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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서 Jul 11. 2021

<시/Poetry>

세상은 아름답기만 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시는 써진다.

이창동 감독, 윤정희 주연의 2010년작 <시>입니다. 이 영화는 다른 것보다 영진위 각본 심사에서 0점을 받았지만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잘 알고 있던 작품입니다. 그래서 어떨지 궁금했는데 훌륭한 영화였습니다.

이창동의 영화 중에서 제일 애매하게 다가올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확실한 극적인 요소가 없고, 중요한 사건은 영화를 간접적으로만 관통하고 있거든요. <시>는 많은 부분에서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영화입니다. 많은 이창동의 영화들이 그렇지만, <시>는 유독 관객에게 맡기는 요소들이 많았네요. 또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왜 이런 식으로 전개되는가 의문이 들 수도 있어요. 그만큼 생략된 행동이 많고, 관객에게 답을 넘기고 있달까요. 이창동의 영화는 끝나고 나서야 시작된다는 말이 있듯이, 긴 여운과 함께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자의 시와 함께 흐르는 엔딩 신은 그야말로 탁월합니다.

보통 시는 특별하고, 창의적이고, 순수한 사람들이 쓴다고 믿죠. 그리고 아름답고, 매력적인 주제만이 시상이 된다고 생각하고요.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시를 쓰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일 겁니다. 세상은 아름답기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름다운 것을 발견해 시를 쓰기 어려워지고 있죠. 사람들은 무관심하고, 죄를 뉘우치지 않으며, 사건을 덮고 묻기만 급급합니다. 이렇게 잔인하고 삭막한 세상에서 시를 쓰기란 참 어려운 일이죠. 영화에 등장한 황명승(황병승 시인이 연기했더군요) 시인의 대사를 빌리자면, 시는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시는 써집니다. <시>의 엔딩에서 볼 수 있듯이 시는 아름다운 것에서만 나오지 않습니다. 끔찍한 비극, 그리고 죄에서도 시가 나올 수 있죠. 그리고 그 시는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아는, 그런 사람을 만들지도 모르겠네요. 적어도 미자는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이런 미자를 잘 표현한 윤정희의 연기는 실로 탁월합니다. 이다윗을 비롯해 김희라, 안내상 등의 조연들이 훌륭한 연기로 조응하고 있구요. 이들의 연기로 몰입감이 더 살지 않았나 싶습니다.

좋은 영화였습니다. 쉽게 답을 주는 영화는 아니었는데, 그래서 더 여운이 남고 좋은 영화가 아닌가 싶었어요. 어쩌면 <초록물고기>보다 더 문학적으로 다가오기도 했는데, 참 아름다웠습니다.




★★★★☆
:세상은 아름답기만 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시는 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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