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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서 Jun 26. 2021

<박쥐/Thirst>

강렬한 체험과 시뻘건 핏자국을 뒤로하고 남는 건 이토록 애절한 로맨스.

박찬욱 감독의 2009년 작품 <박쥐>입니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로 쉬고 돌아온 이후에 다시 자신의 느낌을 가득 담아낸 작품인데요. 정말 훌륭한 영화인데 유독 국내에서 호불호 갈리고 저평가 받는 작품인 것 같더군요. 사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대부분이 그렇지만 이 영화는 특히 더 그런 거 같습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이 왠지 모를 위화감입니다. 저도 보면서 이게 대체 무슨 느낌이지 싶을 정도로 강렬한 이질감이 이 영화 전체를 감싸고 있는데요. 일단 이 영화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겹쳐 있습니다. 일단 기본적으로 라 여사가 운영하는 가게는 한복 집인데도 불구하고 서양 마네킹을 사용하고, 일본식 가옥에, 모임에선 중국의 화투인 마작을 하며, 러시아 술인 보드카를 마시죠. 딱 봐도 정말 이상한 조합들이 마구 뒤섞여 있기 때문에 쉽게 눈치챌 수 있고 기묘하게 느껴집니다. 일반적인 관객이라면 여기서 반감을 갖고 별로라고 생각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드네요. 다만 저는 이게 <박쥐>의 가장 좋은 점이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박찬욱 감독 특유의 아이러니를 잘 살렸기 때문이거든요. 박찬욱 감독은 아이러니를 빼고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아이러니를 자주 사용하는 감독인데요. 대표적으로 복수 3부작에서 많이 보였구요. 여기에 상현의 종교가 가톨릭(국내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종교)이라는 점과 사람을 살리러 갔지만 오히려 흡혈귀(흡혈귀도 서양에서 왔죠)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 아이러니를 더욱 부각시켜주고 있습니다. 이 영화가 애초에 새로운 것의 침투로 인해 무너지는 것들에 대해서 그리고 있기도 하구요.

또 이 영화가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가 장르의 복합성 때문인데요. 단순히 뱀파이어가 나오는 판타지 영화로 생각하고 본다면 굉장히 실망스럽기 때문이죠. 일반적인 뱀파이어 영화와 완전히 다른 구조일뿐더러 장르적인 재미나 쾌감을 주지 않고 있거든요. 그렇기에 이 영화를 뱀파이어 영화로만 국한 지어서 본다면 정말 이상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사실 뱀파이어 영화로도 굉장히 신선한 요소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기도 하구요. 우선 이 영화는 종교 영화로도 볼 수 있을 거 같은데요. 꽤나 많은 부분에서 종교적인 요소의 표면적인 묘사나 언급이 되기도 하고, 태주의 부활과 같은 요소에서도 성경 모티프를 찾아볼 수가 있지요. 또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중 가장 에로틱하기도 합니다. 이게 또 중요한데, <박쥐>에선 성행위가 단순 자극적인 요소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거든요. 앞서 말한 종교와도 관련이 있는데, 종교에서 중요시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에 관련해서도 잘 풀어내고 있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애틋한 사랑 이야기로도 훌륭한 영화입니다. 영화는 온갖 강렬한 체험과 시뻘건 혈흔들을 뒤로하고 결국엔 애절한 멜로드라마로 끝을 맺는데요. 정말 마지막에 가선 이런 사랑도 있나 싶을 정도로 절절하거든요. 어떻게 보면 불륜으로 시작된 치정극으로 볼 수도 있지만 다른 시선으로 보면 참 애틋한 첫사랑으로 보이기도 한달까요. 또 여러 부분에서 섹시한 모습들이 보이기도 하구요(송강호가 참 섹시하게 다가온다는..^^). 마지막에 가선 정말 여러 사랑들이 겹쳐지는 느낌이 드는데, 정말 훌륭한 엔딩입니다. 저는 이 엔딩이 <박쥐>에서 가장 마음에 든 장면이었네요. 하여튼 이런 여러 장르들의 복합으로 굉장히 기묘하고 광기 어린 장력을 펼쳐내고 있는 작품입니다. 어쩌면 박찬욱의 변태적인 광기가 절정인 작품이라고 볼 수 있을 거 같기도 하구요. 이런 강렬한 이야기 속에서 각자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는 배우들의 공도 무시할 수는 없구요. 송강호야 원래 뛰어난 배우지만 이런 연기에 조응하는 광기 어린 듯한 김옥빈의 모습은 새로운 발견이네요. 조연 배우들도 인상적이었구요.

평소보다 길어졌는데, 정말 훌륭한 영화입니다. 그리 어렵지도 않아서 보이는 요소들이 많기도 하구요(그러다보니 약간 해석 글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다만 호불호가 갈린다는 건 분명 이질감이 심해 거부감이 드는 부분이 많다는 뜻이겠지요. 그래도 제가 언급한 요소들을 제외하고도 많은 것들이 숨어있는 뛰어난 영화이니 주의하셔서 도전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강렬하고 기묘한 체험과 시뻘건 핏자국을 뒤로하고 남는 건 이토록 애절한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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