 유튜브 댓글을 통해 전통 음악은 지루하다는 댓글과 적은 조회수를 통해 전통 음악의 인기를 보여주는데, 너무 현실적이라서 마음에 들었네요. 우리나라라고 다르지 않겠지요. 영화는 마지막에 가서 결국 현대 사회와 어느 정도 타협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홍보도 하고, 기자와 인터뷰도 하지요. 다만 이게 전통 음악이 발을 맞춰 함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끌려다니는 느낌이었네요. 이게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만 인도 전통 음악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소재라서 몰입하기가 상당히 어려웠다는 점은 좀 아쉽습니다. 특히 인도 전통 음악인 라가의 스타일(특유의 스타일이 있는데 들어보시면 아실 거 같아요)은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음악이라 좀 힘들었습니다. 인도 음악은 영 제 취향이 아니네요. 인도 전통 음악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얼마나 될까 싶기도 한데, 일단 영화의 의의 자체에 초점을 두고 보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괜한 음악을 기대하고 갔다간, 분명 실망하실 거예요. 애초에 음악 영화도 아니구요. 흔한 발리우드 스타일의 음악도 아니라서 신나지도 않습니다. 각본상을 받을 정도의 탄탄한 스토리인가도 솔직히 조금 의심이 가기도 하네요.
여느 인도 영화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입니다. 인도 영화 자체가 조금씩 바뀌고 있고, 이에 따라 인식도 계속해서 변화할 거 같네요. 다만 쉽게 추천드리지는 못하겠지만, 궁금하신 분들이라면 시도해보는 것을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여타 인도 영화 중에서는 상위권의 작품성이거든요.
★★★
:순수한 전통을 온전히 계승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잔잔하지만 날서있는 질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