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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서 May 18. 2021

<태풍이 지나가고/海よりもまだ深く>

과거의 나를 씻어내고 새로운 나를 칠하는 것. 그렇게 어른이 된다.

이제 최근작까지 슬슬 봐온 상태에서, 개인적으론 초기작이 최근작보다 더 취향에 맞았던 것 같습니다. 최근작으로 오면서 히로카즈 감독만의 강점이 점점 안 보이는 듯한 느낌이었거든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와 <바닷마을 다이어리> 모두 좋게 보았지만, 이 <태풍이 지나가고>만큼은 아쉬운 점이 확실하게 남았던 첫 히로카즈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확실히 잘 만든 영화긴 합니다. <태풍이 지나가고>는 히로카즈 특유의 느낌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긴 하니까요. 잔잔하지만 묵직한 한 방을 가지고 있는 영화입니다. <태풍이 지나가고>는 모든 사람이 자신이 원했던 어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데요. 대체 어디서부터 꼬인 것일까 궁금함과 동시에, 자신이 어릴 적 막연하게 생각했던 그 지점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오는 박탈감은 참 이루어 말할 수가 없겠지요. 어차피 인생은 전력투구를 해도 뜻대로 되지 않으니까요. 그게 인생일 테니요. 그 사실 앞에서 좌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어른이 되지 않았다고 실패한 삶은 아니거든요. 과거의 꿈이 뭐였든 간에, 과거의 자신은 씻어내고, 새로운 나를, 미래의 나를 새롭게 칠하는 것. 그것이 어른이 되는 과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만 이런 메시지를 가지고 있음에도 참 아쉬운 부분이 눈에 띄었습니다. 히로카즈는 본래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 속에 자연스럽게 자신이 하고 싶은, 관객이 생각할만한 메시지를 녹여내는 능력이 탁월한 감독입니다. 다만 <태풍이 지나가고>에선 그 메시지를 너무 직접 던지려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요. 그래서 꽤나 지루하고 피곤하게 다가오기도 했는데, 왜 이런 느낌이 들까 싶어서 유심히 봤더니 <태풍이 지나가고>가 다른 히로카즈 영화와 다른 점을 알아차렸습니다. <태풍이 지나가고>는 여타 히로카즈 영화에 비해 대사의 양이 매우 많은 작품이라는 것인데요.. 물론 잔잔한 분위기는 유지하지만, 꽤나 수다스러운 영화라는 건데, 조금은 난잡하게 다가오기도 했달까요. 이게 좋게 작용하기도 해서, 히로카즈 영화들 중에서도 굉장히 편하고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저는 조금 아쉽게 다가온 연출이었습니다.

이전 히로카즈 영화에서 출연했던 배우들이 참 좋은 연기를 보여준 작품이었습니다. 아베 히로시마부터 시작해서 키키 키린, 마키 요코, 릴리 프랭키까지 참 좋은 배우들인데요.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하드 캐리 했던 배우는 바로 키키 키린입니다. 분위기를 살릴 뿐 아니라 극의 흐름 전체를 끌고 가는 능력이 아주 탁월하신 배우네요. 이제 키키 키린의 연기를 못 본다는 게 참 슬픕니다. 아베 히로시는 키키 키린의 아들 역으로 참 잘 어울리네요. 완벽한 아들보다는 좀 부족하고 실패한 아들로 말이지요. 마키 요코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 가장 돋보였던 배우였는데, 여기서도 인상적입니다. 연기도 연기지만 참 아름다운 배우더군요. 릴리 프랭키도 감초 같은 역할을 잘 해줍니다.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했지만, 캐릭터 자체의 매력은 이전 영화들보다 좀 떨어지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히로카즈가 보여주는 가족의 정이 가장 덜 느껴진 작품이기도 했구요.

좋은 영화는 확실합니다. 다만 제가 이렇게 아쉬운 점을 털어놓은 이유는 지금까지 너무 좋게 본 감독이라서 더욱 그런 거 같네요. 히로카즈 기존의 색과, 색다른 변주 사이에 놓여있는 작품이라고 봐도 될 거 같은데, 기본적으로 편안하고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
:과거의 나를 씻어내고 새로운 나를 칠하는 것. 그렇게 어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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