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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서 May 20. 2021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

익숙한 맛이 오랜만에 찾아왔을 때의 거부할 수 없는 그 쾌감.

코로나 이후 지금까지 블록버스터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영화들이 침체된 극장가를 살려내기에는 역부족이었는데요. 크리스토퍼 놀란의 <테넷>은 어려웠을뿐더러 코로나가 창궐했을 시기였고, DC의 <원더우먼 1984>는 기대 이하의 완성도였으며, 몬스터버스의 <고질라 VS. 콩>은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지요. 결국 극장가에는 단순한 블록버스터가 아니라 오랜 역사를 가진, 팬층이 두터운 프랜차이즈 영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형 프랜차이즈가 드디어 찾아왔습니다.

시리즈의 9번째 영화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는 익숙한 맛이 오랜만에 찾아왔을 때의 거부할 수 없는 묵직한 쾌감을 선사하는 영화입니다. 이제는 어마어마한 물량을 쏟아부는 통에 피로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또 마냥 싫지만은 않은 신기한 현상을 보여주고 있는 시리즈인데요. 오랜만에 만난 단순한 액션 블록버스터라기보단, 이제는 발전한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가 줄 수 있는 액션의 한계를 보여준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가 시간이 지나갈수록 이게 실제로 가능한 일인가 싶을 정도의 액션신을 보여주는 경향이 있는데, 역시나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에서도 그런 액션신들을 보여줍니다. 근데 이제는 스케일을 상상 이상으로 불려놓아서 실현 가능한 액션인지에 대한 의심을 하지 못하게 만들더군요. 그니까 이제, 눈앞에 우주를 떠다니는 자동차가 보이는 순간 이제는 그런 고민이 쓸모없게 되어버리는 거죠. 우리가 이런 영화, 즉 대형 블록버스터에서 이 이상을 바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가장 무난하지만, 가장 최선의 모습인 것이지요.

다만 아쉬운 점은 액션 자체는 많은 분량을 가졌지만 완벽한 수준은 아니라는 겁니다. 애초에 이 영화가 액션으로 꽉꽉 채우려고 하지 않은 편인데다, 도미닉의 과거를 계속 들추려고 하는데요. 항상 그렇다시피 이런 류의 영화에서 진중한 드라마가 설득력 있을 리가 없고, 이런 시도는 결국 영화의 개연성을 파괴하고 맙니다. 이런 영화야 가볍게, 흘러가는 대로 본다지만 심각할 정도의 개연성 부재는 눈에 밟히긴 하더군요. 거기에 드라마에 신경 쓰느라 후반부 클라이맥스 액션이 이제껏 보여줬던 시퀀스보다 뛰어난 점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참 아쉬웠네요. 등장인물부터 알 수 있듯이 영화는 팬 서비스와 동시에 시리즈 확장을 염두에 둔 작품입니다. 분명 팬 서비스는 확실하지만, 이거와 동시에 하나의 이야기를 연결해야 하고, 또 시리즈의 미래까지 생각하려고 하다 보니 러닝타임을 2시간 15분으로 늘렸음에도 뚝뚝 끊어지는게 눈에 띄더군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접목시키기엔 역부족인 듯싶었습니다.

캐스팅은 역대급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기존 도미닉 패밀리인 빈 디젤부터 미셸 로드리게즈, 조다나 브류스터, 타이레스 깁슨, 루다 크리스, 나탈리 엠마뉴엘부터 돌아온 성 강, 8편의 빌런 샤를리즈 테론, 그리고 새로운 빌런 존 시나, 강렬한 카메오 카디 비까지. 정말 호화로운 캐스팅인데요. 이렇게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는 영화는 또 오랜만인 거 같네요. 코로나를 제외해도 말이지요. 존 시나는 이런 액션물에서는 잘 어울리는 배우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개인적으로 과거의 요소들을 잘 끌어와서 이야기를 풀어낸 점은 마음에 들었습니다(개연성은 아쉽다고 하더라도). 특히 <패스트 & 퓨리어스 도쿄 드리프트>에서 등장했던 인물들이 함께 보여주는 활약은 참 인상적이었네요. 캐릭터의 분량은 나름 잘 나누어져 있는데, 애초에 등장인물이 많은 시리즈인데다, 돌아오고 새롭게 추가되는 인물이 만만치 않아서 주축에 가까운 드웨인 존슨과 제이슨 스타뎀이 외전으로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중구난방인 느낌은 지울 수가 없네요. 생각해 보면 오랜만에 나온 블록버스터라 감내하고 본 부분들이 꽤나 많습니다.

따지고 보면 기존 보여주었던 블록버스터와 다른 부분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익숙한 맛이 오랜만에, 그것도 대량으로 찾아온다면 그 쾌감을 (적어도 저는) 거부할 수가 없을 것 같네요. 다만 다음 시리즈도 이런 매너리즘에 빠진다면 더 이상 이 정도의 점수를 줄 수는 없을 거 같습니다. 결국 영화는 딱 두 가지가 기억에 남습니다. 이제는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게 만드는 화끈한 자동차 액션의 모든 것, 그리고 천천히 다가오는 파란색 스포츠카 한 대.

For Paul.




★★★
:익숙한 맛이 오랜만에 찾아왔을 때의 거부할 수 없는 그 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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