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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서 Jul 12. 2021

<버닝/Burning>

청춘들 마음속 깊이 새겨진 분노와 갈망이 활활 타오른다.

이창동 감독 도장깨기의 마지막 작품, <버닝>입니다. 개봉 당시 영화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상당히 시끌시끌했던 기억이 나는데, 이제야 보게 되었네요. 전 상당히 좋게 보았습니다.

<버닝>은 우선 굉장히 고통받는 현대 사회의 청춘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를 굉장히 난해하고 어렵게 보신 분들도 이 점은 쉽게 캐치하셨을 거 같아요. 참 막막하고 삭막한 현실에서 고군분투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그리면서 이들의 분노, 그리고 자유를 향한 갈망을 마구 표출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단순 취업과 같은 식상하고 단조로운 소재에서 벗어나, 청년 간의 빈부격차까지 나아가면서 많은 박탈감과 무기력함, 소외감을 가득 담아내면서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달까요. 이를 종수와 벤의 대비, 그리고 해미의 존재를 통해 끊임없이 되짚어가면서, 서서히 끓어오르는 느낌을 받게 만듭니다. 대체 그들, 우리들을 위한 나라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굉장히 리얼하며 한국적인 영화라고 느꼈습니다.

영화는 동시에 굉장히 미스터리하고 기이함을 기반으로 극을 전개해나가고 있습니다. 이창동 영화에서 종종 보였던, 관객에게 많은 것을 떠넘기는 모습이 극에 달했다고 볼 수 있을 거 같아요. 영화는 수많은 메타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혹자는 메타포가 너무나 많아 극의 몰입을 방해하며 너무 무책임하다고 말하며, 저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편입니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보다 보면 이게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궁금해지는 부분이 한두 개가 아니긴 하거든요. 다만 곱씹어 볼수록 많은 것이 떠오릅니다. 영화는 결국 존재와 부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영화에선 실체한다고 증명하고 믿을 수 있는 존재와 사건들이 하나도 없다시피 합니다. 해미가 죽었는지, 아니 애초에 존재했는지, 벤이 해미를 죽였는지, 벤의 집에 있던 시계가 해미의 것인지, 고양이의 이름이 정말 보일이었는지. 이창동의 그 어떤 영화보다 프레임 안에서 확답을 주지 않는 영화입니다. 덕분에 관객들은 이 영화에 대해 많은 해석을 내놓고 고민할 수 있으며, 이를 도와주는 영화의 기이한 장력은 정말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예술적인 요소도 되묻고 있는 이창동입니다. 극 중 등장인물은 전부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이야기를 전해주고, 결국 그 이야기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죠. 가장 크게 보이는 부분은 종수인데, 소설가를 준비하고 있음에도 글을 쓰지 못하자 해미와 벤에게 영향을 받고 여러 행동들을 보입니다. 이런 면에선 이 영화 자체가 해미와 벤을 소재로 한 종수의 소설이라는 해석도 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종수는 자신의 이야기를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비참한 모습이죠. 이 기댈 곳 없는 상황에서 그 누가 자신의 현실과 이야기를 견딜 수 있겠냐는 겁니다.

이런 미스터리하고 기이한 에너지가 장악하고 있는 극의 분위기 속에서 배우들의 연기는 기가 막힙니다. 이창동은 굉장히 세세한 연기 디렉팅을 한다고 하는데, 이러니 좋은 연기가 나올 수밖에 없겠죠. 전종서는 <콜>에서 먼저 만났는데, 개인적으로 <버닝>에서의 연기가 더 좋았습니다. 앞으로가 기대되는 배우에요.

정말 좋은 영화였습니다. 이런 영화를 보고 나면 굉장히 막막하고 답답하기도 한데, 한 편으론 생각할 거리가 많아져 참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네요. 난해하고 상징적인 요소들이 많아 해석하는 것을 꺼려 하는 분들이라면 그렇게 추천드리지는 않지만 기본적인 스릴러 서스펜스로서도 나름 제 역할을 해내는 영화처럼 보였습니다. ^^




★★★★☆
:청춘들 마음속 깊이 새겨진 분노와 갈망이 활활 타오른다. 그들, 우리들을 위한 나라는 어디에 있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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