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팬서 Jul 25. 2021

<피닉스/Phoenix>

잔혹한역사 앞에서 죽음에 더 가까울 수밖에 없었던 자신을 위한 레퀴엠.

최근 가장 뜨고 있는 감독 중 한 명이라 하면 크리스티안 펫졸드 감독을 꼽을 분들이 꽤나 많을 거 같습니다. 작년에 개봉했던 <트랜짓>과 <운디네>로부터 발굴된 펫졸드의 2014년작 <피닉스>가 이제야 극장에 걸렸습니다. 평이 좋아서 바로 보고 왔네요.

펫졸드 감독은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독일의 모습을 묘사하는 능력이 탁월한 것 같습니다. 이전 <바바라>와 이후 <트랜짓>, <운디네> 모두 이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요. <피닉스>는 전쟁 이후 살아남은 배신자와 위선자를 굉장히 날카롭게 꼬집습니다. 이 이야기를 단순히 역사를 전달해 주는 익숙한 방식이 아니라 로맨스를 입혀 굉장히 개성 있는 이야기로 변모시킨 영화였네요. 비겁하게 살아남은 자들과 고통을 겪는 피해자들을 바라보는 복잡한 시선이 돋보였구요. 전쟁 피해자들이 겪은 참극을 노골적으로 들어내어 전달하기보단 간접적으로 느끼게 해준 점이 참 좋았네요. 개인적으로 극 초반, 망가진 넬리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 그것을 보는 병사의 표정을 담는 연출이 최고였던 것 같습니다.

역사를 벗어나 로맨스물로 봐도 좋습니다. 넬리를 알아보지 못하는 조니와 그에게 들어내고 싶어 계속 찔러보는 그녀를 볼 때마다 참 애틋하고 아련했네요. 영화는 자신의 정체를 남편에게 알리고 사랑이 이뤄지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영화는 참혹한 역사 앞에서 죽음에 가까울 수밖에 없었던 자신, 넬리가 자신을 위한 진혼곡을 부르는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함과 동시에 과거에 자신을 배신했던 그에게 늦었다며 고하고 자신을 위로하는 모습이 참 안타깝게 다가왔네요. 그가 조금만 일찍 그녀를 알아보았다면 넬리는 다르게 행동할 수도 있었을 거 같습니다.

엔딩 신은 최고의 장면입니다. 사실 이야기의 템포가 너무 일정해 다소 지루하게 다가오기도 했는데, 엔딩의 노래를 부르는 신이 나오자마자 '이거다!' 했네요. 그만큼 울림도 깊었고, 'Speak Low'는 노래도 좋지만 가사가 영화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드라마틱 하게 그녀의 정체를 밝히고 떠나는 게 아닌, 너무 늦었다며 아름다운 선율로 장식한 채 화면을 나가는 그녀의 모습이 계속 아른거리는군요. 넬리 역을 연기한 니나 호스의 연기력은 정말 최고였습니다. 섬세한 감정선이 아주 잘 전달되었네요. 2차 대전 직후의 상황을 잘 재현한 미장센도 인상적이었고요.

극장에서 보기 잘했다고 생각한 영화였습니다. 조만간 펫졸드 영화 몰아봐야겠군요.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감독이네요.




★★★★
:잔혹한 위선과 배신의 역사 앞에서 죽음에 더 가까울 수밖에 없었던 자신을 위한 레퀴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