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발 늦어 생긴 그 간극은 걸어도, 아무리 걸어도 좁혀지지 않을테니.
이제 슬슬 히로카즈 감독의 색깔이 보이기 시작하는 거 같습니다. 그 색깔이 너무 취향에 맞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구요. <걸어도 걸어도>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또 다른 걸작입니다. 히로카즈 영화는 항상 마음속 깊이 들어왔다가 천천히 빠져나가는 느낌이라서 너무 좋네요.
히로카즈의 여느 영화처럼 남은 이들의 모습을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항상 히로카즈는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남은 이들의 삶을 그려내는데, 단순히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고 화목하게 살아가는 인물들을 보여주지요. 이게 정말 현실이거든요. 이러한 부분이 히로카즈 감독이 가진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인 것 같습니다. 잔잔하고 따뜻하며 평화로운 것 같지만 그 속에서 살아 숨 쉬는 그리움과 증오심을 너무나 잘 표현해냅니다. 가족 영화는 히로카즈를 따라올 자가 없을 거 같네요.
가족이란 집단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준 작품이기도 합니다. 한없이 가까운 사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날을 세운 말들을 스스럼없이 하는 사이기도 하지요. 너무 사랑하고, 세상에 둘도 없을 존재들이지만, 각자의 인격체인걸요. 너무 화목해 보이고 행복해 보이지만, 이러한 이들의 모습에서 왠지 모를 날카로움과 차가움을 발견하는 순간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어쩌면 이러한 행동들이 가식이고, 이기적인 것일지도 모르니까요. 나츠카와 유이가 분한 유카리라는 인물이 차가운 표정으로 살갑게 '네~'라고 답하는 장면이 가장 와닿았네요. 그게 사람일 테지요. 항상 한발 늦는다는 대사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한발 늦어서 생긴 그 간극은 아무리 걸어도 좁혀지지 않거든요. 한발 늦기 전에, 부모님께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히로카즈 영화를 보다 보면, 배우가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느낌보다는 정말 한 가족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것 같더군요. 누군가 히로카즈의 영화에서는 캐릭터가 아니라 사람이 산다고 했는데, 그 말이 딱 맞는 거 같습니다. 그만큼 정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네요. 이 <걸어도 걸어도>가 한국 감성에 맞는 영화처럼 보이기도 하구요. 가족 영화다 보니 많은 인물들이 나오는데, 키키 키린이 연기한 토시코가 참 기억에 남더군요. 한없이 다정한 할머니, 어머니처럼 보이면서도 죽은 아들을 잊지 못하고 항상 그리움과 차가움을 품고 사는, 가장 잘 와닿는 캐릭터였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료타의 관계도 인상 깊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버지는 다음 설에 만나겠다고 말하는데, 아들은 설에는 안 내려가도 된다고 말하죠. 이렇게 거리가 벌어집니다. 걸어도, 걸어도 좁혀지지 않을 그 거리요.
보면서 따뜻한 느낌을 가득 받을 수 있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 영화네요. 깊게 들여다볼수록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그런 작품입니다. 뒷맛이 너무 좋다고 해야 하나요. 여운이 길게 남는 영화였어요.
★★★★☆
:한발 늦어 생긴 그 간극은 걸어도, 아무리 걸어도 좁혀지지 않을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