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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서 May 24. 2021

<어느 가족/万引き家族>

끊어지고 나서야 더욱 짙어진 어느 가족의 이야기.

10개가 조금 넘는 영화들을 만들어 오면서 다른 이야기들도 다뤄오긴 했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결국 가족이었습니다. 가족이란 집단을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작품들을 여럿 만들어 왔는데요. 이전 작품들은 이 영화를 위한 발판일 거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습니다.

<어느 가족>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고 봐도 무방할 영화입니다. 비록 히로카즈 감독 본인이 이 영화를 자신의 집대성이라고 표현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히로카즈가 보여줬던 모든 훌륭한 요소들이 전부 들어가 있는 느낌이었거든요. 우선 따뜻한 분위기 이면에 보이는 차가움과 불완전함이 눈에 띄었습니다. 비록 진짜 피가 이어진 가족은 아니었지만 서로를 채워나가며 화목했고, 마음으로 연결된 가족이었지요. 하지만 완전한 가족은 아니었기에 그 사이에 불안함과 위태로움이 보였습니다. 행복하고 화목해 보였어도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은 정상적인 수법이 아니었고, 그렇게 풍족한 삶은 더더욱 아니었거든요. 이들이 보여줬던 행복은 진정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간절히 원했던 요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너무 열악하고 비정상적으로 보이지만, 따뜻한 이면도 있었습니다. 어쩌면 피로 이어졌지만 제 역할을 못하는 가족보다 더 나아 보이는 면도 있지요. 단순히 낳았다고만 해서 가족이 아니듯이. 이들이 진짜 가족과 비교해서 뒤처질 점이 무엇이 있냐고 하면 그렇게 꼬집을 면은 딱히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히로카즈답게 이들을 단순한 낭만에 젖게 하지 않고 차갑고 서슬 퍼런 사회의 현실을 마주하게 합니다. 화목하고 따뜻했던 전반부와 달리 영화의 후반부는 정말 잔인할 정도로 건조해지며, 개입된 3자의 인물들은 이 가족을 분리시켜 놓으려고 안달이 되죠. 어찌 보면 당연한 처사일지도 모릅니다. 정상적인 가족이 아니었으며, 어감이 조금 그럴 수는 있어도, 훔친 가족이었으니까요. <어느 가족>이 정말 훌륭한 이유가 낳기만 한다고 가족이 아니다를 넘어서, 낳지 않으면 가족은 아니라는 사실까지 마주하는 영화입니다. 비슷한 이야기였지만 결국 낭만 속으로 도피하며 끝을 맺었던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차마 마주치지 못했던 그 현실을요. 가족의 단순한 정의는 물론, 우리가 쉽게 들었던 재해석까지 넘어선 가족 영화의 새로운 경지라고 말하고 싶네요. 다만 개인적으로 히로카즈는 이 영화를 우울하고 잔인하게 비추고 끝내려는 의도는 아니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붙어있을 때 화목했지만 위태로웠던 그 가족이, 떨어지고 나서야 더욱 끈끈해지고 짙어졌지요. 훔친 게 아니라 주워서 가족이 된 거라고 생각하던 사람들이, 아빠라고 부르게 되고, 서로를 생각하고 배려하게 되며, 배운 노래를 무의식중에 흥얼거리게 되는 것. 그 사람들은 어느새 어느 가족이 되었습니다.

익숙한 배우들이 많이 나올뿐더러 새로운 얼굴들도 기가 막힌 연기를 보여주며 각각의 캐릭터들마저 정말 매력적인 영화였습니다. 이제는 페르소나가 되어버린 릴리 프랭키와 히로카즈 가족 영화엔 빠져서는 안 될 키키 키린이 출연하며, 안도 사쿠라, 마츠오카 마유, 죠 카이리, 사사키 미유가 주연을 맡았지요. 조연에도 익숙한 얼굴들이 보이는데요. <태풍이 지나가고>에 출연한 이케마츠 소스케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로 유명한 이케와키 치즈루도 잠깐 얼굴을 비춥니다. 이들의 연기력이 정말 감탄스러웠던 이유는 행복하고 따뜻해 보이지만 불완전하고 위태로움을 숨길 수 없던, 어느 가족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피 한 방울 안 섞였지만 다른 가족들 못지않게 화목했던 그 모습들을 잊을 수가 없는데요. 릴리 프랭키와 키키 키린, 그리고 아역들의 연기도 훌륭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역시 노부요 역의 안도 사쿠라였죠. 잊히지 않는 장면들이 두 가지 있는데요. 유리가 옷을 사주면 때리지 않을 거냐고 물을 때 꼭 안아주던 장면과, 아이들이 자신을 어떻게 불렀냐는 질문에 눈물을 흘리던 장면. 정말 말 그대로 가슴을 울리더군요. 특히 후반부에 눈물을 훔치는 신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거 같습니다. 

<원더풀 라이프>, <걸어도 걸어도>와 더불어 히로카즈 최고작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황금종려상이라는 게 괜히 받은 상도 아닐 테고요. 히로카즈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 가족 영화의 새로운 경지를 써낸 작품 같네요.




★★★★★
:끊어지고 나서야 더욱 짙어진 어느 가족의 이야기로 일궈낸, 가족 영화의 새로운 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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