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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서 Aug 25. 2021

<고스트 스토리/A Ghost Story>

데이빗 로워리 감독의 2017년작, <고스트 스토리>입니다. 로워리 감독은 이 영화로 확 떴다고 해도 무방하죠. 국내에서 인지도도 얻었구요. 저도 이 영화로 처음 알았었네요.

<고스트 스토리>는 <그린 나이트>와는 또 다른 느낌의 강렬함을 주는 영화인데, 가장 먼저 다가오는 건 다름 아닌 촬영입니다. 영화는 시간을 그대로 담아내는 듯한 느낌이 들게 만드는데요. 하나의 테이크를 길게 늘려 정말 정적이고 잔잔하게 이미지들을 담아냅니다. 하나의 시퀀스가 하나의 쇼트일 때도 있을 정도로 길게 잡는데, 무모하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눈물 젖은 파이를 꾸역꾸역 먹는 신을 하나의 시퀀스로 가져가는 감독이 어디 있나요 대체. 또 움직임도 없습니다. 정말 유령이 속절없이 관찰하는 거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정적입니다. 심지어는 인물이 공간에서 퇴장을 했음에도 수초에서 수십 초간을 더 바라봅니다. 저야 정말 좋은 촬영이라고 보지만 일반 관객 입장에선 너무나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죠.

근데 분명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길고 정적인 촬영이 내내 지속되는 이유는 고스트가 겪었던 그 기다림을 온전히 체험시켜주기 위해서라고 생각이 듭니다. 영화야 어쩔 수 없이 빠르게 흘러가는 부분이 있지만, 얼마나 고독하고 외로운 기다림이었을까요. 결국 영화는 기다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죽음이라고 하면 떠나는 이미지에 가까운데, 영화는 이를 역전시켜 죽은 자가 남고 기다리는 이야기를 다루면서 굉장한 먹먹함을 선사합니다. 하염없이 기다리는 죽은 자와 달리, 산 자는 말 그대로 살아 나아가야 하죠. 공간을 떠나고,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과거를 잊으면서요. 속절없이 기다리고, 결국 시공을 초월해도 과거는 돌아오지 않으니. 그러다 별것도 아닌, 마지막으로 남긴 쪽지 하나로 폭, 사라집니다. 영화는 죽은 자의 시공으로 꽉꽉 채워놓고 있습니다. 죽은 자는 사실 보이지가 않는데, 이걸 단순히 유령의 이미지 뿐 아니라 공간을 활용하면서 시각화했다는 점이 아주 탁월했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산 자가 상상할 수 있는 죽은 자의 시공, 그 극대치를 담아낸 영화라고 생각이 듭니다. 망자의 시공을 담아내고, 우리에게 그 기다림을 체험시키는 영화였어요.

화면비도 인상적입니다. 4:3 화면인데, 이미 많은 분들이 해석하셨다시피 C의 시점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구요. 사각이 둥글게 깎여 있는 것도 그 느낌을 주죠. 종종 등장하는 초월적인 이미지들이 너무나 인상적으로 다가옵니다. 항상 느껴지는 절제하며 자극적인 이미지들을 보여주지 않는 연출도 기억에 남구요. 루니 마라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겠죠. 그 파이 신은 정말 감탄스러울 정도인데, 루니 마라는 태어나서 파이를 처음 먹었다고 하는군요. 다시는 먹고 싶지 않았다고(...). 일말의 아쉬움이 있다면 후반부에 가면서 약간 힘이 빠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엔딩을 향해 가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듯한 느낌이 아주 살짝 들었네요.

정말 좋았습니다. 정적인 촬영에 뚜렷하지 않은 플롯, 그리고 특유의 상징적인 미장센들로 인해 좋지 않은 평들도 꽤나 많은 편이지만, 이런 예술적인 영화 좋아하신다면 분명 만족스럽게 보실 것 같습니다. 여운이 너무나 깊네요.




★★★★☆
:쓸쓸한 망자의 시공을 온전히 담아내고 하염없이 고독한 기다림을 끝내 체험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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