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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서 May 13. 2021

<O2/Oxygen>

답답하게 만드는 건 단지 멜라니 로랑의 연기만이 아니다.

알렉상드르 아야 감독의 작품은 한 번도 보지 않았지만, <피라냐>나 <크롤> 등 그의 작품들을 몇 가지 들어보기는 했습니다. 물론 좋은 평을 받는 영화들은 아니지만 킬링타임 용으로 보기 좋은 공포 스릴러는 나름 잘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요. 넷플릭스와 함께 제작한 <O2>는 엄청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일단 영화는 기억도 없이 폐쇄된 캡슐에서 깨어난 엘리자베트 앙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관객의 답답함을 불러일으키는 체험적인 연출을 시도하고 있으며, 이는 나름 성공적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여기에 단순한 밀실 스릴러처럼 보였던 영화를 우주 SF로 확장시키는 시도까지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확장시키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뭔가 더 긴장감 넘치고 스펙터클한 무언가를 기대하게 만드는데, 그 이상을 보여주지 못하네요. 이미 이런 류의 영화를 많이 본 사람이라면 예측할 수 있을만한 뻔한 감정과 상황과 대화가 반복될 뿐입니다. 이런 요소들을 관객들이 이해하게 만들려면 인물에게 더 이입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하는데, 영화는 다짜고짜 극한 상황에서만 시작하는 바람에 관객들을 극 중 상황 속으로 끌고 들어오는 것에 실패하고 말거든요. 거기에 이렇다 할 탈출이나 해결책을 극적으로 찾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기계나 사람과의 말싸움으로 끝나버리니 김이 빠져버리는 듯한 실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네요.

굉장히 건조한 분위기로 전개되는 편입니다. 그래서 좀 더 폐쇄된 공간에 대한 압박감이나 공포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데, 그렇게 효과적으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정신적인 요소를 건드리는 것 자체는 매우 좋았으나 단순한 해프닝에서 끝나버리는 것은 참 아쉽네요. 영화는 갑자기 복제 인간이라는 소재를 꺼내드는데, 이게 나름의 반전처럼 연출되긴 하지만 참 뜬금없게 느껴지더군요. 차라리 기억 조작이나 환각 증세 등을 더 이용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랬다면 얼마 전 아카데미에서 활약한 <더 파더>의 느낌도 났을 거 같기도 하고 말이죠. <O2>는 전체적으로 여러 비슷한 장르의 영화들의 설정들을 합쳐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장 밀실 된 공간에 갇혀있다는 소재 자체는 라이언 레이놀즈 주연의 <베리드>가 연상되며, 동면 관련은 <패신저스>, 우주 공간에서의 생존은 <그래비티>, 복제인간은 <아일랜드>, 푸른 색감과 건조함은 <애드 아스트라> 정도가 떠올랐네요. 이렇게 많은 영화가 떠올랐다는 건 이 영화만의 독창성은 결국 없다는 뜻이겠지요.

이렇게 답답하고 지루하며 몰개성적인 이 작품을 그래도 끝까지 버티게 하는 힘은 바로 멜라니 로랑에게 있습니다. 그나마 그녀의 연기 덕분에 관객은 극 중 상황에 이입할 수 있는데요. 주인공의 회상 장면 말고는 멜라니 로랑 혼자서 연기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참 훌륭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온갖 불안과 공포를 잘 나타내주었네요. 사실 극한 상황에서의 1인 극이라는 소재는 배우라면 도전해보고 싶으면서도 쉽지 않은 연기일 텐데, 인상적인 모습이었습니다. 한 가지 독특했던 점은 나름 인지도 높은 프랑스 배우인 마티유 아말릭이 인공지능인 밀로로 등장했다는 것입니다. 딱히 사전 지식은 없이 봐서 마티유 아말릭의 모습을 찾고 있었는데 엔딩 크레딧에 인공지능 역을 맡았다고 나와 있어서 좀 놀랐네요. 나근나근한 목소리는 기억에 남았습니다. 레오 퍼거슨을 연기한 말릭 지디가 분량이 적은 조연 정도의 역할이며, 나머지는 단역 수준이기 때문에 멜라니 로랑과 마티유 아말릭의 2인 극, 더 나아가선 멜라니 로랑의 원맨쇼라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확실히 이제는 넷플릭스 오리지널의 뚜껑을 열 때 기대감은 이전보다 식은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이 정도의 캐스팅과 설정이면 어느 정도 기대감을 가질만했는데, 요새는 그렇지가 않네요. 딱 기대만큼 나왔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작품이었습니다. 딱히 추천드리고 싶은 작품은 아니었네요.




★★☆
:답답하게 만드는 건 단지 멜라니 로랑의 연기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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